“우리는 권력이 지식을 창출한다는 것, 권력과 지식은 상호적으로 직접 관여한다는 것, 그리고 지식의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권력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 관계를 상정하거나 구성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 야 한다.”(푸코, 감시와 처벌, 68쪽)…“인간의 신체는 그 신체를 파헤치고 분해하며 재구 성하는 권력 장치 속으로 편입된다. 그 ‘해부학’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원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 뿐 아니라, 기술적 방법으로 결정된 속도와 효용성에 의거하여 원하 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그들의 신체를 장악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규정하는 것이다. 규율은 이렇게 복종하고 규율화 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 를 만든다.”(푸코, 감시와 처벌, 255쪽)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몸과 죽음은 개인이 다루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이슈라기보다는 의료적인 문제이다(Kleinman, 1988). 연구참여자는 몸의 의학적 정상화를 위해서 오랫동 안 의료제도 안에서 관리되었고, 대개 김희주의 평범한 삶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 다. 이것은 몸이 통제될 수 있다는 서양과학의 근거 없는 전제의 일부를 개인과 사회가 받아들인 결과이다(Kleinman, 1988). 사람이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질병과 장애 를 개인의 노력에 대한 실패로 여겨지게 만든다. 따라서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나 아지지 않는 만성질환을 가진 연구참여자와 같은 통증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김희주의 내러티브는 장애학자와 사회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의학이 질병이 아 닌 장애를 다루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다(Shah & Priestley, 2011). 예를 들어 의료권위자로부터 사람구실하면서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연구참여자가 외국으로 보내지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신체적 손상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 의료지식은 지식의 정치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다(Oliver, 2009b). 질병이나 장애를 다루는 과정에서 의학적 지식의 분배 불균형은 의료 권위자와 장애인 사이에 지식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이것은 Foucault(1975, 2020)가 말한 지식과 권력의 상호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질병이나 장애를 다루는 과정에서 의료지식에 관해 권력의 문제가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Kleinman, 1988). 의료지식의 권력화로 장 애인들은 의료지식을 가진 의료권위자들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고 치료과정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이끈다.
과학과 서양 의학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 안에서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 의 존재는 과학이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타자이고, 이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무 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Wendell, 1996). 의료과정에서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 의료전문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인식론적 가 치절하의 경험을 한다고 지적한다(Shah & Priestley, 2011;Wendell, 1996).
연구참여자는 나아지기 위한 치료 과정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이었다기보다는 의료적 대상이 됨으로써 의료진의 지시를 따르고 의료적 논리를 내재화한다. 연구참여자의 몸은 의료적 논리의 목표인 비정상을 정상으로 고치기 위해 의 료적 논리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순종하는 신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Foucault(1975, 2020)가 정치해부학에서 권력이 규율을 통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내는 방식과 같이 의료 권력이 병리학적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그리고 의료 규율이 어떻게 장애인들의 신체를 장악하는지를 보여준다. 장애인은 의료 규율에 따라 의 료권위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진행되는 치료 활동 속에서 존재한다. 의학적인 정상성을 유 지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장애인은 몸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의학적 대상화가 되어간다. 의료과정에서 장애인은 사람이기 보다는 분절적으로 존재하게 되고, 의료화 된 장애는 장 애인들의 몸을 생물학적인 손상 그 자체로 귀결시킨다(Shah & Priestley,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