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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Jun 20. 2024

실수와 실패가 내 전부는 아니듯

Day 65


아침부터 배탈이 났다. 으아- 쉴까. 하는 생각에 양치를 하며 한 20초 고민했다.


‘그냥 갈래.’


전에도 한 번 배탈이 난 채로 요가에 간 적이 있다. 배탈이 났을땐 배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게 좋으니 요가 시작 전 손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뒤 아랫배와 윗배에 살포시 얹어 따뜻하게 덥혀주고 살짝 하복부를 조인다. 하복부를 살짝 조이는 이유는 몸의 체온이 살짝씩은 올라가는 기분이 들어서다. 이 상태로 요가 시작 전까지 유지하며 호흡을 한다. 그리고 요가를 하는 동안에도 그 상태를 유지해 여러 동작들과 함께 몰아붙이면 어느 순간 배탈 난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오늘도 역시 원장님의 빈야사 시간은 화끈한 매운맛이다.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시작해서 수리야나마스카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빈야사. 몇 번의 플로우를 반복하면 땀이 뚝뚝 떨어지고 어느샌가 힘이 빠지며 살짝씩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그러다 오늘은 집중력이 흐트러진 나머지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에서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서인데 혼자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버렸다.


“왼쪽 다리~”

라고 말하는 원장님의 목소리.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다른 회원님께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왼쪽다리 들어 올려요~”

라고 거듭 말하는 원장님. 별안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나의 왼쪽 발이 바닥에 있는 게 보인다.


‘호오. 완전 정신 놓았네. 집중하자’


황급히 다시 자세를 고치고 플로우를 따라갔다.


 -에서 끝나면 내가 글 제목을 저렇게 쓰지 않았겠지.

저 실수 아닌 실수가 오늘의 빈야사 끝까지 영향을 미쳤다거나 내심 소심한 마음이 들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런 단체 활동에서 혼자 지목을 받거나 주목을 받는 것을 티는 안내도 꽤 거북해하는 편이다. 물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이런 경험은 나의 어린 시절 수치심에 관련된 기억으로 자꾸 나를 데려가는지라 현재의 일과 상관없이 혼자 살짝 울적해질 때가 있다. 유쾌하지도 않은 기억으로 자꾸 소환되는 건 그 시절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받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상처를 누군가 치유해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불쾌한 기억이 다가오면 두 눈 똑바로 바라보고 두 팔 벌려 안아주려 노력하는데 오늘 역시 그런 날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렇게 사는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란 거다. 내 친구 남편도 샤워를 할 때면 한 번씩 수치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괜히 기분이 나빠지곤 한단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원인이 무엇이건 이런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는 건 나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이것들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마치 비가 오면 땅이 젖는 것처럼. 젖어버리고 축축해지는 걸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아. 오는구나. 수치심이란 녀석이.’ 하고 바라보고 인사하는 수밖에.


‘왔구나. 어김없네. 충분히 쉬다가 가.‘


수치심도, 잠깐의 실패도 그저 왔다 가는 것들일 뿐 그것들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당장의 나는 ‘요가를 하고 있는 나.’

이것만이 가장 명백한, 지금 당장의 내 모습이다.


저런 감정들은 잠시 내게 들렀다 가는 손님과도 같다. 잘 맞아주고, 잘 보아주고, 잘 보내주면 그만이다.


때때로 요 친구들이 할 말이 많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껴안아주고 달래주면 된다.


그러면 또 씩씩하게 일어나 자기 갈 길을 갈 거다.


다행히 오늘은 짧게 왔다가 갔다.


‘잘 봐봐. 수치심이 왔었지만, 나의 요가는 이렇게 계속 흘러간다고. 잠깐의 실수, 실패는 누구나가 당연히 겪는 거야. 지적받아 마냥 위축만 될 일은 아니란 거지.

어린 시절의 나야, 잘 봐. 어른이 된 너는 무척이나 씩씩하게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어. 그리고 곧장 흘러 보냈지. 왜냐면 난 이다음에 또 실수할 거거든. 다음의 실수와 실패를 잘 맞이하려면 이전의 그것들을 얼른 보내줘야 해. 그러면서 고쳐나가는 거니까. 그게 성장일 거야. 아마도.‘


나는 분명 앞으로도 계속 실수하고 실패할 거다.


이토록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나란 사람. 생의 끝까지 잘 이끌어 가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그러니 뭐가 되었건 운동합시다.

움직입시다.


불완전하고 어설픈 각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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