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독일 이민이야기 2 – 재도전을 위해 서울로 가다.

왜 공무원 되려고 하는 거야?

고용환경이 너무도 불안정한 세상이 되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착실히 공부했다. 미래를 향한 막연한 희망을 움켜쥐고, 놀고 싶은 거 참아가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번듯이 대학까지 졸업하고 맞닥뜨린 현실은 참 만만치가 않았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으로 통하는 보증수표가 된 지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 그 외에도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고, 봉사활동 또는 인턴경험까지 있어야 간신히 이력서 한 장이라도 제대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된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도 취업이 되기가 너무 어렵고, 취업이 된다고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해고의 위험 속에서 지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는 게 공무원인 것이다. 학력, 나이, 출신 등의 어떠한 선제조건이 없이 누구나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시험 점수로만 합격여부를 결정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전한다. 요즘은 대학생부터, 아니 고등학생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추세이다.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가졌던 꿈과 삶의 이상향이 있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타협하며 도전했던 것이 공무원 시험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향과 개인적인 취미들은 다 뒤로하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게 시켜야겠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어, 수학, 사회, 영어, 국사 등 공무원 시험에 관련된 과목만 열심히 하게 시켜야겠다. 소위 말하는 철밥통인 공무원만 되고 나면 인생은 성공한 거니까, 그거만 보고 달려야 한다라고 아이들에게 꼭 말해 주어야겠다.” 이 답답하고 형편없는 몇 개의 문장들이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당시 내 마음을 채워가고 있는 소위 개똥철학이었다. 나는 특정 직업을 비하할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행정적인 일들을 감당할 사람들이 꼭 필요하고, 좋은 인재들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 남편의 개인적인 성향은 공무원과 맞지 않음에도 불안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삶의 안정을 위해서 그 직업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당시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공무원 시험이 평등하다고 누가 그래? 돈이 없으면 독서실 구석자리만…

드디어 남편이 상경을 했다. 돈이라도 많으면 넓고 쾌적한 원룸에 따뜻하고 끼니마다 맛난 식사를 챙겨 먹으며 공부를 할 테지만, 그런 여유를 바라는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시촌으로 유명한 서울대 옆 신림동에 2평 남짓한 월세, 고시원 방 한 칸을 빌렸다. 고시원에도 주변 환경과 방의 상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가깝고 방이 넓고 옵션이 많을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반대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큰 도로에서 멀어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가격이 싸다. 우리가 고른 고시원 방은 한 달에 20만 원. 고시원 방들 중에서도 저렴한 축에 속한다. 가파른 언덕의 중간쯤에 위치한 고시원 방에는 책상과 침대, 그리고 옷가지들을 걸어 둘 수 있는 행거가 전부였다. 딱 잠만 잘 수 있게 고시생들에게 특화된 방이다. 캐리어 한가득 챙겨 온 이불과 옷가지 몇 개를 정리하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둘째 날 찾아간 곳은 유명하다는 공무원 학원. 해마다 많은 공무원 합격자를 배출하고, 소위 일타 강사들의 강의를 직접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면 우리에게도 합격이라는 황금빛 미래가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꿈도 잠시, 우리는 그것도 일부 사람에게만 허락된 급행 티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원비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쌌던 것이다.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단과반, 모든 과목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종합반, 그리고 학습상담, 개별 면담, 일대일 학업 스케줄 관리 등등 돈을 더 많이 지불할수록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많아지고 시험 합격에는 더 가까워짐이 분명하다. 고시원 월세와 식비, 그리고 학원비까지 더해지면 매달마다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데 독박 육아에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는 아내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기가 너무 미안했는지, 남편은 이런저런 강의들은 다 포기하고, 월 30만 원짜리 독서실의 구석진 한 자리만 대여했다. 그나마 한 방에서 모여서 다 같이 공부하기 때문에 다른 고시생들의 열정을 느끼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고시생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전 01화 #독일 이민이야기 1 - 연이은 취업의 실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