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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다운 김잡가 Jul 17. 2024

Day5_일정이 변경되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생긴 4시간의 자유

뮤지컬 캠프 종일반 확정

오늘 아침, 아이들의 요청에 의해 뮤지컬 캠프를 반일반에서 종일반으로 변경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참으로 고민했던 일이다. 40일, 길게 느껴지지만 이제 다시없을지도 모를 긴 여행의 절반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살짝 반일반을 추천하며 설득을 시도했었다. 큰 아이는 영어가 크게 어렵지 않기도 하고 아이돌, 배우가 꿈이어서 무조건 종일반을 하고 싶어 했고, 자유로운 영혼의 둘째 아이는 조금 힘들긴 하지만 해보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그럼 누나만 종일반 하고 이준이는 반일반 하면서 누나 올 때까지 엄마아빠랑 같이 있자.'

협. 상. 결. 렬

엄마 아빠보다 누나가 더 좋은가보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이미 사귀어서 조금 힘들더라도 뮤지컬 캠프를 꼭 길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진짜 오전 10시부터 3시까지, 데리러 오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약 4시간 30분이 생긴다. 3주 동안 온전히 우리 부부 둘만의 시간이 생기는 거다.

남편은 매일의 계획을 빡빡하게 짜서 온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3주 동안 꽉 채워서 아이들을 어딘가에 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주말 시간과 남은 3주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녀도 충분할 거라고.

작년에도 아빠 오기 전까지는 2주 과학실험 캠프 후에 비치와 마트와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현지 생활에 흠뻑 녹아들었었으니, 올해도 그런 일정이 좋을 것 같다는 건 나도 동의하는 바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남편 혼자 아이들을 데려다주었고 그동안 나는 청소를 했다, 이게 일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편은 10시 반이 넘어서 도착했다. 숙소에서 알로하 씨어터까지는 넉넉잡고 15분이면 충분하지만 종일반으로 변경하고, 봉사자를 찾는다기에 뭣 좀 물어보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여보, 이제 우리 뭐 해?

어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던 자유시간이 3주나 더 생겼으니 우리는 그 사이 할만한 것을 생각해야만 했다. 사실 나는 아이들 없이 서너 시간 쉬는 것쯤이야 일상이었는데 부지런쟁이 남편은 뭐라도 배우고 싶은 모양이다.

스타트업에 도전한 2년의 시간 동안 훨씬 더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남편이 존경스러운 동시에 좀 피곤하기도 하다.

영어를 배우러 다닐 곳은 없는지, 서핑을 배우면 어떨지, 극장에서 자원봉사자를 찾는데 그걸 하면 어떨지 생각하는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오빠, 나 커피 사줘."


일단 걸어서 케아우호우 쇼핑센터에 갔다.

케아우호우 쇼핑센터는 뷰도 끝내준다


한국 청년들이 오픈한 빙수집이 있는데 거기 가보고 싶었다.

일단 kta에 가서 아이들 간식으로 우베모찌를 사고 싶었는데 세 번이나 갔으나 한 번도 없는 걸 걸보니 이제 안 파는 듯하다. 그래도 말라사다가 참 맛있어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케아우호우 쇼핑센터에는 kta 슈퍼마켓, longs drugs, 영화관, 각종 식당과 뷰티살롱, 서점까지 갖춰진 곳이다. 남편은 서점을 보자 얼굴빛이 환해졌다- 새로운 취미생활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계정을 만든 남편, 벌써 팔로워가 1000명에 달한다-. 작은 책방에서 한참을 구경하길래 나는 나와서 그 앞에 널브러진 고양이 구경을 했다.

커피와 먹으려고 간단한 점심을 싸왔다.

아이들 무슈비를 싸면서 오늘도 여분의 무슈비를 하나 더 쌌는데  밥 양이 많아서 목멕힐까봐 재료도 두 배씩 넣었더랬다. 남편은 그걸로 점심을 때웠다. 나는 에브리띵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먹었다.

아, 커피. 커피는 안 마셨다. 아니 못 마셨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 청년들이 오픈한 곳은 <클로버 앤 머그>. 빙수 가게인데 현지 친구(계속 언급되는 그 친구 )가 커피도 아주 맛있다고 해서 갔는데 오늘 커피머신이 고장 났다고 한다. 한국이었으면 어떻게라도 빨리 재개하는데, 코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 느긋한 곳이므로 오늘은 커피를 안 판다고 보면 된다.

근처에 있는 크레이프 가게인 <피베리 앤 갈래트>라도 갈까 하다가 문득 아이들을 픽업해서 커피를 마시러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서점 앞 평상에 앉아 그렇게 맛난 점심을 먹었더랬다.

참고로 에브리띵 베이글은 코스트코에서 샀는데, 한국은 반입 금지다. 대마씨드가 잔뜩 박혀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마약에 매우 보수적이라 씨알머리까지 싹 다 불법이므로 한국으로 가져갈 쇼핑 목록에서는 지워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애기들도 맛있게 먹으며, 환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산호세에 사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다. (별별 체험을 다 해보고 가는군. 미국 본토에 전화를 걸다니...)

남편이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3년째 살고 있는 큰 아이 친구의 엄마인데, 미국 번호가 생긴 김에 연락을 시도해 30분이나 수다를 떨었다. 40일 중 3박 4일 정도만 할애하여 본토에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동안 비어있는 집과 차는 하루에 50만 원씩 쑥쑥 빠져나가겠지만...)


사랑스러운 동네, 사랑 많은 사람들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비치로 갈 생각에 수건과 옷을 챙겨 남편과 함께 나왔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집에 갈 생각도 않고 록시 선생님과의 수다를 이어갔다. 이곳의 선생님들은 미국 학교 선생님들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상냥하고 친절하다.

록시 선생님은 아이들이 수업하는 동안 우리 부부가 다녀오면 좋을 만한 곳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오가닉 커피팜에서도 일을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카우아이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와, 로스팅이 덜 될수록 고카페인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쩐지 매번 고소한(다크로스팅) 라떼를 몇 잔씩 마셔도 잠이 잘 온다 싶더라니...

얘들아, 선생님도 퇴근하셔야 하지 않겠니? 어서 가자꾸나!

겨우겨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갈까?


비가 와도 놀이터

코나 벨트로드는 비가 자주 내린다.

또 비가 내린다.

아이들은 그래도 고래놀이터를 가겠단다.

오후 비치는 파도가 더 세니, 그래 놀이터로 가자!

1년동안 그리웠던 맛, 아들이 가지고 있는 과자는 치토스 퍼프... 한국에는 없는건지 어디서도 못찾았다.

작년에도 몇 번 왔던 이곳.

아이들은 고래 동상이 있어서 고래놀이터라고 부른다. 과자 한 봉지와 물만 가지고 오면 한 시간은 족히 노는 곳이다.

나무로 된 미끄럼틀을 타면 놀이터의 지대보다 낮은 곳에 내려가게 되는데 나는 약간 냄새에 예민해서 싫어하지만 아이들은 지하로 연결되는 아지트에 가는 양 너무나 좋아한다.

놀이터 곳곳에는 테이블과 벤치가 있는데 특히 이 세 테이블은 각각 오아후, 마우이, 빅아일랜드의 지형을 본따 만들어놓은 것볼 때 마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한다.

큰 아이 이수가 여기 그네는 한국 그네랑은 뭔가 다르다며, 앉으면 엉덩이를 꽉 잡아준다는데, 나는 거기에 초를 쳤다. 혹시 나는 동심 브레이커인가...

"엄마 어릴 때는 다 이런 그네였어. 한국 그네가 더 신형이야..."


이 놀이터는 아주 작은 자갈들이 깔려있는데 작은아이 이준이가 회전하는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약간의 상처가 생겼다. 혹시 나는 동심 브레이커인가...

"다쳐서 못 놀아. 이제 집에 가자."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아프긴 한데 집에 가기는 싫고... 작은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넌 내가 낳아 잘 알지, 아빠가 키워 잘 알지, 수영장 가자니까 금세 헤헤헤 한다.


4시 반부터 7시까지 콘도 수영장 전세내서 오늘도 수영강습을 받았다. 그냥 노는 거 아니고 아빠에게 수영강습을 받는 건데도 아이들은 물에 담가놓으면 그저 신나나보다.

나는 덕분에 두 시간 낮잠을 잤다. 결국 오늘 하와이 와서 처음으로 커피를 안 마신 것 같다. 어쩐지 많이 졸렸다. 한숨 자서 개운한 기분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스테이크를 구워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식사 후에 다 같이 모여 앉아 카드게임도 하고, 체리도 먹고, 야식으로 맥 앤 치즈까지 먹고 나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하루도 알로하, 참 잘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다섯 시간, 내일부터 우리 뭐 하지?

낮에 남편과 잠시 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서핑을 배웠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있는 것도 좋다.

집 근처에 공용자전거가 있던데, 그걸 타고 알리이 드라이브를 달려볼까?

날이 좀 맑으면 벨트로드에 쫙~ 깔린 커피농장과 카페들을 드나들어도 좋을 것 같다.

또, 8월 2일 마지막 캠프 일정이 끝나고 남은 3주 동안 아이들과 빅아일랜드 곳곳을 누빌 여행준비를 하는 것 도 좋겠다.

아무래도 좋다.

살러 온 것 같은 이런 여행이 너무 다.

물론, 빅아일랜드에 왔으니 화산공원도 갈 것이고 마우나케아도 갈 것이고, 와이메아 동네도 구경할 것이며, 힐튼 와이콜로아에 가서 돌고래와 큰아이의 극적 상봉을 하게 할 것이며, 여름에 가기 딱 좋은 힐로도 가봐야 하고, 영화 속 장소인 호노카아 마을도 꼭 지나쳐보고 싶다.

작년에 갔던 비치 외에도 갈 곳이 무궁무진하다.

서두르지 않을 뿐, 천천히 코나스러운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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