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이후에 몇 주가 지났을 무렵, 학교로부터 메일이 왔다. 한 아이의 학부모가 나의 개인 연락처를 물어봐달라는데 괜찮냐고.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고, 현지의 내 전화번호를 전달했다.
여섯 살 된 금발의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였는데 엄마가 말하길 아이가 캠프 이후에 로사와 다니엘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하필 연락한 다음날 그리스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저녁비행기 타기 전에 잠시 만날 수 있냐고. 이 또한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고, 다음날 우리는 케이키 뮤지엄(keiki는 하와이어로 '어린이')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여행 준비로 인해 아이의 엄마는 못 오고 베이비시터가 아이와 아이의 남동생을 데리고 왔다. 그렇게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베이비시터가 알려준 아이 엄마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해 두었다.
이번 여행이 확정된 후 나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그녀에게 연락을 시도했고, 그녀는 여전히 로사와 다니엘을 기억하는 딸의 영상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우리 여행 기간 중 미국 본토로 여행을 가기 때문에 7월에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가 8월 2일까지 하는 3주간의 뮤지컬 캠프에 참가하는데 반일반을 신청했으니 혹시 우리 아이들도 관심이 있으면 같이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 주었다. 캠프 내용을 보니 흥미로웠다. 3주간 아이들이 뮤지컬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대본, 연출, 무대, 연기 등)을 배우고 마지막에는 직접 준비한 뮤지컬을 공연까지 한다. 오! 바로 이거야!
사실...
나는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학교에 대기를 걸어둔 상태였다. 그곳은 코나와 1시간가량떨어진 와이메라라는 지역에 있는 HPA다. 미국학교의 여름캠프는 대부분 체험형 캠프이기 때문에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형식이 아니라 어학캠프보다는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졌다(놀러왔는데 공부시키기 싫은 에미 마음). 하지만 우리 차례가 된다는 보장도 없이 출국 일자는 다가오고 있었고 첫 일주일간의 숙소를 못 잡은 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제안을 받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HPA가 안 되면 예전에 다니던 학교로 2주 정도 보낼까도 생각했는데정규 학기 중이라 작년과 조금은 다른 분위기일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었기도 했다.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3주 캠프 중 앞 1주는 캠프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케아우호우 쪽에 일주일 숙소를 잡게 되었다.
캠프 갈 준비, 완벽한 분업 시스템
첫날은 모든 학생들이 3시까지라고 해서 점심 도시락을 쌌다.
일찍 일어난 것 같은데 첫날이라 좀 우왕좌왕(물론 나 혼자) 하느라 시간 촉박하게 출발했다.
-잠시 딴 얘기지만 꼭 할 얘기를 하고 넘어가자면, 남편이 아이들과 놀기 때문에 나는 밥과 이런저런 보조적인 거의 모든 일을 하는데, 처음엔 나 혼자 발발거리는 것 같아서 화가 좀 나서 구시렁거리고 짜증을 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운전하랴 애들 돌보랴(심지어 2학기 수학 기본서를 들고 와서 아침에 공부까지 시킨다), 나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정도의 일을 하면 나머지는 거의 자유다. 비치에서는 편히 앉아 바다멍이 가능하고, 현지 친구랑 커피타임도 가능하므로 매우 만족스러운 분업시스템인 것 같다.-
뮤지컬 첫 수업에 들여보내고
코나 벨트 로드를 따라 캡틴쿡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동네에 알로하 씨어터가 있다.
벨트로드는 거의 습하고 비가 오는 날씨다. 1-20분 밖에 차이가 안 나는 거리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다. 약간의 비가 흩뿌리는 아침 9시 40분, 우리는 작고 허름한 극장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등록을 시도했으나 입력오류들이 떠서 오늘 시작 직전에 와서 등록을 했다. 그전까지는 뮤지컬 수업에 참가할 수 있게 극장 측과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었다. 이메일 몇 번 주고받은 사이인데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들. 참고로 선생님들은 알로하 씨어터의 현직 배우와 스태프라고 한다.
1년여 만에 만나는 금발의 꼬마아가씨는 일곱 살이 되었고, 여전히 사랑스러웠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아이들이 모여 앉은 것을 보고 마음 편히 나왔다.
극장에서 나와서 동네를 둘러보니 참 한적한 시골, 마치 시댁인 김천 느낌이 나서 남편과 큭큭거렸다.
습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 코나 벨트 로드 어디쯤인 이 동네, 3주 동안 오가며 작은 카페들과 갤러리들을 구경해 봐야겠다.
불현듯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맛있는 도넛 냄새가 우리를 작은 빵가게로 인도했다. 이런 곳, 느낌 좋아, 맛있을 것 같아 하며 커스터드가 든 말라사다 하나를 사 먹었다. 커스터드가 안 달아서 좋았지만 묘하게 맛있지도 않아서 딱히 또 가진 않을 것 같다. 케아우호우 kta 베이커리에서 파는 말라사다가 내 입에는 훨씬 맛있다.
이번 여행에서 부부가 단둘이 5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몰라서(뮤지컬 캠프는 10:00-12:30) 어디를 갈까 무얼 할까 고민을 많이 하였으나, 그냥 집에 와서 낮잠을 잤다, 2시간 30분이나.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모양이다. 낮잠을 자고 나니 남편이 말하길 최고의 목적지였다. 정말 그랬다. 어찌나 개운한지.
아이들 도시락을 싸면서 여분으로 준비한 무슈비-어디 공원이나 비치나 커피농장 같은 곳에서 먹으려 했던-를 먹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반일반 한다더니 종일반을 하겠다고...
늦지 않게 갔는데 이미 다른 엄마들이 와 있었다. 그중에 뮤지컬 캠프를 추천해 준 금발 꼬마아가씨의 엄마도 먼저 와 있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므로 베리 스몰 토크로 첫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의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잠시 수업 분위기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원래 이곳 아이들이었던 양 녹아들어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헤어지기 아쉬워 자리를 뜨지 않는 아이들... 3주 동안 금발 꼬마아가씨와 놀이터도 가고 수영장도 가고 그 집에도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겨우 차에 탈 수 있었다.
친구가 반일반에서 종일반으로 바꾸었다고 귀띔해 주자 아이들은 저도 종일반으로 바꿔달란다.; 엄마 아빠 데이트 시간 주려는 거니? (덥석) 고맙다. 내일 변경신청해 주마. 번복은 없는 거다.
그나저나 이러다 너희 뮤지컬계의 라이징스타 되는거 아냐?
완벽한 분업을 통한 완벽한 휴식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이 아이들과 콘도 수영장에서 놀겠다며 현지에 사는 한국친구(앞 회차에서 여러 번 언급한, 작년에 사귄 친구) 집 앞에 내려줘서 그녀와 카페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아까 말했던 완벽한 분업이기에 이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여행 안 같지만, 로컬의 일상처럼 즐기는 것이 우리의 여행 스타일인 것을 이미 인정했기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 중이다.
너무 잘 쉬느라 사진 한 장이 없는 는 것이 아쉽다. 다음엔 꼭 사진을 첨부하리라, 나의 자유시간을.
오늘은 코나 커피 앤 티에 가서 아이스 라테를 마셨다. 이곳은 아이들이 유독 좋아했던 카페다. 다음엔 아이들과 같이 와야겠다.
종일반 한다는 아이들을 위해 오밤중 마트 장보기
무슈비 쌀 일이 많이 없을 줄 알고 어제 코스트코 장 본 목록에서 뺀 스팸. 그래서 1캔에 무려 5불이나 주고 샀던 스팸을 오밤중에 또 사러 갔다. 오늘은 월마트로 갔다.
오밤중 장보기가 마냥 즐거운 아이들. 장난감 코너에서 꼭 사고 싶었던 것들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딸아이는 내가 작년에 사주고 싶었는데 품절이라 못 구했던 바비 더 무비 버전을 샀는데,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다음엔 켄도 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