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트로이 전쟁과 페미니즘

by 유꼭또

동서양의 사회를 보면 많은 근본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일치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건 옛날부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상당히 조직적으로 집요하고 그리고 끈질기게 조장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편견을 대표하는 동양 속담이 있는데 바로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입니다. 놀랍게도 서양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노래하는 암탉과 웃는 여자는 불길하다”(A singing hen and a laughing girl bode no good.)입니다. 즉 여자는 그저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란 말이지요. “경국지색”이란 말도 결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미가 한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뜻이니까요. 바로 이러한 동서양의 옛날 속담을 생각나게 만드는 이야기가 바로 트로이 전쟁의 서막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이 전쟁의 배경에는 네 명의 여신(이리스, 아테네, 아프로디테, 헤라)과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헬렌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여자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사건은 그리스 피티아의 왕인 펠리어스와 바다의 여신 티티스의 결혼식에서 일어나게 됩니니다. 바로 이 왕과 여신 사이에 결혼으로 탄생하는 아이가 바로 훗날 『일리아드』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아킬레스입니다. 왕과 여신의 결혼식은 축하하고 즐기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모든 신들이 참석했는데 불화의 여신인 이리스만 빠진 겁니다. 그녀는 실수로 초대 대상에서 제외 됐죠. 그녀는 결혼식장에 갑자기 나타나선 사람이 모여 있는 쪽으로 사과를 바닥에 굴렸는데 사과는 헤라와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가 담소하며 서있는 곳으로 굴러갑니다. 사과에는 “최고의 미인에게”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고 누가 최고의 미인인가? 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헤라와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사과를 포기 안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최고 미인의 타이틀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느 신도 선뜻 나서기를 꺼려했습니다. 이 문제를 결정할 만큼 용감하지 않았고 미래의 후환을 두려워한 탓이겠지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에게 결정을 맡기자는 것이었고 단 인간의 판단을 세여신이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습니다. 이에 파리스라는 이름의 목동이 선택되었으며 그로 인해 트로이가 이야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심판으로 낙점 받은 파리스가 바로 트로이의 피리엄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미래 언젠가 조국과 민족에게 해를 끼칠 거라는 예언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도록 명령을 받아 외딴 지역에서 목동으로 일하고 있었지요. 그는 어떤 신 못지않게 잘생겼으나 머리가 모자랐고 재치도 없었습니다. 그가 영리했더라면 그런 심판 자리를 거절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여자에 약했고 여색을 심히 밝히는 호색한이었습니다. 여신들이 결혼식에서 다툼이 벌어진지 20 년이 지났지만 해결의 길은 요원하기만 했습니다. 순 뻥이지만 아무튼 신화는 그렇게 오랜 시간 다투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심판이 정해졌고 유사 이래 최초 그리스 여신 선발 대회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파리스도 결정하는데 애를 먹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뷰티 콘테스트는 뇌물 콘테스트로 변질되었고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뇌물을 주어 타이틀을 차지하려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헤라의 뇌물은 권력,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는 지혜와 용맹을 약속하고, 마지막으로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인 헬렌을 주겠노라고 어필합니다. 지상 최고의 미녀를 준다는 말에 지체없이 파리스는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줍니다. 이제 누가 최고의 미녀인가 하는 논쟁은 끝났지만 새로운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 하필이면 유부녀였기 때문이죠. 그녀는 스파르타의 왕인 메네레우스의 처로 파리스를 만나기 전 이미 9 살 난 딸까지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파리스를 스파르타로 데려가 세계 최고의 미녀를 만나게 하고 헬렌으로 하여금 파리스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지요. 헬렌은 남편과 딸을 팽개치고 새로운 연인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떠납니다.

파리스가 헬렌을 훔쳐가자 메네레우스는 분노합니다. 연합군을 결성하여 트로이에 쳐 들어가 헬렌을 되찾아오자고 다른 도시국가 왕들을 다음과 같이 설득합니다. 첫 번째는 파리스는 고대 국가 간의 불문율 중의 하나인 환대의 법칙(law of hospitality)을 어겼다는 겁니다. 그 당시 타지에서 손님이 오면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에는 요즘처럼 호텔이나 모텔같은 숙박시설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필수적인 관습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파리스는 이 법칙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호스트인 메네레우스의 아내를 빼앗아 감으로써 그리스 왕을 능멸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묵과하면 그리스인들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며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격정적으로 토로합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 도시국가 끼리 맺은 조약입니다. 메네레우스는 헬렌과 결혼을 할 당시 여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헬렌을 처로 맞이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서로 조약을 맺었는데 만일 누군가가 그녀를 납치해가면 모두 힘을 합쳐서 다시 찾아오자는 약속이었습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는 여자를 납치해다가 신부로 삼는 관습이 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도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메네레우스는 그 조약에 따라 당시 구애자들에게 메신저를 보내 전쟁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서약에 참여하지 않은 자신의 형이자 그리스 도시국가 중 가장 큰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아가멤논은 전함 100 척을 동원하여 참전합니다. 이 당시에 막 20 살이 된 아킬레스도 내키진 않지만 그리스 피티아 왕국을 대표하여 50 척의 전함을 이끌고 참전하게 됩니다.

트로이 전쟁의 배경에 짙게 깔려있는 생각이 바로 여성에 대한 의도적인 비하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수 많은 전사들을 전쟁터에서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주범으로 여자들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트로이 전쟁의 서막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도 우리주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전쟁의 최초의 불씨를 제공한 여신은 이리스입니다. 그 여신의 분노는 주최자의 단순 실수를 자신을 왕따 시켰다고 오해함으로써 생긴 겁니다. “이것들이 감히 나를 안 부르다니!” 그녀의 분노는 사과를 이용하여 세 여신을 다투게 만듭니다. 바로 이 신화에서 영어의 불화의 사과(an apple of discord)란 표현이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사소한 다툼이 나중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는 의미인데 초기의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겹쳐 나중에 엄청난 사건인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 왕따는 그 당시에도 심각한 사회 문제였을 거로 생각됩니다. 왕따 사건은 이제 여성들의 미에 대한 대결로 이어집니다. 누가 더 이쁜가를 놓고 여신들이 싸운다는 설정은 여신으로 포장을 하긴 했지만 결국 여성들의 미에 대한 허영심을 공격하려는 의도입니다. 누가 최고의 미인인가를 놓고 싸운 결과 전쟁이 일어났으니까요. 거울 앞에서 허구헌날 누가 제일 이쁜 가를 외치는 백설공주 계모의 원조 격이지요.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한 또 한 명의 여자가 있지요. 바로 헬렌입니다. 헬렌과 파리스의 잘못된 만남은 지금 시점으로 이야기하면 유부녀와 총각의 불륜관계입니다. 요즈음에도 애로부부, 연속극, 유튜브 사연살롱, 영화, 소설 등에서 넘쳐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남녀 간의 잘못된 만남 아닌가요? 사실 지금 이시간도 포털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기사 거리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이야기의 핵심은 헬렌과 파리스의 불륜사건이지만 그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스토리에 신들의 이야기를 엮는 겁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있으며 이는 신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세계관이 반영된 겁니다. 일을 저지른 건 헬렌과 파리스이지만 이렇게 되도록 조종한 건 신이 했다는 말입니다. 흔한 불륜 이야기를 신화와 고대 그리스 적국인 트로이의 왕의 아들 그리고 최고의 미녀인 헬렌을 등장시켜 좀 더 복잡하고 흥미진진하게 각색한 겁니다. 트로이의 헬렌의 아름다움에 대해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는 그의 『포스터스 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이 천척의 배를 바다에 띄운 그 얼굴인가?

그리고 그 높은 일리움의 탑을 불살라버렸다는...

“Was this the face that launch'd a thousand ships,

And burnt the topless towers of Ilium--“


첫 줄은 헬렌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지만 두 번째 줄은 그러한 미에 숨어 있는 가공할 만한 파괴적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시귀입니다. 즉 헬렌은 노래하는 암탉이요 한 나라를 즉 트로이를 멸망시킨 여성으로 경국지색의 고대 그리스버전인 셈입니다. 이렇듯 트로이 전쟁은 결국 여자들 때문에 발발 했다는 거예요. 그로 인해 10 년간 전쟁이 벌어졌으며 수없이 많은 전사 즉 남성들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에픽 싸이클 중 첫 편에 해당하는 이 『씨프리아』는 남자들에게는 “네 이웃의 여인을 탐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숨어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성의 문제점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의 심청전이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전래동화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고대그리스 여자들의 행동 규범에 대한 일종의 도덕 윤리 교과서 격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가 전사들이 지배하던 남성 중심의 사회인 점을 감안하고 받아드려야 하는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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