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분노, 복수와 화해

by 유꼭또

트로이와의 싸움에서 아케아 군이 거듭 패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아킬레스의 의지도 점점 약해집니다. 그렇다고 아직 자존심을 버릴 정도로 분노가 가라앉지는 않았습니다. 어쩜 그에게는 전쟁터에 복귀하기에 적절한 명분이 필요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그의 절친 패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가 연합군에 다시 힘이 되 주기를 부탁하지만 여전히 그의 대답은 노입니다. 이에 그의 절친은 그럼 나라도 나가서 싸우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것도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나가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속임수이긴 하지만 아킬레스가 전투에 복귀한 것 처럼 꾸며 아케아 군에 사기를 올리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오랜 친구의 안위를 걱정했던 아킬레스는 적진 깊이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허락합니다. 그러나 전투에 참가한 패트로클로스는 적장 헥터의 손에 죽고 맙니다. 돌아온 베스트 프렌드의 시체를 보자 아킬레스는 꼭지가 돌아버리지요. 아킬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친구의 복수를 다짐합니다.

어머니, 올림포스 신들이 저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었어요. 내 베프인

페트로클로스가 죽었는데 제가 어떻게 만족하겠어요. 저는 그를 어떤 내 부하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내 목숨처럼 사랑하는데요. . . 나는 무엇보다 먼저 헥터를 내 창으로

쓰러뜨리고 메노티어스의 아들을 죽인 대가를 치르게 하기 전에는 남자들 세상에서

머무르거나 살아갈 의지가 없습니다. ( 『일리아드』, 339)


그의 불타는 복수심은 그와 아가멤논사이에 있었던 분노를 단숨에 삼켜버립니다. 그는 불화와 분노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킬레스 자신은 또 다른 분노에 의해 사로잡힙니다. 다만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의 방향이 이제 헥터로 바뀌었을 뿐이죠. 그는 이제 헥터를 죽여 영광을 얻겠노라 말합니다.

아케아 군의 최고전사이며, 전투의 신인 나는 오직 말싸움에서 졌을 뿐.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불화가 없어졌으면 그리고 그와 같이 분노도 사라졌으면. 끈적거리는 꿀처럼

우리 마음속에 붙어 있다가 가장 현명한 사람들도 폭발하게 만들고 몸 전체를 연기

퍼지듯 사로잡는 분노. 그날 아감멤논 왕이 내게 일으킨 그 분노. 그러나 이미 엎지러진

물 아닌가. 아직도 분개하지만. 우리는 강제로라도 억제해야만 한다. 나의 절친을 죽인

헥터를 찾으러 가야한다. 나의 죽음은 제우스와 불멸의 신들이 정하신 때 오게하라.

내가 죽으면 나도 바닥에 누우리라. 같은 운명이 나를 기다린다면.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영광이 나의 목적이다. ( 『일리아드』, 339-40)


어떻게 보면 전투 임무복귀에 대한 명분이 주어진 것이죠. 아킬레스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아가멤논과의 화해입니다. 아킬레스는 아가멤논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지요.

나의 왕, 아르테데이스의 아들이시여. 우리는 서로 칼을 겨누고 있었소. 그러나 당신이나

나나 여자 한 명을 놓고 이렇게 까지 싸움을 계속하는 게 뭐 좋겠소? . . . 우리가 싸우면

헥터만 득을 봅니다. 이 사실 오랫동안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과거는 과거로 돌립시다.

화는 나지만 우리의 마음을 억지로라도 다스립시다. 나의 원한을 저편으로 보낼 겁니다.

그리고 지금 내 생각으로는 우리의 불화는 끝났소. 난 당신이 장발의 아케아 병사들에게

즉시 전투명령을 하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적이 우리 배 근처에서 진을 치기로

결정을 하면 난 다시 한 번 그들의 힘과 겨루어 볼 생각이오. ( 『일리아드』, 355)


아킬레스에게 누가 잘못했고 잘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잘못했음을 시사하는 화법이죠. 그는 아군끼리의 불화가 적군을 이롭게 하니 문제를 잊고 전진하자는 내용이 그의 요점입니다.

아케아 연합군의 많은 원로와 참모들의 끈질긴 설득과 회유에도 꿈적 않던 아킬레스를 움직인건 패트로클로스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아킬레스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그의 죽음이 피티아의 왕자를 그동한 거부한 전쟁터로 이끄는 건가요? 이는 둘의 관계가 친구이상 임을 암시하는데 학자들은 둘이 게이 관계였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남성끼리의 연인관계가 흔했던 그 당시 스파르타 전사문화를 보면 설득력이 있는 주장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이 장면은 아킬레스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아킬레스는 논리나 이성(logic and reason) 보다는 감정(feeling and emotion)에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느끼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그는 열정적인 사람(a man of passion)입니다. 전쟁터에 복귀한 아킬레스. 이제 아가멤논에게 품었던 분노의 방향이 적장 헥터에게로 바뀝니다. 트로이 전사 그들을 태운 말 조차 모조리 아킬레스의 칼 앞에 맥 못추고 고꾸라지지요. 트로이 성은 불 타오르고 고통으로 신음하고 죽은 자를 애도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릅니다.

아케아와 트로이 양 진영의 가장 강한 전사들인 아킬레스와 헥터. 이제 이 둘의 싸움만 남았습니다. 헥터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직감하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헥터는 버거운 상대와의 싸움과 화전 사이에 내적 갈등을 겪지만 전사로서의 영광을 택하고 일전에 임합니다. 둘의 대결은 올림포스 신들조차도 숨을 죽이게 만들죠. 모든 액션 영화 클라이막스 장면의 원조가 아닐까요? 그러나 영화 관객도 알고 『일리아드』독자도 알죠. 누가 이기는지 말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이기느냐입니다. 둘의 격투는 아킬레스의 창이 헥터의 목을 관통함으로서 끝을 맺습니다. 아킬레스는 적장 헥터를 처치하지만 그는 여전히 친구를 못 잊어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배 옆에 눈물의 장례식도 치루지 못한 채 누워있는 죽은 자 외에 무얼 더 생각할 수

있는가? 내가 걸어 다니며 살아있는 동안 결코 잊지 못할 패트로클로스. 지옥에서조차도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잊어버린다 해도 잊지못할 나의 친구. 돌아가자 아케아의 병사여

이 시체를 끌고 승전가를 부르며 우리의 배로 돌아가자. 우리는 영광을 얻었노라. 트로이

에서 신처럼 취급받던 헥터를 죽였노라. ( 『일리아드』, 407)


그러나 그의 분노는 멈출 줄 모릅니다. 헥터의 시체를 그의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헥터의 엄마와 아버지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듭니다. 게다가 그 시체 또한 아버지인 피리엄 왕에게 돌려주기를 거부하지요. 시체반환을 거부하는 행위는 두 번의 복수.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사자의 영은 영원히 이승을 떠돌며 노숙자로 지내야 하기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헥터를 향한 아킬레스의 복수는 그 당시 전쟁에서 지켜왔던 관습과 법도를 어기는 행동이었습니다. 친구를 잃은 아킬레스의 분노를 이해했던 올림푸스 신들조차도 이제는 죽어서도 난도질을 당하는 헥터를 가엾게 여기고 그의 부모를 동정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제우스는 화해를 제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아킬레스의 명예를 지키면서 당신이 앞으로 존경받고 또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제안하오. . . 한편 나는 이리스를 고귀한 프리엄에게 보내

아킬레스의 맘을 녹일 수 있는 선물로 아들의 시체를 되찾아 오도록 제안 하게 할 것이오.

(『일리아드』, 440)



제우스의 제안에 고무된 피리엄의 왕은 마차 가득 선물을 싣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킬레스를 찾아갑니다. 원수 앞에서 헥터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난 이 대명천지에 최고의 아들들이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소.

아케아 군이 쳐 들어왔을 때 오십 명이 있었소. 19명이 한 명에 의해 태어났고 나머지는

내 궁에 있는 다른 여인의 몸에서 태어났소. 그들 대부분이 전쟁터에서 쓰러졌소. 그리고

내가 의지하는 유일한 아들이며 트로이의 방패인 헥터는 조국을 위해 싸우다 당신 손에

죽었소. 그의 시체를 찾고자 이 두둑한 몸값을 갖고 여기 아케아 진지로 온 거요. 아킬레스.

신들을 두려워하시오. 당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내게 자비를 베푸시오. 이 세상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내가 할 터이니 나는 동정 받을 만 하오.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의

손에 내 입을 맞추겠소. (『일리아드』, 450)


아킬레스의 분노는 결국 헥터 아버지의 예를 갖춘 눈물 어린 호소 그리고 그가 준비한 선물로 풀어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 앞에 장사가 없네요. 헥터의 시체를 돌려받은 피리엄왕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루고 그리고『일리아드』 는 이야기를 맺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리아드』의 결말이 트로이 전쟁의 끝이 아님을 압니다. 이후 전쟁은 계속되었고 아킬레스는 헥터의 동생 파리스에 의해 전사하지요. 형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파리스. 아킬레스가 트로이 성을 공격할 때 화살을 쏴 그를 죽입니다. 그의 화살은 아킬레스의 약점인 발 뒷굼치에 명중하여 그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이후 아케에 군과 트로이군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됩니다. 결국 트로이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다 알다시피 오디시우스의 트로이 목마 계략 때문이었지요.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할 예정입니다. 아케아 군은 트로이 성 앞에 거대한 목마를 제작해 놓고는 고향으로 가는 척 했지요. 트로이 군은 이 목마를 승리의 트로피로 생각하곤 이를 성안으로 가져왔는데 목마 안에 무장한 채로 숨어있던 오디시우스를 비롯한 아케아 전사가 밤에 나와서 무방비상태의 트로이군을 급습해서 트로이를 멸망시킵니다. 이 이야기는 『일리아드』다음 이야기인 『오딧세이』에 나옵니다. 『일리아드』를 트로이 멸망으로 마치지 않고 두 원수와의 화해로 끝내는 호메로스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갈등, 분노, 복수 보다 한 단계 높은 가치가 이는 바로 화해라는 것이지요.


이전 05화5. 리더가 분노 조절에 실패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