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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ug 29. 2022

나의 성씨를 지켜라

나는 박씨에요.

- 마담 샤ㅇㅇ!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두 번째 결혼식 파티. 결혼식이라기보다는 프랑스 가족들을 모아 두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노는 파티였다. 그리고 그 파티에서는 모두가 나를 자연스럽게 -마담 샤ㅇㅇ(남편 플로의 성)-으로 불렀다. 프랑스에서나 스페인, 미국을 포함한 서양권의 국가들은 대부분 결혼할 때 배우자,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 이렇다보니 식을 치르기 전에도 우리에게 항상 따라붙었던 질문은 "너희 성 바꿀 거냐, "였다.


우리의 대답은 항상 "아니, "였고 지금도 같다. 요새는 성평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결혼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구시대적이란 발상이라는 인식에 많은 젊은 프랑스인 커플들은 한 파트너의 성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미 결혼 한 내 친구들은 각자 그대로의 성을 지키거나, 요새 트렌드에 따라 두 사람의 성을 합치는 걸 선호했다. 물론 아직까지 성을 바꾼 친구들도 많지만 말이다. 




우리 회사의 프랑스인 디렉터 하나가 결국 영국인 남편 성을 따르기로 했다길래 의외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성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였던지라 더 그렇다. 결국 남들에게, 특히 공관에서 두 번 세 번 질문받지 않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한 20년은 지나야, 아니 30년은 지나 다음 세대가 아이를 낳아야 이런 질문은 받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힘이 빠졌다이 프랑스인 동료가 성을 바꾸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녀가 베를린에서 런던으로 이사 가면서 생긴 일이다. 


이제는 브렉시트로 유럽인에게도 영국에 살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그녀그렇게 몇 달을 기다려 영국 거주 비자를 받았다. 드디어 런던으로 이사 가기에 성공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회사 메신저를 통해 동네방네 소문을 냈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베를린에 출장을 왔었던 그 잠깐 사이, 남편의 성을 따르기로 했던 그 결정이 영국 공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성이 바뀌었으니 여권도, 비자도 성을 바꿔야 한다는 공관의 안내. 그 소식을 베를린으로 잠깐 넘어온 사이에 들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런던으로 어찌어찌하여 겨우 겨우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틀린 말이 아니고 남의 일 같지 않아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플로 외할아버지댁에 가면 있는 예쁜 프랑스 빈티지 소품들


시골 가족들과의 모임에서는 시골 마당에 널린 여름 들꽃으로 직접 내 머리장식을 해봤다.


또 이런 경우 엄마들이 아이만 데리고 국경을 넘는 비행기를 탈 때, 가끔 심사대에서 걸린다고 했다. 한 시간 가량을 심사대에서 잡아놓고 심문하며, 아이 아빠와 전화 통화 이후 엄마와 아이가 아빠 없이 여행할 수 있게 동의했다는 내용이 확인이 된 경우에만 국경을 넘게 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나 자기 성이 달라 더 그런 건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고 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사는 걸까 싶었다. 애 데리고 혼자 여행하기는 상상만 해도 힘이 빠지는데, 별 일이 다 있다. 아무튼 추후에 우리에게 2세가 생긴다면, 그때쯤 아이를 위해 성을 합칠까는 고려는 해봤다. 우리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서라면 생각해볼 수도 있다. 결혼은 구시대적 발상이며, 딱히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관계에서 결혼은 허례허식이라 생각했다. 그랬던 우리가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우리의 편리함에 의한 선택이었듯,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이 다른 부부로 유럽에 사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다면 이 문제도 그때쯤 다시 재고해보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가족의 형태가 워낙 복잡하고,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 프랑스가 의외의 면에서는 또 굉장히 보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이를 먹고 이혼을 하거나, 별거를 하거나, 혹은 오랫동안 결혼하지 않은 채로 살거나, 헤어지고 상대방 가족들과 잘 지낸다거나, 싱글맘이거나, 형제가 모두 부모가 다르거나 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찾을 수 있는 곳이 프랑스라 더 의외다. 결국 그들도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시간이 지나 이해되었듯이, 그들도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고 차차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나를 마담 샤ㅇㅇ 라고 부르는 프랑스 가족들에게 대답했다.


-Je m'appelle Park. 쥬 마뻴 팍. (저는 박 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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