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Dec 26. 2022

크리스마스 민족 대이동, 여기까지.

유럽의 큰 명절, 크리스마스.

한국에서 설, 추석 명절마다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듯이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대명절이다. 플로를 따라 크리스마스 때마다 파리, 그리고 거기서 차를 타고 4시간가량 떨어진 그의 할아버지 댁이 위치한 시골마을을 왔다 갔다 한 것이 벌써 9년 차다. 


몇 년 전, 플로가 어떤 이유로 먼저 파리에 가고, 나 혼자 파리에 가게 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베를린 공항에서 플로의 옛 회사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디에 가냐고 물었고, 나는 파리에 간다고 했다.


- 왜? 너희 집 안 가고?


라는 질문에 '어?'라고 잠시 멈칫했다. 결혼하지 않은 그들. 5년이 훨씬 넘거나 10년가까이 사귄 유럽의 쿨내 나는 커플들. 생각해보니 결혼하지 않은 그들이 명절에 상대방의 집에 가지 않고 자기네 집에 먼저 가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크리스마스를 추석처럼 보냈다면, 나와 플로의 크리스마스는 달라졌을까?



여전히 북적이는 공항의 인파를 뚫고 공항 검색대에서 30분을 가까이 기다렸다. 터미널을 옮겨 가면 일찍 통과한다더니 그것도 아니다. 미어터지는 공항에서 플로가 내년부터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가족모임을 해야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유럽의 모든 이가 움직이는 이 시점에 평소 비행기 값, 기차값의 4-5배를 내고 인파에 몰려다니는 이 상황이 딱히 의미 있지는 않다고 생각되었다. 


더불어 파리의 매년 기차 및 각종 교통 파업은 크리스마스의 반갑지 않은 선물이다. 역시나 우리가 예약한 기차도 파업으로 취소가 되어 차를 렌트할 수 밖에 없었다. 차 렌트비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값이 만만치 않다.


-나: 솔직히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안 세니 우리는 한 쪽만 가면 되잖아.
-플로: 난 한국에 갈 수만 있다면, 그 핑계로 프랑스에 안 갈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명절에 딱히 어느 집을 가느냐에 무게를 두지는 않는 플로. 한국이 워낙 멀고, 생뚱맞게 유럽과는 전혀 동떨어진 설날과 추석을 세니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 아무튼 우리는 내년부터 크리스마스를 피해 가족들을 만나기로 했다. 물론 그의 가족들에게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크리스마스 당일에 더 이상 민족 대이동에 동참하지 않기로 이야기할 작정이다. 동의하던 안 하던, 우리가 안 가면 그만이라고 자기는 더 이상 이 짓을 못하겠다며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플로가 선을 그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해에 또 다시 크리스마스에 비행기를 끊었다. 

이전 06화 세 번의 혼인신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