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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Mar 03. 2024

실패 배틀



연재를 계획하고 세 번째  제목을 실패 배틀로 정했는데, 글 줄기가 떠오르 않았다. 3주 연속 똑같은 상황다. 제목만 바꾸면 되는데 쓸데없는 고집으로 기획했던 틀을 바꾸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다.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직진하는 행위는 실패로 가는 지름길인 줄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 이러다가 마지막 글은커녕 한두 편 정도만 끄적이다가 포기할 모양새이다. 이럴 줄 알고 연재 마지막 글 제목을 '연재에 실패하다'라고 정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삼십 분 넘게 컴퓨터 키보드로 맥락 없는 문장 여러 개를 만들었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연필을 쥐고 다이어리에 휘갈겼다. 정성을 더하면 다를 줄 알았는데, 키보드가 만든 이상한 문장과 제법 어울리는 외계어만 새겨졌다. 외계어 덕분에 쓰기를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3주 전 연재 한다며 거들먹대던 때를 돌아봤다.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 낼 단상들은 A4 용지에 점 두 개 정도 찍힐 만큼만 머릿속에 남았다.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이라서 다시 자려고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결국 괴발개발 초고라남기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 앉아서 한숨을 서너 번 쉬다 보니 술자리에서 실패를 말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냉큼 술자리에 합석하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귀를 쫑긋 세우고 다 보니 대부분 실패보다는 성공한 이야기였다. 가끔 내뱉는 실패나 실수는 성공을 자랑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유년 시절 먹고살기 힘들었던 기억을 말하는 건 지금 먹고살만하기 때문이며, 학창 시절 놀기만 했던 기억을 주저리는 건 지금 매 순간 충실하때문이다. 실수로 혼나거나 실패로 망친 일상을 쉽게 내뱉는 건 지금 아프거나 힘들었던 감정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실패로 싸울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술잔에 실수나 실패를 담아 나누곤 한다. 평소 기억나지 아픔은 취기가 돌고 다른 사람 실패나 실수가 들려오면 스멀스멀 다가온다. 조금 쓰리고 아프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술과 버무리면 조절 가능한 수준으로 기억은 포장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다듬어지는 건 아니다. 나눌 수 없는 실패와 실수는 여전히 남는다. 가끔 속이 타들어가며 머리까지 지끈거리기도 한다. 잘 끄집어낸다면 실패 배틀에서 승리하고, 주변을 숙연하게 할 텐데, 용기가 없어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쩌면 지워버렸을지모른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지워버리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지만, 가끔  한 개도 찍히지 않은 하얀 종이처럼 지워지기도 한다.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상실일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굳이 다시 아파해야 이유는 없다. 다른 방법도 하나 있다. 실패나 실수를 과정으로 합리화하는 방법이다. 돌아이나 잠처럼 실수나 실패도 총량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일정량을 충족하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만약 실패와 실수가 계속된다면 아직 총량에 다다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단지 지난한 시간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합리화한다.



결국, 표현할 수 있는 실수나 실패는 술자리에서 배틀 따위에 적당하다. 더구나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에 실수나 실패라고 단정 지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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