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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Jun 30. 2023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 읽기: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1930년대 일간지에 연재한 소설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소설가 김말봉의 주요 작품, ‘고행’, ‘찔레꽃’, ‘화려한 지옥’을 하나의 작품처럼 재구성한 연극이다. 


연출자 정안나는 김말봉이 당시 명성과 작품성에 비해 국내 문학계에서 저평가된 현실을 인식하고, 그녀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이 작품을 기획했다. 3편의 소설을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는 수준을 넘어서, 1930년대 인물의 사고방식과 당시 문화를 현대의 관객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고민했다.


우선 신민요를 추구하는 음악그룹 더튠과 협업이 관심을 끌었다. 전통악기와 현대악기를 조합한 크로스오버 연주와 노래가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며, 흥을 돋웠다. 1930년대와 2020년대, 긴 시간의 간극을 가장 손쉽게 넘어서는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특히 신민요의 정서와 리듬은 90년 전의 한국 정서를 새롭게 느끼고 공감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또한, 극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형식에 있어서, 당시 유행했던 변사와 만담가들의 대화 형식을 차용한 점도 색다른 시도였다. 과거에 한 명의 변사가 심파극을 주도했었다면, 이 연극은 두 명의 변사가 만담을 주고받듯이 이야기를 이끌었다. 배우의 대사로 전달할 수 없는 상황 설명과 복선, 효과음과 관객의 흥을 높이는 일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1930년대 작품을 그 문화적 예술적 배경에서 다루고자 했던 연출자의 섬세한 의도와 원작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당시의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해서 무대에 올렸다면, 변사나 만담가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만담 하는 변사는 무대 장치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이 작품은 무대에 배경이 되는 실내외 공간 디자인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무대를 가구 하나 없는 추상화된 삼각과 사각의 다면체만으로 세팅했다. 추상화된 공간의 장점은 설정의 상상력으로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투명한 장막에 이미지를 투영해서 상황과 배경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높였다. 


그리고 추상화된 공간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하나의 다면체가 방이 되고 침대가 되고 공원도 되었는데, 배우들은 상상력으로 적절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취했다. 다른 공간으로 변모되도록 추상화된 공간을 완성했던 것이다. 


연극에 영화적 요소를 끌어들인 연출도 신선했다.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고 물건을 주고받는 장면을 연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클로즈업 화면은 주인공의 시선이 상대가 아닌, 관객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상대방의 시선도 관객을 향하게 하였다. 대화를 하는 배우가 상대를 보지 않고, 객석의 관객을 바라보며 몸짓 연기를 했다. 관객은 대사를 하는 배우를 번갈아 보다 보면, 배우의 클로즈업 화면이 컷으로 교차 편집된 영상을 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김말봉 작가의 작품은 통속소설의 성공 요소가 모두 적용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성공 요소들은 현재 성공하는 멜로드라마들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남녀의 사랑과 불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정형화시켰다. 사랑과 불륜의 이야기는 1930년대뿐 아니라, 2020년대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이는 김말봉의 작품이 인간의 사랑과 일상을 단적으로 포착하여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통속소설이 뭐 어때서?! 

연극의 제목은 통속소설에 대해 당당하게 물어보고, 통속소설의 당당함을 내세우듯 주장했다. 연극을 보고 나서,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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