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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Oct 19. 2023

결혼, 9년의 국제연애.

프랑스에서의 결혼식.

우리가 결혼을 결정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마도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팍스는 비프랑스 거주자들에게 딱히 이득이 되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팍스의 형태, 코로나 때 단 한번도 한국을 가지 못했던 우리의 처지, 유럽의 수많은 국가에 수시로 드나들 때마다 유럽인/비유럽인으로 나뉘는 입국심사대 앞에서 오래될만큼 오래된  우리의 관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이 상황이 더 이상 편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우리 둘과의 약속이라고 했지만, 국제 커플인 우리에게 서류가 없는 관계의 증명은 갈수록 현실적으로 힘이 들어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과테말라 친구 결혼식을 갔다가 들린 멕시코 툴룸에서 예상치 못한 프로포즈를 받았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오고갔지만, 여행계획에 한창 들떠있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더니, 도착하자마자 무전기를 차고 우리를 안내하는 직원을 보며 '얘가 왠일로?'라는 생각뿐이었다. 석양이 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은 우리 둘만 오롯이 있을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다, 그 쯤에서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비자 때문에 매년 스트레스 받는 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필요에 의한 결혼이 아닌, 정말 나와 결혼하고 싶어졌다는 플로의 메세지. 반지를 들고 여러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며 먼 길을 땀 흘렸을 생각을 하니 참 고마우면서도 나같으면 이렇게까지는 못했을텐데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결혼을 보통 1년 전에 준비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그 동안 갔던 프랑스 친구들의 결혼식도 적어도 1년 전, 8개월 전쯤 세이브더데이트(Save the date:날짜만 안내하는 간단한 초대장)을 받고, 디테일이 담긴 정식 초대장은 5-6개월 전 쯤 받았던  것 같다. 프로포즈를 받고 6개월 안에 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하니 이곳에서 다들 왜이렇게 빨리하냐는 식이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텐데 말이다. 


결혼식 준비로 주구장창 갔던 프랑스 파리.


'시청에서 서명만하고, 가족끼리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만 해볼까,'하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유난히도 파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파티가 될 결혼식이 빠진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아쉬웠다. 50명 정도의 한정 된 인원으로 나름 스몰(small) 웨딩을 준비하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50명도 스몰웨딩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기본 100명, 200명을 초대하는 결혼식에 비하면 스몰이 맞다. 


코로나의 여러 규율들이 사라져가는 시점이었으나, 아직도 시청같은 관공서에는 인원 제한 규율은 있었다. 다행히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사람 인원 수를 많이 늘리지는 못했다. 조금 더 적은 규모로 하고 싶어도, 막상 저녁을 먹고 잔치가 벌어지는 이벤트 베뉴에서는 최소 50명이하는 받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50명으로 결혼식 규모를 정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코로나 시기를 함께 이겨낸 베를린 커플 친구들과 우리의 직계 가족들, 그리고 일부 학창 시절 친구들만으로 하객을 구성했다. 자연스럽게 50명이 금방 채워졌다. 


이곳이나 한국이나 결혼식 날짜를 잡고, 결혼식 디테일을 잡는데 사공이 많은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결국 결혼식은 우리 둘의 파티. 우리는 우리가 결정한 거의 그대로 밀고 나갔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을 빌려보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만 새벽 2시까지만 운영되는 레스토랑. 그렇게 되면 레스토랑과 바를 동시에 예약을 해야했다. 두 장소를 섭외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저예산으로 알차게 결혼식을 하려는 우리에게 시어머니가 잘 아시는 분의 작은 펜션을 추천해주셨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이유에설까, 장소보고 계획을 세운지 일주일 만에 사람들이 모이면 이웃들 소음이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는 펜션 주인. 프랑스인들의 변심은 워낙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려고 넘어가려 했지만, 기껏 다 구상해놓은 결혼식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되는 느낌에 화가 났다. 


결국 우리는 남들이 다 하는대로, 파리에서 꽤나 떨어진 조용한 시골같은 곳에서 식장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광활한 초원 한 가운데 놓여진 이웃 소음을 신경쓸 일 없는 곳, 숙소가 여럿 마련되어 멀리서 오는 하객들이 쉬어가기 좋은 도메인(domaine: 프랑스의 옛 큰 저택, 고성같은 곳을 일컫는 말이며 보통 숙소가딸려 있는 파티용 장소로 많이 쓰인다.)이었다. 남들이 다 하는식으로 하라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처럼 플래너를 붙여 식장에서 다 알아서 해주면 편하고 좋았겠지만, 유럽에서는 플래너를 붙이는 것이 비용적으로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는 최소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하기로 했다. 데코, 음악, 꽃장식, 진행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해나갔다.  결혼식 전날 까지 6개월 내내 일이 끝나면 매일 결혼식 준비를 했다. 잘 버리지 않는 프랑스 가족들. 남편의 외할아버지 댁과 시어머님 댁에는 빈티지한 장식품들이 즐비했다. 파리에 거의 매달 갔는데, 갈 때마다 주섬주섬 준비하고 만들다보니 꽤나 많은 장식들이 완성되어 갔다. 파리에 있는 시간이 한정되다 보니 드레스와 정장, 결혼반지도 보는 그날 바로바로 결정하는 식이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꽃을 보러가고, 머리를 할 미용실을 알아보며, 부케까지 예약했을 때야 비로소 '아, 이제 정말 곧 결혼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 가장 행복한 파티를 가졌다. 파리 근처여서 날씨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6월의 파리는 쨍쨍하게 햇빛이 밝게 비추었다. 프랑스식 결혼식은 점심을 먹고, 새벽 끝까지 파티가 이어진다. 친구들이 주된 파티였기에, 어른들은 이미 새벽 전에 주무시러 갔고, 친구들과 남아 거의 새벽 4시까지 마시고 즐기며 놀았던 것 같다. 베를린에 오래 살면 누구나 다 디제잉을 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결혼식 전에 디제잉 연습을 했고, 파티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들로 가득 채워 직접 디제잉을 했다. 일부는 노래가 너무 우리 스타일이어서 맞지 않았다고 불평아닌 불평을 했다. -너무 우리 방식대로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했으니 후회도 없다. 역시 결혼식은 내 방식대로 해야 제 맛이다. 


본식 이후에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가족과의 행사 아닌 행사들이 3번이 넘게 더 이어졌다. 원래 한옥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던 플로의 의견을 절충해서, 우리는 한복을 빌려 경주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9년 간 국제 연애의 또 다른 시작.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인생의 챕터를 함께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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