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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Jun 13. 2024

무릎 통증으로 얻은 마음수련

Day 62


하타 요가 시간이다.

여러 요가 시간마다 내가 받는 긍정이라던지 스트레스 등은 각기 다르겠지만, 하타요가는 다른 요가보다 내게 좀 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오래 버텨야 한다거나 힘이 들어 땀을 비 오듯 흘리듯 하는 요가가 아닌데도 이토록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건 바로 내 무릎 때문.


전에도 썼지만 하타요가에는 아쉬탕가나 빈야사에 비해 좀 더 구부리고 꺾고 꼬는 동작이 많다. 그 과정에서 지난 수련동안 살짝씩 스치는 정도로 지나갔던 통증들을 정면에 두고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다른 관절이나 근육들은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면 차차 부드러워지고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가 있는 반면에 내 오른쪽 무릎은 영 가망이 없어 보인다. 정말이지 너무 아프다.


3,4년 전에 요가를 할 때에도 이 무릎의 통증 때문에 요가를 관뒀었다. 정형외과를 가니 ‘슬개골 염증’이라고 했다. 아마 평생 달고 살아야 할 거라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법이 있다면 무릎 위의 허벅지 근육을 단련해 무릎이 아닌 주변 근육을 이용한 움직임을 쓰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번에 요가를 시작할 때엔 처음엔 살짝 통증이 있긴 했지만 다리에 근육도 제법 붙고 허벅지도 튼튼해졌다고 느껴서 예전만큼의 통증은 이제 겪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뜬금없이 갑자기 예전처럼 오른쪽 무릎이 너무 아픈 거다.


특히 다누라아사나 동작(배를 땅에 대고서는 어깨와 가슴을 들어 올리고 무릎을 굽힌 채 활처럼 몸을 뒤집는 동작)을 할 때에 그 통증이 제일 심하게 느껴진다. 오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하다가 발등을 잡고 뒤로 들어 올리는 순간 속으로 ‘아악’하고 얕게 내뱉을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미간은 찌푸려지고 몸에 힘이 빠졌다.


‘아. 싫다…’


사실 이전부터 서서 하는 활 동작이나,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등 무릎을 구부려야 하는 동작들이 나오면 살짝씩 아프긴 했다. 하지만 그냥 외면했다. 이 이상의 동작들은 안 하겠지 싶어서. 하더라도 살짝씩 피해 가면 되겠지 싶어서. 언젠가는 반드시 통증을 마주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막상 마주하고 나니 의욕이 없어진다.


‘고질병’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동작인데 통증 때문에 할 수 없어질 때엔 꽤나 많이 낙담하게 된다. 요가 강사를 할 것도 아니고 기인이 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할 수 있는 건 조금씩 조금씩 마스터하고 싶었던 나라서 더 기운이 빠지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런 게 마음수련인가.


안되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인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또 나아가는 것.


아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해야 하니까 무릎을 살살 달래가는 동시에 다른 곳의 근육을 키워 힘을 보조해 주면서 천천히 나아가자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기운 빠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별 수 없으니까.


그렇다 해도 당장은 평생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일이 있단 건 내겐 속상한 일이긴 하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 알고 있었고 이미 수십 번 경험한 나이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이런 걸 알아가는 과정이 서글픈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이 쌓이다가 마음에 기력이 빨리 떨어질 것도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또한 많이 있음에도, 그것들이 무엇임을 알고 있음에도 안 되는 게 있단 걸 알아가는 과정은 썩 유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런 서글픔을 겪는 과정 역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힘들어도 할 만하고 견딜만하다고 생각도 된다.

나는 요즘 요가가 작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중인데, 인생 역시 자신의 모자람과 한계, 장점, 운, 결과 등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가며 그럼에도 해볼 만하고 견딜만하니 계속 산다는 마음으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이 완벽할 수 없고, 다 잘할 수 없다. 자신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우회의 선택들을 하든 포기라는 선택을 하든 할 만한 것들을 찾아 꾸준히 그냥 걸어가 보는 거다.

정면돌파가 영영 불가능하면 측면 돌파도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고 다른 것(동작)에 힘쓰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래. 이 정도면 요가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었어.


새삼 드는 생각인데, 나는 아마도 사는 게 덜 괴롭기 위해 요가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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