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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Oct 13. 2023

프랑스의 대안결혼 제도, 팍스.

우리 관계의 약속.


2019년. 우리는 팍스를 맺었었다. 프랑스의 "결혼"과는 비슷하지만 결혼은 아닌, "파트너십"제도이다. 이걸 하게 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단순하고 큰 이유는 이제는 무엇인가 "우리 사이를 서류화시켜야겠다"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In France, a civil solidarity pact (French: pacte civil de solidarité), commonly known as a PACS (pronounced [paks]), is a contractual form of civil union between two adults for organising their joint life. It brings rights and responsibilities, but less so than marriage.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7년이 다 되어가는 관계에서 우리는 굳이 우리 사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강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꼭 필요할까?' 라는 생각에 이 주제를 그동안 한번도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다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어떠한 서류상에서도 남-남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우리의 쌓여가는 동거기간, 잦아지는 장거리 여행,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 사이의 계획이 조금 더 구체화되가면서 우리는 우리 사이를 조금 더 공식화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서류상으로 혼인만 하기엔, 국제결혼은 그닥 쉬운것이 아니었다. 또, 팍스처럼 서류한장으로만 싸인하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꽤나 신성하고 조금은 더 특별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팍스를 하기로 결정하고 이것을 하냐마냐에 있어서 여러번 싸움도 있었다. 이 팍스라는 제도가 너무나도 당연했던 프랑스인 플로와는 달리, 나는 이 팍스자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한국, 심지어 베를린의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백번이면 백번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야했던게 가장 큰 이유였다. 왜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는데 나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되나 싶었다.


덧붙여 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꽤나 가짓수가 많은 걸 알게 되면서 '그냥 결혼을 할걸...'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이러다보니 이 팍스가 결혼이 아니냐는 질문을 한 백번쯤 받았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되었다. 우리의 관계, 즉 우리의 약속을 온 천하에 이렇다저렇다 이해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렇든 저렇든 본인들의 방식으로 축하해주었으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팍스라는 제도가 여러 유럽국가에서는 인정이 되는 제도로서 파트너십 비자도 신청이 가능함에도 불구, 막상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또 우리 나라 한국에서는 인정이 되지 않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과정자체가 쉽지는 않다보니 어느 순간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의문점을 가지면서도 '이미 결정한 것이니 한 번은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번역사를 쓰지않고 온전히 우리끼리 적은 액수의 서류비만 들여 팍스 프로세스를 천천히 진행해갔다. 독일에서 워킹비자로 오랫동안 지내왔기 때문에, 거주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부담은 덜 했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다시 시도하거나 차라리 그냥 동거 상태 그대로 계속 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팍스 신청날이 되니,  막상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여곡절이 몇 번 있었지만, 우리는 성왕리에 팍스를 체결했다. 독일이었다면 얄짤없었을 예외들이 프랑스에서는 적용이 되었다. 결혼보다는 간단한 제도이기 때문에 서류절차들이 조금 더 쉬웠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프랑스 파리도 아닌, 파리 외곽 도시의 플로가 자라온 도시의 시청이었다. 모든 서류들이 일사천리 통과되자 마지막으로 시청 직원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파일철을 들고 왔다. 그 파일철을 넘기고 넘겨 빈 공간을 찾았다. 시청 직원은 그 곳에 우리 둘의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파트너십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고 서명까지 하니 이게 뭐라고 기분이 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서류한장이라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둘 사이의 자본금관리/책임, 소유물분담 등 결혼의 제도와 일부 흡사한 조항들을 읽는데 '우리가 이런 단계까지 왔구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알쏭달쏭했다.



프랑스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었다. 팍스를 기념하며 플로 부모님은 우리에게 스파이용권 선물을 주었다. 일주일 내내 크리스마스같은 만찬은 덤이었다. 플로의 친구들과도 잠깐 만나 서프라이즈로 팍스를 했다고 하니 엄청 놀라며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이들에게 팍스는 가족으로 연을 맺는 절차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런것이 존재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설명을 했냐고 그들도 궁금해하기는 했다. 어떤 집에서는 반지교환도 하고, 결혼식처럼 시청결혼식을 올리는 집도 있다. 혹은 가족끼리만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서류만 간단하게 서명하는 등 팍스를 축하하는 일은 커플의 취향에 따라 다양했다. 본래는 동성 커플의 파트너십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프랑스의 팍스는 오늘 날 우리같은 이성 커플에게 간단한 절차 덕에 더 보편적으로 체결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역시 팍스를 맺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 양가가 만나 저녁식사를 가졌고, 우리식대로 친한 친구들과 작은 축하 파티를 열기로 결정했다. 물론 한국에 계시는 우리 부모님은 이 팍스가 약혼의 일부 과정이라고 여긴 것 같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종이 한장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는 프랑스에서 팍스를 맺고, 팍스제도가 인정되지 않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2019년, 우리는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싱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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