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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05. 2023

운구차 행렬을 뒤따르다



이른 새벽부터 아내와 함께 근길나선다. 어둑한 길을 이십 분 정도 달리면 까운 전철역도착한다. 아내를 배웅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어김없이 만나는 존재가 있다. 어느 장례식장에서 화장터로 발인하는 운구 행렬이다.



전에는 느낌이 좋지 않아서 피하거나 빠르게 지나쳤는데, 요즘은 대수롭지 않게 뒤에서 천천히 따라간다. 차량 몇 대가 에스코트하다 보니 무리하게 추월하면 사고 위험성도 있고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이기도 다.



운구차 행렬을 뒤따르다 보면 고인 삶이 어땠을지 유족 심정은 어떨지 후세계는 어떤지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한참을 감정 이입하며 따라가다 보면 화장터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운구차 행렬은 우회전하며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전혀 모르는 존재였지만 잠시 동행했고, 갈림길에서 고인은 화장터로 향하며 나는 일터로 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운구차 행렬을 보며 나지막하게 '다 부질없다'라고 읊조린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죽으면 끝이기 때문에 현재를 더 즐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눈앞에 나타난 운구차 행렬로 인해서 잠시 죽음을 생각했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겠다고 다짐하니까 꽤나 긍정적인 사고 같지만 유쾌하진 않다. 여전히 불편한 기분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삶에 대해 착이 생기는 상황이라 결국 달게 받아들인다.



지금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겼다. 두렵고 무서워서 도망치려던 죽음 덕분에 매 순간 진정성 있게 살며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삶에서 찾으려던 의미를 그토록 무섭고 두려웠던 죽음에서 찾는.



#라이트라이팅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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