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에 대한 인류 최초의 고발 다큐입니다. 시인의 글 솜씨는 우리가 마치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듯 한 착각 마저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전차를 탄 아케아 전사가 창으로 트로이 병사의 턱뼈를 관통시킨 후 그를 질질 끌고 달리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시인의 눈에는 그 병사는 어부의 날카로운 갈고리에 찍혀 가쁜 숨을 쉬며 펄떡거리는 한 마리 생선에 불과 합니다. 입에 박힌 창을 두 손으로 부여쥐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병사의 얼굴을 뒤덮은 먼지와 피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제우스는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의 참상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 합니다
지상에서 숨 쉬고 기어 다니는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보다 더 고통을 받는 생명체는 없으니. ( 328, Book 17)
이러한 전쟁에 여자가 설자리는 없습니다. 헬렌의 이야기가 배경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리아드』는 전쟁터에 던져진 남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플롯도 남성적입니다. 즉 스토리가 일직선으로 앞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시작과 끝만 생각하는 남성을 닮았으며 한 방향으로만 직진하는 물총입니다. 남성들은 생태적으로 물총 같은 기관도 갖고 있지 않나요? 남자가 장총을 발명하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의 충돌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 트로이의 멸망이라는 결말을 향해 약간의 지체는 있지만 결국 예정대로 쭉 진행됩니다. 회는 생선을 닮은 접시로 대접해야 더 맛이 나듯이 호머는 남성의 이야기는 남성을 닮은 그릇에 담아야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전쟁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남성의 가치를 노래합니다. 자만을 앞세우고 충동적으로 전진만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오만도 꾸짖지만 말입니다. 전쟁터에서 남성의 가치는 명예입니다. 그 명예는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자의 몫입니다.
그러나 시 초반 부에 전사의 명예를 노래하는 호메로스의 시 표면 바로 아래에는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는가 하는 시인의 안타까움이 배어있습니다. 즉 평화에 대한 열망입니다. 아가멤논이 아케아 군의 사기를 시험하고자 이 전쟁을 지금 끝내겠노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총 사령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케아 군들은 커다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들이 타고 온 배로 달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사의 명예고 뭐고 사실 평화보다 소중한건 없을 겁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척 무엇보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까요? 그리는 이 대서사시의 마지막은 이러한 호메로스의 생각을 잘 나타냅니다. 아킬레스와 피리엄 왕은 적이지만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피리엄은 아킬레스의 손에 죽은 자신의 아들 헥터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아킬레스는 헥터에게 운명을 달리한 절친 패트로클로스를 추억하면서 말입니다. 양국을 대표하는 두 리더가 함께 흘리는 눈물은 시인이 그 시대 독자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바로 평화보다 소중한건 없다는 것이죠.
이 시는 전쟁을 이야기하며 전쟁을 반대합니다.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헬렌은 남편과 함께 귀국하지만 남편 메네레우스가 죽은 후 자신의 의붓자식에게 내 쫓겨 고향으로 도망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트로이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로디안 여왕에게 교수형을 당해 죽습니다. 수많은 전사를 죽음으로 몬 당사자인 헬렌이 무사할리 없겠지요. 헬렌을 찾아오고자 벌인 전쟁이었지만 그녀의 죽음은 그 전쟁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일이었음을 웅변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원하는 평화는 항상 위태롭기만 합니다. 인류 문명 출현 이후 전쟁과 평화는 늘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호머는 이를 아킬레스의 방패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보여줍니다. 아킬레스가 자신의 베프인 페트로클래스의 죽음에 원수를 갚겠다고 선언하자 그의 엄마인 여신 티티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에게 자신의 아들인 아킬레스를 위해 새로운 방패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장인의 신은 최신, 최고의 명품 방패를 제작하여 줍니다.
이 방패에는 두 도시의 상반된 모습이 새겨져있습니다. 하나는 평화의 도시입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즐기는 결혼식이 열리며 모든 분쟁은 법절차에 의해 해결됩니다. 또 하나는 전쟁의 도시입니다. 그 도시는 적에 의해 포위당했으며 생존을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이는 적의 매복으로 살해되는 목동의 그림으로 표현 되고 있지요. 시체를 질질 끌고 지옥으로 향하는 사자의 형상과 포도밭과 들판에서 일하며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방패의 가장자리는 강력한 바다의 파도가 두 도시를 집어 삼길 듯 넘실대고 있습니다. 늘 무자비한 폭력과 전쟁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사회의 모습입니다. 이 방패는 아킬레스의 호전성과 폭력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결국 늘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기도 합니다. 호머의 눈으로 본 삼천년 전의 인간세상이지만 이 모습이 지금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순간 동유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아닙니까? 군사적으로 긴장사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두 나라는 이제 전쟁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어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가 전해졌고 사상자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 맘 한구석엔 전쟁의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져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