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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Jun 04. 2024

하수는 치열하게 요가를 한다.

Day 58


요가 58일 차. 대략 5개월의 시간.

아니 벌써 5개월이라고?! 새삼 이렇게 쓰고 보니 놀랍다. 반년을 가까이 다니고 있다니 벌써? 흠. 대견한 노릇이다. 내가 이렇게나 길게 운동을 오래 다니다니.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거늘. 요가가 나랑 어느 정도 합이 맞는 운동인가 보다. 아니, 사실 명상과도 가깝지. 나는 명상이 절실히 필요한 인간이다. 매일 나를 가다듬고 스스로 정 맞히며 살아야 하는 게 나의 인생의 숙명과도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아마도 내가 가진 미성숙한 인격과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갭이 스스로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나를 낮춰 겸손한 게 아니라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나? 당연한걸. 나는 고약하게 늙어서 사람들이 수군대며 피하는 괴짜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삶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최소한의 젠틀함과 사회성을 가진 노인이 되고 싶다. 그래, 나는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남들한테 좋은 게 아니라 나한테도 좋은 사람. 그럼 자연스레 좋은 어른이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좋은 게 남한테도 좋은 거고 내가 싫은 게 남한테도 싫을 수 있단 걸 알아가는 거지. 무조건 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쉽게 말하면 공감과 배려를 지금보다 더 많이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어진 사람까지는 나는 못 되는 그릇이란 걸 알기에 그나마라도 배우고 노력하고 싶은 거다.


이런 걸 어릴 때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모른 채로 살았다. 나한테 가혹했고 견디는 게 자랑이라 여겼다.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 강한 거라고 생각했던 지난 내가 있다. 전에도 썼지만 나는 맹수와 가까웠다. 한데 그걸 남에게도 특히나 동생들에게도 은연중에 강요하는 나를 발견했다. 녀석들은 그런 나를 늘 무서워하거나 빡빡한 사람으로 생각했더랬다. 나도 그때의 내가 너무 별로다(그럼에도 나와 사귀어준 지난 남자친구들에게 감사하다). 그런데, 뒤늦게 나를 돌아볼 시간들이 생겼고 피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은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어 스스로 알을 갈기갈기 찢게 만들었다. 그 알은 내가 만든 알이기도 하지만 30년 가까이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짓이겨 밟고 갈기갈기 찢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났고 어찌 되었건

스스로 알을 깨뜨렸다.


소설 ‘데미안’에서도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하나의 세계를 대차게 깨뜨렸다.


그런데! 그러면! 되게 뭔가 멋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깨긴 깼는데 약간 메추리알 껍질을 까듯 자꾸 뭐가 손에 묻어있는 느낌이 든다. 깼는데 아직도 이제 막 깨뜨린 어설픈 내가 있다. 털도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보송하지 않은 축축한 작은 새처럼.


그래서 계속 계속 그 잘잘한 껍데기들을 털어내고 씻어내고 골라내고 있다.


고맙게도. 요가가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중이다.


5개월 차 요가 애송이. 오늘은 빈야사다. 원장님의 강하고 뜨거운 빈야사. 도대체가 저 카리스마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체구는 작지만 지난 수련의 시간 동안 겹겹이 쌓아온 단단한 근육들에서 오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그럼 왜인지 모르게 목소리도 더 커질 것 같고 쉽게 쭈굴 해지는 마음도 덜 할 것 같다. 뭐든 금방 회복할 것 같고 빨래도 설거지도 후루룹 뚝딱 해치울 것 같고 전반적인 일상생활에서의 에너지가 쉽게 방전되지 않을 것 같다.


앗. 나를 너무 요즘말로 짜치는 인간으로 표현했나? 그렇게까지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그렇다. 사실 모르겠다.


오늘도 자만해서 요가를 갔다. 일부러 구석진 곳에 매트를 펴고 ‘아. 오늘은 조금 쉬엄쉬엄 가볼까? 한 20년 요가를 다닌 은퇴한 할아버지 컨셉으로 요가를 하고 싶다. 그럼 아마도 크게 힘 들이지 않고도 편안하게 물 흐르듯 동작을 할 수 있겠지.’ 따위의 생각으로 매트에 앉았고 시작한 지 10여분 만에 그 생각은 저 멀리 도망갔다.


‘어이쿠. 내가 꿈도 야무졌네.’

물 흐르듯 편안히 따위가 하수에게 될 턱이나 있겠는가. 전력질주한 사람 마냥 숨을 헐떡이게 되는 게 하수의 요가다. 일단 빈야사 플로우 몇 번 하고 나면 태양 경배 자세에서부터 어지럽다. 수업의 중 후반정도 되면 간혹 가다 아찔해 올 때가 있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우 정신 차려. 어우 어지러워.’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시에 배가 먼저 땅에 닿으려는 걸 안간힘을 써 힘을 나누어 분산하고 업독에서 다운독까지 영혼의 멱살을 붙잡고 갔다.


‘하자. 하자. 헉. 헉. 이것만 더. 이것만 해보자.’


모든 플로우가 끝나고 사바아사나 -


심장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쁘다. 모든 신체기관에 힘을 빼본다. 그랬더니 심장과 호흡, 두 가지만 느껴진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가 호흡만이 느껴지는 내 몸을 가만히 지켜보며 이런 말을 해준다.


‘잘했어. 수고했어. 천천히 천천히 릴랙스-‘


빈야사 플로우 중에 치열하지 않은 순간은 처음과 끝뿐이지만 치열하게 버틴 만큼 뿌듯함도 따라온다. 치열하지 않게, 몸에 익어서, 쉬엄쉬엄 물 흐르듯이 편안한 요가를 하는 날은 오기는 올까? 뭐,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런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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