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험장이란 안내가 붙은 교실 앞문을 드르륵 열었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이 쏟아졌다. 지난 일요일 치러진 7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고사장 가운데 하나인 이 중학교 정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초등학생의 일부이겠거니 싶었다.
그들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초등생이 주로 보는 시험에 웬 아저씨. 시험 감독관도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내 유일하고도 진정한 친구로 믿는 H에게 동기부여를 하자고 마음먹고 원서 접수를 할 때 각오했던 반응이다. 그래도 라이브로 접하니 소인국의 걸리버를 본 소인들과 걸리버가 딱 이랬을 거 같다.
한능검은 난이도에 따라 심화와 기본으로 나뉘는데 초등생은 기본을 주로 본다. 한국사 일타 강사이자 사실상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보이는 '큰별쌤'의 안내가 그랬다.
17명, 결시 1명. 키로 판단해 보거나 뺨의 솜털로 보나 초등생 응시자가 확실한 15명의 '막판 스퍼트'는 인상적이었다. 문제지 배포 40여분 전부터 각자 갖고 온 교재, 오답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밑 줄 긋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키워드가 머릿속에 잘 앉아 있는지 확인했다. 초4~초6 때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름달빵을 사 먹는 걸로 소일했던 입장에선 그들은 진지했다. 시험 삼아 시험을 보는 누군가와 달랐다.
50문제, 4지선다, 70분. 구석기시대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를 범위로 하는 것 같았다. 중고교에서 중간, 기말고사 때처럼 시험 범위를 나눠 보는 게 아니라 한국사를 통으로 테스트하니 초등생에게 쉬울 리 없다. 절반 가량은 붙고 절반은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다.
큰별쌤 교재를 사고 그의 22회 분량 강의를 들으면 맨땅에 헤딩은 피할 수 있겠지만 타고나길 '역사 덕후'이거나 공부로 승부를 보겠다는 작심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갑자사화가 어느 시대 어떤 왕 때 일어난 거고, 대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같은 걸 초4가 외운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 어쩔 수 없는 암기과목이다. 출제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의 노력도 엿보이지만 시대와 인물, 업적을 연결시키는 단순 도식화한 걸 맞춰야 고득점 하도록 고안돼 있다. 초등생이라도 합격을 위해, 그대로 쭉 대학입시까지 내달릴 채비를 하는 아이들이 모인 판으로 느껴졌다.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교육열이 이제 와서 식을 리 없다. 다만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파편화한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시험을 볼 때 한 순간에 쏟아내는 고득점 기술자들은 덜 배출되길 바라게 됐다. 그런 기술자들이 역사적 사실과 역사교과서에 손을 데려다 역사 발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사례가 있었으니 압축적 공부보단 방향을 잘 잡는 교육이 됐으면 한다.
일타강사들의 강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다. 교재 밖 유튜브 역사 콘텐츠를 찾아보면 여러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제대로 짚을 수 있게 설명해 놓은 게 많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