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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민이야기 3 - 독일행을 결정하다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한 지 두어 달 지났을 때다. 추석과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까지, 드물게 긴 휴일이 있던 해였다. 우리는 모처럼의 가족여행을 갔다. 4살, 6살 배기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대단할 것도 없었다. 작은 숙소에, 유명하다는 명소를 찾아가 그 옆에 놀이터를 방문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다. 그래도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미래가 보지 않는 현실과 무거운 짐 가득한 일상을 뒤로하고, 자연 속에 머물면서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여행이 주는 콧바람을 너무 많이 들이마신 탓일까. 우리가 젊을 때부터 가져왔던 꿈들이 다시 생각났고, 쫓기듯 따라가던 삶에서 한걸음 물러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일까. 만약 남편이 일 년 뒤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가 정말 바라는 삶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의 일차적인 삶의 롤모델로서, 우리가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해 줄 수 있을까? 다들 한다는 그런 길 말고, 해야 하니까 하는 그런 거 말고…



그때로부터 다섯 달 전쯤이었다. 지인을 통해 독일에 있는 작은 한인 회사에서 인력을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은 지원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 남편은 거절했다. 그때는 공무원 시험을 한창 준비 중이었고, 월세방살이를 하는 처지에 이민은 재정적으로 전혀 준비가 안되었기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콧바람 잔뜩 들어왔던 가족여행 중에 독일에서의 구직공고가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가 독일에 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전에 들었던 독일에서의 구인광고가 아직 있는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구직공고를 들은 것도 이미 다섯 달 전이었다. 아직까지 그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그 구직공고에 대해 문의를 했다. 아직까지 사람을 구하지 않고 그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별로 따지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그 자리에 지원했다.



서류 심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최종 면접을 위해서는 독일로 건너가야 했다. 입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면접만을 위해 독일을 다녀와야 한다니, 비행기 값에 체류비까지 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회사에서는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다행히 화상면접으로 대면 인터뷰를 대체해주었다. 화상면접을 위해 집안 거실 한쪽을 깨끗하게 치우고 급하게 초록이 화분도 끌어다 놓고, 나름의 면접장소를 마련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질문들이 오갔다. 잔뜩 긴장했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화상면접이 있은지 며칠 후, 합격했다는 통치를 받았고, 최대한 빨리 독일로 올 것을 요청받았다. 그때가 11월이었는데, 독일에서는 노동비자를 받아야 일을 시작할 수 있고, 신청절차가 최소 한두 달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부터 일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독일에 도착해야 했다. 가장 빠른 독일행 티켓을 알아보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남편은 그렇게 독일로 떠났다.



운명이었을까. 그 잠깐의 여행 중에 우리는 독일을 향해 문을 두드렸다. 우리가 두드린 문은 우리가 오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이미 열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입사가 결정된 지 2주 만에 독일 땅을 밟았다. 누가 보면 오래전부터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이민을 가려고 벼르고 벼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속히 독일을 향했다. 운명이나 신의 계획이라는 것이 있어서 일어나야 할 어떤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큰 섭리에 따라 독일에 오게 된 것이다. 월급이나 근무조건이 탁월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블루카드 소지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인문계열 대학 졸업자이다. 월급에서 세금, 월세, 각종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게 200만 원 남짓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우리 네 식구의 생활비도 딱 그 정도였다. 비슷한 월급에서 한국에서 사는 게 나으냐, 독일에서 사는 게 나으냐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독일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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