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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민이야기 4 – 드디어 독일 땅을 밟다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자마자 남편은 독일로 떠났고, 나와 아이들은 아직 한국에 남아있었다. 독일에서 당장 지낼 곳도 없을뿐더러, 이민에 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로 떠날 수가 없었다. 나와 아이들은 한국에 남아서 재정적으로 남편을 지원하고, 최대한 온 가족이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준비한 후에 독일로 떠날 계획이었다. 남편은 독일에 도착해서 노동비자를 신청하고, 비자가 발급될 때까지 걸리는 한 달여간의 시간을 이용해 기초 독일어 수업을 들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네 가족이 함께 살 집도 알아보았다. 최근 독일에도 주택난이 심각해서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는 월세 아파트를 구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비싼 건 둘째 치고, 세입자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괜찮은 집을 발견하고 그 집을 구경하러 가면, 같이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최소 5팀 이상이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동시에 집을 보여주는 건 집주인의 편의를 위한 것일까?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문화에 먼저 충격을 받았다. 이 집이 살만한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둘째 문제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집주인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준비해 온 재직증명서, 월급명세서, 통장잔고, 그리고 자기소개서까지 가지런히 정리한 파일을 들이밀어본다. 독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동양인이 본인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선택받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취업난에 시달려 독일로 건너왔는데, 독일에 정착하는 가장 첫 단계인 집을 구하는 일부터 경쟁에 시달리게 되었다. 반복되는 거절 후에 우리의 선택지는 점점 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결국 변두리에 자그마한 월세 아파트를 구하게 되었다.



남편이 떠난 지 5개월 후에 아이들과 함께 독일 땅을 밟다

아빠가 있는 곳,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 그곳이 아이들이 독일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나조차도 독일이 어떤 곳인지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백과사전의 개요 페이지에서나 찾을 법한 정도였다. 여행도 한번 가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하는 아이들을 보며, '왜 써먹을 데 없는 언어를 배우지?'라고 의아해했던 기억도 난다. 독일은 나에게 그저 머나먼 나라였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었던, 관심조차 없었던 곳을 그저 막연한 희망 하나만 붙들고 온 가족이 보금자리를 옮긴 것이다.


독일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짐을 꾸렸다. 독일에는 위생팩이 없다더라, 면봉이랑 이쑤시개도 챙겨야 된다더라, 양말이랑 메리야스(내의)는 한국산이 좋다더라. 그래서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 들고 독일로 향했다. 커다란 이민 가방 세 개에 캐리어에 등에 짊어진 배낭까지 영락없는 보따리장수다. 20kg이 넘지 않도록 집에서 여러 번 저울 위에 올려보며 짐을 챙겼는데 막상 공항에 와서 전자저울 위에 올려놓으니 무게가 초과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딱해 보였는지 항공사 직원분께서 어느 정도 편의를 봐주셔서 23kg까지 허용해주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게가 많이 초과되어서 짐을 빼야 했다. 옆에 계셨던 시어머님께서 물건을 빼는 걸 도와주셨다. 다이소 바구니부터 물병 씻는 솔까지 잡다한 것들이 나왔다. 내가 챙기긴 했지만서도,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유럽으로 호화로운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팍팍한 한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거기에 '살러' 가는 건데 어쩌겠는가. 그 와중에 놓고 갈 물건과 가져갈 물건을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따리 짐을 수화물로 부치고 나니, 곧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왔다. 짐 때문에 한바탕 씨름을 벌인 후라, 가족과 고국을 떠나는 슬픔도 느낄 새가 없었다. 곧 긴 비행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중국을 거쳐, 네덜란드를 찍고 독일에 도착하는 코스를 택했다. 아이들 데리고 가는데 돈 아끼지 말고, 조금이라도 덜 경유하고 편하게 가라는 사람들의 말에, 밤 시간대에 10시간 정도 비행하는 경로라서, 자면서 가면 금방 가니 괜찮다고 둘러대며 최저 비행기표를 결제했던 터였다. 경유할 때는 혹시라도 연결통로를 잘 못 찾아서 다음 비행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바짝 긴장했다. 아이들은 다행히 긴 비행을 잘 버텨주었고, 깐깐할 거라고 생각했던 입국심사도 수월하게 진행되어서 대체로 순조롭게 잘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에는 남편과 회사분들이 마중 나와서 반겨주셨다. 그렇게 독일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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