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프랑스에서 올린 데에는 이제는 정말 우리 둘의 가까운 친구들이 유럽에만 있다는 사실이 한몫했다. 한국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코로나 시대에 결혼 준비를 할 자신도, 마음도 없었고, 불편한 자리가 아닌 우리의 파티로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베를린에서 하지 않은 것은 머리 아픈 결혼절차, 그것도 국제결혼식을 준비하는 데 행정처리라도 둘 중 하나의 모국어로 손쉽게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베를린보다는 조금은 예쁘고, 음식이 더 맛있는 프랑스에서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그렇게 지난 6월 프랑스 시청 결혼식을 올렸었다. 프랑스 시청 결혼식 날짜를 잡는 데에만 노심초사한 것이 6월은 프랑스 선거일에, 남들도 다 하고 싶어 하는 날씨 좋은 6월이었다. 그 와중에 경쟁자들인 프랑스인 커플들과는 달리 우리는 서류가 너무 많이 필요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베를린이다 보니 최근 3개월 내 현 집주소가 찍힌 전기/인터넷 비용 청구서, 시부모님이 해당 시청 도시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 등등 각종 증빙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다.
역시나 한 번 다시 돌려보내지기까지 하고 겨우 결혼식 날짜를 잡았을 때 '이제 드디어 서류는 끝인가,' 하며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결혼식 때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혼인 신고 서류에 서명을 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첫 번째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식 올린 시청
하지만 '이제 서류는 다 되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베를린에 돌아와 내 비자부터 바꿔야 했다. 올해 중순에 만료되는 워킹비자를 연장하려니 관련 이민청은 워낙 사람이 많아 예약을 잡을 수가 없었고, 그나마 수월하다는 가족 비자로 변경하기로 했다. 가족 비자는 예약 잡기도 수월했다. 나는 여권과 주거 등록증만 가져가면 되었고 나머지는 프랑스인 플로 몫이었다. 여러 번 다시 돌려보내 졌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혹시나 해서 의료보험증과 지난 6개월 월급명세서도 떼갔는데, 딱히 필요는 없어보였다.
4주 만에 우편으로 비자 카드가 날아왔다. 새로 받은 내 비자카드에 -EU FAMILIEN-이라고 적혀있는 5년짜리 가족비자. 기분이 묘했다. 워킹비자 5년을 받을 때까지 1년짜리 비자를 두 번 받고 겨우 받았었는데, 참 쉽게도 5년짜리가 턱 하니 나온다. 국제커플들이 기나긴 고민 끝에 이주에 앞서 결혼을 최우선시 선택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진작 결혼할 걸,'하는 생각이 잠깐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결혼해서 택스 클래스를 변경하려니 살고 있는 독일에서 혼인신고도 해야 된단다. 그렇게 부거암트 (Bürgeramt: 독일의 구청)에 가서 독일어로 번역된 프랑스 혼인신고서, 여권, 주민등록증을 가져가 혼인신고를 했다. 이미 베를린에 산지 오래되었으니 추가적인 서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성은 안 바꾸고 각자 성을 유지하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했다. 10분 만에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혼인 신고를 마쳤다.
세 번째는 한국. 모든 서류가 프랑스어로 되어있으니 프랑스에서 하는 게 낫겠다 싶어 프랑스 파리 한국대사관에 갔다. 그리고 결과는 실패. 서류 하나를 잘못 떼 갔다. 여러 번 왔다갔다 한 끝에 한국에까지 혼인신고를 마쳤고, 가족관계증명서에 플로 이름이 내 이름과 함께 올라갔다. 이쯤 되니 국제결혼은 정말 끊임없는 서류 작업의 연속인가 싶었다. 그 많은 서류들을 서로의 언어로 번역하고, 우리가 사는 곳의 언어로까지 번역하고 증빙하면서 든 생각은 ' 이만큼 했으니, 안 헤어지게 진짜 잘 살자,'라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