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

by 유꼭또


예술작품으로 한 시대는 커녕 한 세대의 인기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삼천년간 끊임없이 사랑받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오딧세이』. 미국 대학의 교양 필수 과목이며 모든 서양인들은 그들의 영혼의 고향으로 고대그리스를 가리키며 호메로스를 존경하고 그의 시를 읽고 공부합니다. 서양인들에게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엔터테인먼트 뿐만 아니라 역사, 언어, 예절, 사회, 문화 및 국제화 교육을 위한 교과서 역할까지 합니다. 우리가 춘향전과 흥부전을 즐기며 정절과 효의 가치를 공유하며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 같이 서양인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서양인으로서 정신적 정체성을 공유합니다. 이제 그 서양 정신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복수법을 통한 정의 실현 정신


그 첫번째가 바로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 정신입니다. 성경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사실 기원전 18세기경 바빌로니아의 왕이 만든 인류 최초의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된 표현이며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높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자기 눈을 멀게 할지라."

"사람이 자기 계급 사람의 이를 부러뜨리면 자기 이를 부러뜨릴지라."



똑 같이 보복한다는 의미의 동태 복수법으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고대사회의 정의 구현 시스템입니다. 이 동태복수법은 살인에도 적용되며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의 목숨으로 죄 값을 치루는 겁니다.

이러한 동태 복수법은 서양 정신의 근간이며 고대 사회 이래 서양에서 철저하게 유지되어온 사회 정의 유지 시스템의 기본입니다.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 정신은 호머가 쓴 두 에픽의 시작과 끝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 이면에도 바로 이 고대사회 복수법이 자리합니다. 일리아드 3 장에 처를 빼앗긴 메네레우스가 파리스와 일전을 벌이기 직전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제우스여 제게 파리스를 향한 복수를 허락하소서. 처음부터 저를 능멸한 자.

내 손으로 그를 처단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자손들이 환대를 해준 주인을

해치겠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도록 도와주소서. (『일리아드』 3 권 73)



멀리선 온 손님을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는 고대 사회의 환대의 법칙을 어기고 주인의 처를 훔쳐간 자에 대한 응징과 빼앗긴 헬렌을 되찾는 것만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트로이전쟁은 결국 고대 그리스인들이 복수법을 얼마나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아킬레스가 아군의 엄청난 피해를 목격하면서도 유지했던 아가멤논과의 자존심 싸움을 단번에 포기하게 만든 이유? 역시 복수법입니다. 절친이 적장 헥터의 손에 의해 죽자 그는

절친을 죽인 헥터를 죽여 정의를 실현합니다. 이를 헥터의 가족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헥터를 죽인 아킬레스를 처단하는 일이 정의를 지키는 일이 됩니다. 헥터의 동생 파리스는 형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가 아킬레스가 트로이 성을 공격할 때 화살을 쏴 그를 죽입니다. 그의 화살은 아킬레스의 약점인 발 뒷굼치에 명중하여 그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물론 파리스도 트로이 전쟁 말기에 목숨을 잃죠.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죽음의 이면에도 고대 복수법이 있습니다. 아케아 연합군 함대가 트로이와의 일전을 위해 그리스 중부의 항구 도시 올리스에 집결한 직후 벌어진 일을 보겠습니다. 천여척의 배가 출전준비를 끝냈건만 바람이 불지를 않아 함선들은 항구에 발이 묶이죠. 이유를 알고 보니 아케아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여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슴을 활로 쏘아서 죽이고 자랑한 탓입니다. 자신의 사슴을 잃고 격분한 아르테미스가 아케아 연합군이 배를 출발시키는데 필수적인 바람을 잠재워 버렸죠.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슴을 죽인 대가로 아가멤논의 딸 세 명 중의 한 명의 목숨을 요구합니다. 그 당시 동태 복수법, 정의 구현 법입니다. 전쟁을 이끌어야 하는 총 사령관으로서의 의무와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의무 사이에 갈등을 하지만 결국 아가멤논은 자신의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고 바람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옵니다. 아가멤논과 그의 처인 크라이템네스트라와의 갈등을 발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딸을 죽였으므로 딸의 어머니는 남편을 죽여야 하는 의무가 생긴 탓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자 딸의 복수를 위해 그를 살해한 겁니다. 물론 남편 부재 시 저지른 불륜의 도덕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그녀는 복수법을 지켜 정의를 실현 한 겁니다.

서양에서 삼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수법을 통합 정의의 실현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를 경험했던 프랑스나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면 나치가 패망한 후 프랑스와 이스라엘 국민들은 얼마나 철저하게 나치 부역자를 처단하고 응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급진파 이슬람 테러 조직인 알 케아다가 2001년 9 월 미국 뉴욕에 있는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타를 폭파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 테러의 주범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를 10 년간 끈질기게 추적하여 결국 처단했습니다. 이 소식을 미국 국민에게 전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9 분 여 동안의 연설의 핵심은 우리는 테러를 당해 무고한 시민이 죽었고 그 테러리스트 수장에 대한 복수를 했으며 이로서 정의가 실현되었다(Justice has been done)입니다. 서양정신의 진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일제시대를 겪은 후 해방된 우리나라에서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있었지만 실패를 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분열시키는 불소시기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내릴 위치에 있지 않지만 제 소견은 이런 결과는 단지 그 당시 친일파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의 유불리에 의해 결정된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친일파 청산 실패의 이면에는 우리민족의 정서도 한몫을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 정신이 친일파 청산에 반대한 정치 세력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복수정신은 우리민족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정의 정서를 밀어낼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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