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free lunch.)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시대의 한 살롱에서 최소한 한 잔의 술을 사는 손님에게 공짜 식사를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살롱주인은 그 공짜 점심에 소금을 잔뜩 뿌려 제공했고 이를 먹은 손님은 목이 말라 맥주를 추가로 주문해야 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애초 술값에 맥주 값을 더 내고 식사를 한 셈이 되죠. 공짜가 없다는 말은 결국 받는 만큼 주고 준만큼 받는다는 주고받기 (give and take)의 의미입니다. 서양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서양은 공짜가 없습니다. 미국의 바(Bar)나 펍(Pub)에 가면 쥬크박스 즉 동전을 넣고 노래를 듣는 일종의 음악 자판기가 설치된 곳이 있습니다. 노래 한 곡조차도 돈을 지불하고 들어야 하는 거죠. 그 옛날 한국의 다방과 술집에서 늘 공짜 음악에 익숙했던 내게 문화 충격을 준 제품이었습니다. 지금은 저작권문제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말입니다. 유럽에 가면 화장실도 동전을 넣어야 문이 열립니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흔한 연말연시 공짜 달력도 서양엔 없습니다. 우리나라엔 없는 미국 식당의 팁 문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물품 모든 서비스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철두철미한 주고받기 정신의 산물입니다.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과 함께 서양을 대표하는 정신이 바로 이 주고받기입니다. 이 주고받기의 기본 개념은 균형유지입니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받는 즉시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빚을 진 느낌이 듭니다. 바로 균형이 무너진 겁니다. 이 균형을 원 위치 시키려면 받은 만큼 비례하여 선물을 주면 됩니다. 같은 값어치의 선물을 못 줄 형편이라면 대신 그만한 대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됩니다. 내가 플러스가 되었으니 그렇게 만든 사람도 똑같이 플러스를 시켜야 되는 거죠. 이런 주고받기는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적인 주고받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친구도 잃고 동료도 잃고 심지어는 형제간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금고 가고 소송 심지어는 살인으로 귀결되기도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우리는 주고받기를 하지만 서양처럼 철두철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정에 의해 움직이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며 정은 기본적으로 계산을 싫어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불분명한 계산으로 얽힌 인간관계는 장점도 있지만 또한 단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쏟은 시간과 받은 수입을 철저하게 따지는 주고받기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오래된 역사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서양에서 주고받기의 균형유지의 원칙은 그들의 생활, 문화, 전통, 그리고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습니다.
호머의 에픽을 읽어보면 서양이 고대 사회부터 얼마나 철저하게 주고받기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일리아드의 첫 장에서 딸을 빼앗긴 크리세이스 아버지가 자신이 모시는 신인 아폴로 신전에 가서 올리는 청원의 핵심은 주고받기입니다. 사제의 말을 들어봅시다.
들어주소서, 은 활의 신, 크리세와 신성한 실라의 보호자이시며 테니도스 섬의
최고 지배자 님인 아폴로신이시여 당신을 기쁘게 하는 신전을 제가 바쳤고
황소나 염소의 통통한 허벅지의 지방을 태워 당신께 올려드렸지요. 제가 드린
제사가 흡족하시다면 제 청을 들어주소서. 그리스 군들을 당신의 활로 벌을
내려 제 눈물을 닦아주소서. (『일리아드』 1 권 24)
즉 내가 여태껏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당신도 내가 어려울 때 내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논리입니다. 여태 내가 주었으니 이제 내가 받을 차례라는 말입니다. 아폴로가 아케아 군을 응징하는 행위는 이 주고받기 원칙의 수호입니다. 이 주고 받는 개념은 『일리아드』에서 신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동맹의 근간이 됩니다. 사과를 얻은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의 편이 되지만 사과를 빼앗긴 헤라와 아테네는 파리스의 적인 아케아 연합군의 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헥터의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아킬레스에게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트로이 제국의 피리엄 왕은 아킬레스에게 마차에 가득 실어온 금을 주고 아들의 시신을 되찾아 옵니다.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트로이 목마 에피소드도 본질적으로는 주고받기의 원칙이 무시될 때 일어나는 파괴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트로이 측에서는 거대한 나무 말을 아케아 군이 남겨둔 일종의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가져옵니다. 주고받기에서 받기만 한 꼴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았던 선물의 결과는 트로이 왕국의 멸망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아닌가요? 『오디세이』에서 제니아의 원칙을 어긴 자들은 모조리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경우를 다시 살펴보면 심판은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이타카의 왕비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놀며 왕비를 탐한 그들의 행동은 결국 준 것은 하나도 없고 받기만 했으니까요.
주고받기 정신과 우리나라의 정 문화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저한 주고받기에 약합니다. 계산하면 정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민족입니다. 주고받기 정신은 특히 서양인과 결혼한 커플들이 겪는 가장 큰 문화차이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국제 커플이 있는데 서양인과 결혼한 이분이 제일 먼저 꺼낸 부부간 사소한 갈등요인이 바로 주고받기에 대한 서로 간의 인식차이입니다. 정에 익숙한 한국인 아내는 남편에게 학생 지도를 부탁합니다. 물론 시간당 페이는 없지요. 이 무료 서비스 같은 개념의 요구는 때론 주고받기 의식이 철저한 서양인 남편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같은 시간을 다른 학생을 가르치는 데 쓰면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요. 부부가 서로 서양인들의 철저한 주고받기 의식과 한국인의 정의 의식을 이해했다면 이런 갈등은 좀 덜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의 엉성한 주고받기 의식은 드물긴 하지만 살인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형이 형편이 어려운 동생에게 집을 사주었습니다. 대가 없이 선물을 준 겁니다. 형은 나머지 돈으로 식당을 차렸는데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자고 했습니다. 집은 너의 소유이지만 돈은 내가 냈다는 논리이죠.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사업을 계속 했지만 결과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빚 독촉에 시달리던 동생은 형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둘이 심하게 다투던 어느 날 형이 동생을 살해하는 일로 끝을 보게 됩니다. 형제간 비극적인 살인사건의 이면에 엉성하게 이루어진 주고받기가 존재합니다. 형이 동생에게 주는 돈이 선물인지 차용인지 애매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분명한 계산으로 인한 갈등과 다툼 이런 일들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계산 보다 정에 의해 움직이는 한국인의 특유의 정서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