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하는 가이드 고전 다이해스트 여행의 출발은 호메로스의 두 편의 서사시입니다.『일리아드』와『오딧세이』의 작가로 알려진 호메로스는 여기저기 유랑하며 시를 작은 수금이라 불리우는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청중 앞에서 유료로 공연하여 먹고 사는 바드(bard)였습니다. 작사 작곡 편곡에 노래까지 하는 만능 아티스트로 추정되며 엘튼 존이나 밥 딜런의 고대 그리스 버전입니다. 요즘처럼 기획사도 없고 미디어도 없던 삼천년전에 어떻게 광고하여 청중을 모았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바드의 공연은 한 지역을 방문하면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는『일리아드』가 일만 오천 라인『오딧세이』가 일만 칠천 라인 이상이니 전부 들으려고 한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오딧세이』만 해도 일회 공연에 5권 씩 노래한다고 가정해보아도 거의 5 일이 소요 되는데 말입니다. 상상이 안가는 점은 이 공연을 악보없이 스크립트 없이 전부 암기하여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에픽은 같은 형용사, 같은 표현, 같은 비교, 같은 말 심지어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전달자로 하여금 외우기 쉽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듣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반복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도움을 주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유량 시인들의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의 주제를 담은 순회 콘서트 사업은 서양에 기독교가 보급되면서 크게 쇠퇴되어 지중해 주변 국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호머의 시는 비잔티움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5세기에『일리아드』와『오딧세이』의 인쇄본이 이태리에 전해지면서 그 인기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유럽에서 기독교 전파이후 신본주의에 눌려 맥을 못추던 휴머니즘이 르네상스시대에 되살아나는 계기가 바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입니다. 이러한 바드의 유랑 콘서트 문화는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전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는 이와 상당히 비슷한 형태의 공연 문화가 아직도 존재합니다. 바로 판소리입니다. 판소리의 소리꾼은 노래 전문 바드 격이며 북치는 고수는 리라를 연주하는 악사입니다. 소리꾼이 부르는 춘향가나 홍보가가『일리아드』와『오딧세이』인 셈입니다. 소리꾼이 고전 연예소설인 춘향전에 곡을 붙인 춘향가를 완창하는 데 8시간 30 분이 걸린다고 하니 작사 작곡을 못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며칠에 걸쳐 노래로 이야기를 전하는 호머시대의 음유시인을 연상 시킵니다. 판소리 마당은 우리가 울고 웃고 배우며 또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장임을 감안하면 고대 그리스의 바드 문화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나라에 전해 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일리아드』와『오딧세이』를 노래하는 음유시인들과 이를 듣기 위해 모인 청중의 만남은 삼천년전 고대 그리스 인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이자 교육의 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호머의 시를 통해 역사, 언어, 예절, 사회, 및 국제화 교육을 받는 셈이고 공연은 같은 아케아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과 결속력를 다지는 계기였을 겁니다. 우리는 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서양인의 정신을 배우고 또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그럼『일리아드』부터 시작 합니다. 기원전 750년 경 탄생한 이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첫 번째 기록 유산으로 서양 인문학의 출발점이며 유럽에 뿌리를 둔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들이 고대 그리스를 서양문명의 발상지로 생각하는 탓입니다.『일리아드』는 세상에 빛을 본 이래 꾸준히 전 세계인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버질, 단테, 세익스피어, 밀턴, 알렉산더 포프, 테니슨, 매쓔 아놀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카잔챠키스 등 서구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은 물론 고고학자, 교육자, 역사가, 미술가, 조각가, 철학자, 그리고 영화 제작자들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영감을 주지 않았나요?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위대한 문학작품의 목록에 항상 맨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일리아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며 우리를 사로잡는 이 작품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건가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매쓔 아놀드는 간단명료하게 답하고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고귀하고 심오한 철학이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즉 약 3000년 전 서양의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을 노래한 것이지만 그 스토리는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매일 경험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될 인간 본질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일리아드』는 일리온 (일리움)에 관한 이야기란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트로이를 일리오스 또는 일리온(일리움)으로 불렀습니다. 이 시는 지금의 그리스인 아케아와 터키지역에 위치한 트로이와의 10 년 간 전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기원전 7 세기 이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알려진 이후 전설과 신화 속의 이야기로 믿어져왔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 전쟁이 실화일꺼라고 확신하는 한 독일인이 등장하지요. 그의 이름은 하인리히 슐리만 (1822-1890). 그는 어렸을 때 읽은 『일리아드』의 트로이 전쟁에 매료되었고 트로이 유적 발굴은 그의 꿈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성인이 되어 그가 뛰어든 해운사업은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1870년부터 슐리만은 자신이 번 돈을 몽땅 투자해 트로이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폐허 지역인 소아시아의 히살리크 언덕을 찾아내어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 년 간에 걸친 그의 노력과 집념으로 마침내 삼천년간 잠들어 있었던 트로이 유적층이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를 경악시킨 이 발굴이후 트로이에 대한 역사적 고고학적 연구는 더욱 불이 붙었고 거의 150년이 지난 지금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대체로 트로이 전쟁을 약 기원전 1250-1175년 경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가 동양과 교역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과 교역의 요충지였던 트로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당시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던 고대 히타이트왕국과 벌인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동기시대로 구분되는 기원전 11 세기 경 역사적인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대그리스에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당시 글이 없었기 때문에 음유시인들에 의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625 전쟁 후 개성이 고향이셨던 아버지께서 명절 때 마다 들려주신 피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해마다 같은 이야기를 듣지만 들을 때 마다 새로운 이야기처럼 긴장되고 흥분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니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군인들은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을까요? 인간은 전쟁의 잔혹함에 몸서리치지만 동시에 그 잔혹함에 끌리는 이중성을 소유합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야기가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 음유시인들의 입에서 입을 거치며 상상력이 더해지고 여기에 그리스 신화가 섞이고 그리스인들의 철학적 인문학적인 통찰력이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500년의 세월이 흐른 기원전 8 세기 경 고대 그리스에 알파벳이 생겼고 이제 구전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글로 옮겨지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750년 경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트로이 지역의 패권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다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픽션으로 변했으며 시작과 전개 그리고 끝이 있는 일종의 대하 전쟁 드라마 시리즈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이 시리즈는 트로이 전쟁의 에픽 싸이클로 불리며 총 8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시리즈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씨프리아』 (Cypria) : 트로이 전쟁의 서막.
2. 『일리아드』 (Iliad) : 10년차에 접어든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00일을 노래한 서사시.
3. 『이씨오피스』 (Aethiopis) : 아마존과 이티오피아군이 트로이 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내용.
4. 『일리아드 미카라』 (Iliad Mikra): 트로이 목마에 대한 이야기.
5. 『일리퍼시스』 (Iliupersis): 트로이의 멸망을 노래함.
6. 『노스토이』 (Nostoi) : 메네레우스와 헬렌, 그리고 아가멤논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
7. 『오딧세이』 (Odyssey) :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전사들의 귀환에 대한 서사시.
8. 『텔리고니』 (Telegony) : 오디시우스의 최후를 다룸.
이 8 개의 스토리 중 대부분이 단편적인 이야기나 요약된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데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두 편이 있습니다. 바로 호메로스의『일리아드』와 『오딧세이』입니다. 상기한 스토리들이 트로이 전쟁 후 이미 500년 동안 고대 그리스에 존재했다는 걸 감안하면 이 두 서사시의 저자로 호메로스만을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리아드』를 펼치면 시작부터 이미 10 년차에 접어든 트로이 전쟁의 한복판으로 안내됩니다. 상기한 에픽 싸이클에 친숙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시를 즐기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겠지만 현대의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이 작품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 시작은 에픽 싸이클의 1 편에 해당하는 『씨프리아』(Cypria)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서사시를 사건의 나열에 불과한 예술성 일도 없는 작품으로 혹평했지만 이 에픽은 우리에게 트로이 전쟁의 시작 배경 및 고대 그리스 사회의 모습과 구성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제 『일리아드』의 이야기 탄생 직전 이야기인『씨프리아』즉 트로이 전쟁의 서막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참고로 트로이 전쟁의 서막은『여러분을 위한 그리스 신화』 (Greek Mythology For Everyone, by Donald Richardson), 호메로스의『일리아드』는 펭귄 클래식(The Iliad, translated by E.V. Rieu)을 사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