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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Oct 11. 2023

어제는 칸쿤. 오늘은 파리.

5년간의 디지털 노마드 생활.

우리가 코로나 이전 리모트잡을 시도했을 때, 한국이나 이곳 유럽의 친구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게 가능해?

-일에 집중이 되나? 여행하면서.

-집에서 어떻게 일을 해. 집중도 잘 안되고.

-너무 환상같아.


오피스에 나가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집에 돌아오는 삶이 코로나 이전 에는 너무 당연했다. 세계를 여행하며 일을 하고, 집과 오피스를 드나들며 하이브리드 형태로 사는 삶은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너무 환상같은 일이었다.


 우리는 정확히 코로나가 터지기 2-3년 전부터 이런 삶을 꿈꾸고, 동경하며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터졌다. 모든이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리모트잡을 경험해야했다. 일자리를 잃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하고 일을 하는 삶이 모두에게 거의 일상같이 자리잡게 된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사는 베를린, 유럽은 그렇다. 그렇게 우리가 동경하고 어렵게 찾은 삶이, 코로나라는 비극적인 사태로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아이러니함이 펼쳐졌다. 물론 코로나 초기 때는 여행을 할 수 없었지만, 코로나가 2년, 3년이 되어가자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너도나도 여행을 다녔다.


지난 5년 간 리모트 삶을 살면서, 나와 플로는 전 세계 곳곳을 다녔다. 휴가를 낼 땐 휴가를 내고, 일과 휴가를 섞는 워케이션(workation)을 보내기도 했다.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동료들과 온라인 미팅을 하던 기억, 겨울철 스페인 까나리아섬에서 오후 반차를 내고 일과 후에 바닷가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느끼던 행복감, 프랑스 어느 한 시골에서 크로와상을 입에 물고 노트북으로 업무노트를 확인하던 동화같은 일들...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들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행을 좋아하고, 변화를 즐기는 우리에게 큰 행복감을 주었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영향은 마케팅을 하고 사업을 하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을 주었고, 심적인 면으로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프랑스 시골에서의 리모트 워킹.


리모트잡을 누구나 우리처럼 다 반겼던 것은 아니다. 당시 다니던 회사 내부에서도 리모트잡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1,2주 정도는 서로 맞춰가며 일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매일은 못해도 오피스에 꽤나 주기적으로 나갔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삶과 일의 방식에 선택권이 생겼다는 것이었고,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모트로 일하면서 예기치못한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전혀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인프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일을 전혀 할 수 없던 필리핀에서의 우여곡절이나 그리스 로도스 섬의 숙소의 바퀴벌레 문제로 집주인과 싸우느라 일주일을 허비했던 일, 멕시코 툴룸에서 발가락을 다쳐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일주일을 호텔에서만 보냈던 일, 숙소에서 갑자기 나타난 대왕거미, 난데없는 식중독, 비행기를 타려는데 일이 터져 여행 내내 스트레스를 받던 날들, 숙소에 도착하니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 숙소... 여행을 하며 일을 하는 일상은 꽤나 그럴싸해보이지만 미처 생각치 못한 변수로 여행을 망치는 경우도 수 없이 많았다. 환경이 편하지 않다보니 잘 지내던 우리가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


유럽 겨울을 뒤로하고 떠난 멕시코 툴룸의 뜨거운 여름.
지중해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곳에서 먹은 그리스에서의 파스타.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언젠가부터 우리는 일주일정도는 완벽하게 휴가를 내는 쪽을 택했다.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기간이 우리에게도 가끔은 필요했다. 3주,4주씩 한 도시에 머물러있게되면 첫 2주는 일을 하고 점점 반차를 내고 일하다가 나머지 일주일 정도는 화끈하게 휴가를 보내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다 기회비용이 적은, 다시말해 생각치 못한 변수가 적은 쪽을 택하려 하고 있다. 휴가를 가더라도 시차가 많이 크지 않아 몸이 조금은 덜 힘든 곳으로 가거나, 일을 하러 간다면 방문했던 숙소중에 좋았던 숙소를 지속적으로 방문한다던지, 항상 가는 도시에 단골 워킹카페를 알아놓는다던지 하는식으로 말이다.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일을 하는게 정신적 소모가 덜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리모트 삶을 조금씩 우리의 스타일대로 맞춰나갔다.


리모트잡을 몇년 간 즐겨온 사람들은 이 생활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특히나 우리같은 외국인들이 본국에 돌아가 시차에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리모트잡의 장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이들이 요즘들어 오피스에 나가 사람을 직접 만나 일하는 조금은 아날로그적인 삶을 가끔은 그리워하는 것 같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베를린에 올 때마다 집에서만 똑같이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조금은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렇더라도 내가 앞으로도 매일매일 오피스에 출근하는 일은 없을테지만. 여전히 베를린 겨울이 되면 햇빛이 드는 그 어딘가를 찾아 떠나있으리. 그냥 조금 여행의 빈도와 강도를 낮춰보자는 생각을 헀다.







이전 02화 프랑스의 대안결혼 제도, 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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