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킬레스의 분노: 갑질과 공정의 문제

by 유꼭또

『일리아드』는 개전 10 년 차에 접어든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00 일간의 스토리입니다. 본국에서 540 km나 떨어진 생면부지의 타지에 와서 목숨 걸고 싸운 전쟁의 막바지. 첫 장면은 적이 아닌 아군끼리의 싸움입니다. 그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주제는 아킬리스의 분노. 제우스의 뜻대로 그 치명적인 분노가 아케아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많은 귀족들의 용감한 영혼들을 지옥으로 보냈고 그들의 시체는 들개나 지나가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도다. 노래의 여신이여 인간의 왕인 아가멤논과 페레우스의 아들인

위대한 아킬레스 사이에 벌어진 분노에 찬 결별로 시작하게 해 주소서. 그들을 다투게 만든

신들은 누구인가? ( 『일리아드』, 23)


이 시작을 영어로 인보케이션(invocation)이라고 하며 시인이 시의 여신인 뮤즈에게 영감을 비는 말입니다. 이 시작에는 『일리아드』의 주제를 접근하는 실마리가 숨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전개방향이 지하방에서 일어나는 오프닝 에피소드에 암시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첫 단어가 분노입니다. 더욱이 그 분노는 리더의 노여움이지요. 호메로스는 바로 이러한 분노의 치명성을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아킬레스의 분노는 같은 편인 수 많은 아케아 전사들을 죽음으로 몰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면에 아킬레스와 그의 사령관인 아가멤논과의 충돌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다투었을까요?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전쟁을 하고 있는데 총사령관과 일개 예하부대 장수와의 다툼이라는 설정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고대 그리스를 지칭하는 아케아 군이 연합군의 형태라는 점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케아 각 지역 왕들은 헬렌의 남편인 메네레우스의 요청에 따라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을 했습니다. 메네레우스 60 척, 아이잭스 12 척, 오디시우스 12 척, 아킬리스 50 척, 메네세우스 50 척, 여기에 아가멤논이 100 척을 보탰습니다. 날이 갈수록 이 전함의 규모는 늘어나기 시작했고 각각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결성한 일종의 연합군 성격이기 때문에 전체 함대를 지휘할 총 사령관이 필요했지요. 이 임무는 아가멤논에게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그가 제일 많은 함선을 이끌고 왔고 피해 당사자인 메네레우스의 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분 투자를 제일 많이 한 연장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참전을 결심한 아케아 전사들은 상관이 둘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한 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왕이나 왕자이며 또 한명은 연합군 최고 사령관입니다. 그러나 전사 입장에서는 사령관 명령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왕이 내리는 명령이 더 소중할 수 밖에 없는 형태이며 사령관 입장에서는 자신의 명령이 먹히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연합군의 루스한 구조는 『일리아드』 전편에 걸쳐 아군끼리 늘 언쟁과 다툼을 벌이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겁니다.

아킬레스와 총 사령관인 아가멤논의 다툼은 약탈물의 분배로 인한 갈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약탈물? 이 점도 약간의 설명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아케아 군이 쳐들어 온 곳은 이역만리 떨어진 트로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먼 곳으로 원정 온 아케아 군은 식량 및 군수물자를 배에 싣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현지 조달이었고 트로이 군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호구를 해결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전쟁의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아케아 군의 주요 공격대상은 트로이 군의 방어선이 못 미치는 지역의 마을들. 늘 하던대로 아케아 군은 한 마을을 습격하여 이것 저것 약탈하여 왔는데 그중에 두 명의 아리따운 처녀 크리세이스와 브리세이스가 포함되었습니다. 총 사령관인 아가멤논은 먼저 크리세이스를 선택하니 직급이 낮은 아킬리스에게는 브리세이스가 배당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크리세이스가 엄청난 빽을 갖고 있는 게 문제의 화근이었지요. 그녀의 아버지는 아폴로의 신전을 지키는 사제였습니다. 그는 엄청난 몸값을 준비하여 신사적으로 딸을 찾아오려 했으나 아가멤논에게 냉정하게 거절당합니다. 아가멤논은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가 젊고 아리따운 크리세이스와 할 미래에 대한 설계까지 끝마친 후였으니 물질이 눈에 찰리 없었겠지요. 게다가 고국에 있는 그의 처는 늙어버려 눈 주위는 새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고 피부는 바람 빠진 비치볼로 변해버렸을 테니까요. 사제는 자신이 모시는 신 아폴로에게 찾아가 딸을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간청을 합니다. 이에 아폴로는 분노합니다. 자신을 여태껏 정성스레 섬겨온 사제의 딸이 위험에 처했다는데 이걸 무시한다면 누가 자신의 제단에 음식을 올리겠습니까? 아폴로는 활과 화살을 가득 채운 활통을 어깨에 메고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는 9 일 동안 밤낮으로 화살을 그리스 전사들에게 퍼 부었고 아케아 진영은 초토화 됩니다. 아폴로의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사제의 딸 즉 크리세이스가 그녀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아케아 전사를 죽이겠다는 것이죠.

사제의 편에 선 아폴로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아케아 군은 초토화 되고 이에 아케아 군 진영에 군사회의가 다시 소집됩니다. 왜 아폴로가 화가 나서 아케아 군을 공격할까에 대한 원인분석을 위한 회의였습니다. 참모들은 사실을 알지만 총사령관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아폴로 공격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사제의 딸을 돌려주기를 거부한 아가멤논이기 때문이었죠. 허나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서 총 사령관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꺼려합니다. 이때 아케아 최고의 예언자 캘커스가 용기를 내서 나섭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이 화난 건 아가멤논이 몸값을 거부하고 딸을 풀어주기를 거절하여 사제를 모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고통에 대한 이유입니다. 활의 왕은 우리가

눈이 밝은 그 처녀를 아버지에게 돌려줄 때까지 우리를 이 끔찍한 고통에서 풀어주지

않을 겁니다. 보상이나 몸값을 받지 않아야하고 크라이세 신전에 신성한 제물을 바쳐야

하지요. 그러면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을 겁니다. ( 『일리아드』, 25 )


많은 부하들 앞에서 아케아 군의 희생이 순전히 자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아가멤논. 민망하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아가멤논은 먼저 자신들의 부하를 달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받은 배당금만 토해 내기는 싫었습니다. 자기는 총 사령관이 아닌가요? 그는 절충안을 제시합니다. 자신은 크라이세이스를 원하지만 그 아이 때문에 우리 전사들이 죽는다면 깨끗하게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그러나 그 대신 다른 전리품을 갖겠노라고 선언하지요. 자신만 빈손이 되는 건 부당하다고 항변하면서.

이때 아킬레스가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건은 이미 공평하게 분배했으므로 여기에서 마무리 짓고 대신 다음에 약탈해오면 당신 두 배 세 배 아니 몇 배로 좋은 전리품을 주겠소. 그러니 그 여자는 포기하시오.” 예하부대 지휘관 치고는 상당히 단호한 어쩌면 건방진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아가멤논은 거절하며 응답합니다. “너는 니 전리품인 브라이스를 갖고 나는 앉아서 도둑맞으라고? 그렇게는 안되지. 만일 내 취향에 꼭 맞고 내 손실을 보전할만한 전리품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난 브라이스나 아이아스 장수의 전리품을 고려해 볼 것이요. 그리고 크라이세스는 돌려주고 제물도 바쳐 아폴로를 다시 우리 편으로 만듭시다.” 이에 아킬레스가 빡칩니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전리품을 탐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뿐이죠. 이렇게 전리품을 놓고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의 다툼이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아킬레스 분노의 시발점인 셈이지만 이 두 남자의 다툼의 이면에는 단순한 배당금 문제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 좀 더 깊은 문제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스의 배당금에 관심을 보이자 피티아의 왕자는 그 자리에서 폭발합니다. 그는 총사령관을 뻔뻔한 모사꾼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실은 우리는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 싸움에 참여 한거요. 그렇소 이 양심불량

똥개같은 인간! 당신과 네 동생이 트로이군으로부터 만족감을 얻도록 말이요. 당신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니요. 그리고 지금 모든 사람들 중 당신이 나에게서 나의

전리품을 빼앗아 가겠다고 협박하고 있소. 내가 열심히 싸워 획득한 거고 내 부하들의

선물인데. 우리가 트로이의 부유한 도시를 공격했을 때 난 당신만큼 배당을 받지 못했소.

죽도록 싸우는 건 내 몫이고 한 몫 챙기는 건 당신 이었소. 난 전투지에서 쥐꼬리만한

약탈물을 챙겨 지친채로 돌아왔는데 말이요. 난 피티아로 돌아가겠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요. 새부리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소. 내가 여기 남아서 당신에게 부와

명품을 바치면서 모욕당하는 이유를 모르겠소. ( 『일리아드』, 27 )

그러나 아가멤논도 물러서지 않지요. 그는 명색이 아케아 연합군의 총사령관. 후퇴는 권위를 약화시킬 뿐. 게다가 그는 누가 위에 있는지를 모든 장수들 앞에서 보여줄 필요성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쏴 부칩니다.

내 말 잘 들어. 태양의 신 아폴로가 나에게 크라이세이스를 빼앗은 바로 그 방식대로

너의 막사를 방문하여 너의 전리품인 니 아름다운 브라이세스를 데려올거야. 아킬레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보다 더 강하고 또 나에게 말대꾸하며 공개적으로 왕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 지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지. ( 『일리아드』, 28)


권력을 가진 자 힘이 쎄다고 생각하는 자의 전형적인 갑질 형태입니다. 수천년간 우리사회에서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자리한 박멸대상 일 순위 아닙니까? 이에 아킬레스는 더욱 격분합니다. 죽이고 싶은 충동으로 옆에 차고 있던 칼을 잡는 아킬레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여신인 그의 엄마 티티스가 재빨리 나타나 아들을 제지합니다. 예하부대 지휘자와 총사령관과의 충돌에 당황한 참모들이 중재를 하고 말려보지만 그 둘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빡 칠 때로 빡 친 아킬레스는 전투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이제 나는 아케아군 모두가 나를 가슴 시리게 그리워할 날이 오리라 맹세하오. 당신은 인간

도살자인 헥터 손에 우리 편이 수백 명씩 죽어나가도 돕지 못하고 절망에 빠질 거요. 그러면

이 전쟁 최고의 전사를 모욕한 대가로 후회하며 당신의 가슴을 쥐어뜯을 것이오.

( 『일리아드』, 29)


이제 고향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낯선 타지에서 트로이와 전쟁을 위해 뭉친 연합군지도부는 균열됩니다.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요? 아킬레스라는 이름은 아키오스(achos)와 레우스(laos)의 합성어. 그리스어 아키오스는 영어로 고통, 아픔, 슬픔 (distress, pain, grief)의 뜻이고 레우스는 백성, 국민, 사람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고통의 사람 또는 고통을 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줄곧 트로이 군에게 준 그 고통의 칼날이 이제 아군을 향하게 되지요. 그의 충동적인 성격과 고고한 프라이드는 아가멤논과의 다툼으로 생긴 분노의 결과입니다.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의 다툼의 핵심에는 갑질과 공정의 이슈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가멤논은 제일 투자자이자 연장자인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나 회사 이익을 직접적으로 창출하는데 공을 세운 아킬레스에게 아가멤논의 결정은 갑질의 전형적인 예에 불과 합니다. 무엇이 공정한가요? 아가멤논은 자신이 공정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투자를 안했다면 결국 이익도 없었을 거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동업은 어렵습니다. 전사시대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했지만 호머가 던진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공정의 문제. 우리나라 대선 때 마다 제기되는 이슈입니다. 지난 정권하에서는 우리사회가 불공정했으니 이제는 진정한 공정사회로 나아가자고 목청을 높입니다. 우리사회는 공정한가요? 내가 받는 성적표는 공정한가요? 나는 불공정하게 채용에 탈락한 건 아닌가요? 나의 월급은 공정한가요? 내가 승진 못한 이유는 불공정한 제도 때문이 아닌가요? 내게 배당된 유산은 내 기여도에 비해 너무 적지 않은가요?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아마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닐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불공정한 일이 또 누구에게는 공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킬레스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점이지만 아가멤논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이는 기본적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공정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킬레스의 입장에 공감을 하지만 말입니다.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의 배당금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이제 자존심 전쟁이 됩니다. 늘 최고의 전사라 자부하고 싸워왔는데 그 자존심을 놀고먹는 사령관이란 자가 일거에 무너뜨리다니요. 그렇다고 아가멤논은 자신의 지휘에 반기를 드는 부하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총사령관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 나 없이 해보라는 아킬레스. 너 없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아가멤논. 둘은 씩씩거리며 갈라서게 됩니다. 이 둘의 자존심 싸움은 결국 아군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두 리더의 한 치의 양보없는 자존심 대결로 인해 결국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꼴이 된 겁니다. 사소한 다툼 또는 언쟁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불화의 사과(an apple of discord)콘셉트가 트로이 전쟁 서막의 이야기에 이어 반복되는 겁니다. 이는 현대를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 낯 설은 장면은 아닙니다. 다툼의 본질적인 내용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일 갖고 싸우다 죽기 살기싸움으로 커지는 경우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일이 아닌가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묻지마 폭행 피해자의 마지막 카톡.” 국민일보 2020년 1 월 19일 자 뉴스 제목입니다. 기사 내용은 두 사람이 지나가다 우연히 어깨가 부딪쳤고 이로 인해 시비가 붙어 한 사람이 한사람을 폭행했고 그 폭행 피해자는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내용입니다. 승객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했다가 시비가 붙어 운전기사를 폭행하고 선후배들 끼리 엠티에 가서도 나이 호칭 같은 사소한 문제로 싸우다 병원 실려가고 직장동료들끼리 같이 회식을 즐기다가 하찮은 언쟁으로 시작하여 술상을 엎어버리고 치고 박고 싸우다 가끔은 살인으로 종결되는 일까지 종종 보도되곤 했었지요? 호머 이래 변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전 03화3. 트로이 전쟁과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