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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Jun 03. 2024

만사 다 싫지만 요가는 간다.

Day 57


무기력하다. 우울하다. 날씨도 우중충하다. 봄인가. 봄인데 날씨는 왜 이모양이지. 흐리다. 해가 안 보인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재된 우울감이 있다. 만성화된, 친구와도 같은 우울감. 아직까지 병원에 가지 않는 건 ‘난 정상이라구!’ 라는 판단이 아니라, 그럼에도 끼니는 잘 챙겨 먹고 울면서도 빨래는 개키고 밀크티도 만들어 먹고 친구도 만나고 요가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게 많다. 그 밖에도 잔잔바리로 펼쳐놓은 일들이 많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은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혼자 있을 때 잘 울었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잘 놀았다.


심심할 때, 스스로가 궁금할 때 심리학 책을 자주 빌려 읽었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구입을 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구입한 책들이 꽤 된다. 아마 중고서적에 팔지 않았다면 책장 두 칸 정도는 찼을 거다. 아무튼 내가 하고픈 말은. 나는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어떤 고질적인 병 같은 게 있는 것 같단 거다. 최근 빌려 본 불안장애 아동에 관한 책을 보니 내가 그러한 아동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공감 가는 게 많았다. 맞다. 어릴 때 울었던 기억을 복기하면 ‘불안’에 못 이겨 울곤 했던 것 같다.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기질을 조금은 상쇄시켜 주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마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안타깝게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편은 아니다. 자세히 쓰고 싶지만 여기에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내 성격 중 다행스러운 건 이런저런 힘든 일을 겪어도 혼자 울고 화내고 글 쓰고 털어버리지 주위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진 않는 것 같단 거다. 그러나 혼자 감당하기 힘들 때엔 전화하자마자 엉엉어엉엉 울어버리기도 한다. 보통은 나름 혼자 글을 쓰고 취미활동을 하며 격한 감정들은 이리저리 다듬고 정제된 몇 문장 정도의 일들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때때로 잘 안될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마음 정돈하고 스스로 중심 잡는 게 3-4년 동안 꽤나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즘 들어 잘 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내 안에 남들도 너무 많고 때때로 내가 나를 괴롭히는 기분도 든다.


강제적으로 이런 감정이나 생각들을 오프(off)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다른 것들을 하려니 만사 다 의욕이 없고 귀찮다. 강제 오프시키지 않으면 내가 감당 못할 불안들이 나의 그릇을 범람하고 흘러넘쳐 결국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봐야 한다.


강제적으로 오프 시킬 수 있는 것들 중에 최고는 움직이는 거다.

몸을 움직이는 것.


요가 이전에는 산책이나 헤비메탈을 들으며 격하게 동네 뒷산 오르기를 하며 머리를 비워 내 곤했는데 (헤비메탈을 듣는 이유는, 걸으며 답도 없는 이런 상황들을 막 욕하고 싶지만 밖에서 욕을 할 순 없으므로 나 대신 f*ck을 외쳐 귀에 꽂아주는 쇠맛 그득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 귀에 피가 나는가 싶을 정도로 음악을 들으며 바깥 운동을 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요즘은 요가를 간다.


메탈 듣다가 요가라니 너무 중간이 없나 싶지만 요가는 절대 정적인 종목이 아니닷!



오늘은 하타요가.


가지런히 스트레칭 비슷한 동작들로 시작하다 점점 스스로가 기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동작들로 나아간다. 아직 다 잘하진 못하지만 기존의 요가들보다 좀 더 구부리고 뒤로 꺾고 비틀고 버티는 동작들이 많다. 이걸 다 해내시는 선생님을 보면 정말이지 어떤 신성한 존재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왕 여기에 발을 담근 것. 언젠간 나도 저렇게 될 때까지 다녀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모른다. 번복할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는 대신에 요가를 가는 거다.


특히 오늘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명상법을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좀 뿌듯한 하루였다.

첫 시작 시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하는데, 마음이 유독 탁하고 어지러웠던지라 마음속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고 나서 환기된 빈 방 한가운데에 고요히 나만의 촛불을 다시 켜보는 상상을 했다.

산소가 없어 답답했던 가슴의 방에 시원한 공기가 통하고 단 하나의 촛대에 뿅~ 하고 마음속 불씨를 하나 켜서 가만히 가만히 바라보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타요가에 임했다.물론 너무 힘들 때엔 불씨 따위 생각이 나지 않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그 불씨를 가만히 피우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유독 후굴을 심하게 하는 날은 누운 자세에서 무릎을 구부려 가슴팍으로 끌어안는 동작들을 하곤 하는데 나는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때엔 이 동작이 너무너무 반갑고 좋더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렇게 꽉 끌어안는 일이 잘 없으니까. 자기 자신을 토닥거리면 마음의 안정 면에서 좋다고는 하지만 습관이 안되면 자꾸 까먹고 막상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요가원에 와서 요가를 참여하면 이런 경험도 곧잘 하게 된다.


'기특한 녀석. 오늘도 끝까지 열심히 해냈군. 잘하고 있어!'

하고 셀프 칭찬도 해주면 좋다. 이만해도 기분이 살만하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어제 집에서 드디어 머리서기 비슷한 흉내를 냈다! 비록 벽에 등을 대고 시도한 동작이지만 난 생 처음으로 지구를 들어 올렸다…


하하.




마음이 무기력하고 힘든 분들 요즘 많을 줄로 안다.

비교당하기도 쉽고 가만히 내 일만 할 뿐인데도 세상은 존재 자체로 욕을 하는 경우도 많다. 숨만 쉬어도 후려침을 당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후려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혹은 그것들에 휩쓸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아무튼, 이런 세상에서 온전히 내 정신을 보존하며 산다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뭐 해답이 있냐고? 요가를 하면 스스로를 보존하며 오똑 설 수 있으니 요가를 추천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오산… 그런 게 있을 리가.


그저 이런 시간과 시선, 소리와 문자, 형태와 장소에서 벗어나 작고 작은 매트 위에서 자신을 만나는 건 의외로 이따금씩 위로가 되는 행위란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위로가 되지 않더라도 그런 것들로부터 강제로 스스로 차단시켜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다.

아니 무엇이 되었건 자신만의 호흡 공간, 자신만의 아가미가 될 수 있는 어떤 한 가지를 꼭 가졌으면 좋겠다. 작은 공원의 벤치라던가 문구점 앞의 고양이 쓰다듬기라던가 바닷가 어느 카페에서 멍 때리기라던가 남산 계단 어느 끝에 가만히 서서 바람의 속삭임에 춤추는 나뭇잎 소리를 듣는다던가 옥동자 먹을 때 초콜릿만 남겨놓고 마지막에 먹어보는 등 나만의 아가미 하나쯤은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갖춰보면 조금씩 내가 보이고 나를 아는 재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게 삶의 재미가 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또 우울감에 젖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나도 모르겠다.


일단 그냥 살아보고 나중에 깨닫는 게 있으면 확실한 한 가지를 알려주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본 바, 한 가지 확실한 건 잘 모르는 채로 사는 게 일단은 삶인 것 같단 말은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 확실한 건 알기 위해선 사유하고 경험하여 몸으로 깨닫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단 거다.

내가 직접 아는 것. 내 몸으로 아는 것.


그것만큼 확실한 깨달음이 있을까?


그러니 지금 내 얘기도 하등 쓸모없고 넘쳐나는 자기 계발 영상도 내가 겪는 것 만 못할 거다.



내 글 읽지 말고 그 시간에 하드 하나 더 사 먹고

책상 한 번 더 닦고 저녁메뉴 즐겁게 고민해 보는 걸 추천한다. 편의점에 신상맥주가 뭐가 있는지 요즘 주말 조조영화는 뭐가 있는지 쌀밥에 현미를 섞을지 보리를 섞을지 따위를 생각해 보는 걸 더 추천한다.


약간 싸구려 위로 같다고?

맞다. 싸구려 위로다. 여기 내 글은 공짜니까.


싸구려 위로에서 얼마나 더 큰걸 바라나요.

가장 값어치 있는 내 시간을 사시길 바랍니다. 아. 물론 제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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