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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Apr 21. 2024

미국 결혼 문화의 오해와 실제

마가렛 앳우드의 「거주」

 

결혼식은 2023 년 3월 31일로 정했고 장소는  미국 달라스 공항 근처에 위치한 예식장인 아리스타이드를 예약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예식장과 달리 하루에 한 팀만 받아 여유 있는 결혼식이 가능합니다.         

   

결혼식장 외부

결혼식장 내부

결혼 리셉션 홀



날자와 식장을 정한 후 신랑신부가 상의하여 결혼 주제색 (핑크, 초록, 파랑, 연두색 등)과 콘셉트(항공, 스포츠, 게임, 만화 등)를 정합니다. 이 색과 콘셉트에 맞추어 결혼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신랑 신부 들놀이 의상을 구입합니다. 우리 아이는 네이비색에 별자리 콘셉트를 정했는데 디자인을 전공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후 인쇄했습니다.  (미국은 하객의 수를 미리 확정하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참석하객 수 대로 저녁 식사와 칵테일을 사전 주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참 애매모호합니다. )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미국 결혼식 문화가 총각 파티와 처녀 파티 (bachelor and bachelorette party)입니다. 이 파티를 마치 총각과 처녀들이 결혼 전 마지막 일탈 행위를 묵인하는 파티로  오해하곤 합니다. 섹스를 팔아야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업자의 상술이 주범입니다. 이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극소수 모지리들도 있겠지만 미국 생활 11년 동안 한 번도 접해본 적은  없습니다. 미국은 살아보면 아시겠지만 무척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총각 처녀 파티는 유흥업소 가서 밤새노는 그런 난잡한 파티가 아니라 신랑친구들끼리 신부친구들끼리 결혼 전 서로 우의를 나누며 결속을 다지는 시간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주로 친구들끼리 상의를 해서 정하는데 우리 아이는 네일 사롱에 단체로 가서 네일 아트 서비스를 받았고 신랑은 친구들과 같이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여행을 같이 가는 경우도 있으며 비용은 결혼 당사자를 제외하고 친구들이 모든 비용을 n 분의 1 합니다.  


우리나라에 잘못 알려진 미국 결혼문화가 또 하나 있습니다. 미드 ("섹스 앤드 시티"와 "프렌즈") 를 통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유행하게 된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입니다. 이 문화는 한국에 온 이후로 브라이덜 샤워의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예비 신부와 신부친구들이 고급호텔이나 이벤트 룸을 빌려 풍선 장식하고 음식 차려놓고 예쁜 드레스 입고 인스타용 사진 찍기 행사로 변질되었습니다. 브라이덜 샤워가 명품백처럼  남에게 보여주는 용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이 아니라 보여주는 행복에 진심인 한국인 만의 특성이 만들어낸 한국식 하이브리드 브라이덜 샤워입니다.  브라이덜 샤워 때문에 (비용문제를 놓고) 예비 신부와 신랑들이 다투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합니다. 브라이덜 샤워는 원래 16세기 유럽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딸의 지참금을 낼 형편이 안되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 내기를 거부할 때 주변의 친지들이나 친구들이 신부를 위해 신혼살림을 십시일반으로 하나씩 보태주는데서 유래된 풍습입니다. 선물로 축복을 해주는 자리이지 파티하고 사진 찍는 행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 미국식 브라이덜 샤워는 신랑 신부가 신혼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소설 미디어에 올리면 친구들이 그 목록을 보고 하나씩 선택하여 구입한 후 택배로 보내주는 형식으로 간소화돼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의 결혼선물은 우리의 축의금에 해당합니다. 우리 아이도 이런 식으로 실용적인 브라이덜 샤워를 했습니다.          


미국 결혼식은 보통 2 박 3 일에 걸쳐 진행됩니다. 미국이 너무 큰 나라 (유럽의 3 배)이기 때문입니다. 친척들 친구들이 미국 전역에 걸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항공편으로 예식 하루 전에는 도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식이 당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에서 12 시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 자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그래서 식은 하루 전날 (멀리서 온 하객들을 위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를  영어로 pre wedding reception or rehearsal dinner라고 하며 돌아가는 날 아침까지 대접을 하기도 합니다. 사전 리셉션은 달라스 공항 근처의 전형적인 미국식 스테이크 식당을 마지막 날은 골프 클럽의 식당을  빌려서 멀리서 온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결혼식 전날 리셉션



드디어 결혼식입니다. 축의금 받는 코너는 없고 방명록과 하객 카드가 놓여있습니다. 파란색 카드에 참석자 이름과 테이블 번호가 적혀있으며 이 카드를 갖고 입장한 후 예식 후에 리셉션 홀에 가서 자신의 번호가 적힌 테이블에 가서 앉으면 됩니다. 이런 소소한 준비는 총각처녀 파티를 같이 했던 신랑신부의 친구들의 몫입니다.


결혼 리셉션 데스크
참석자 이름이 적힌 카드

          

테이블은 친지나 친구끼리 앉도록 미리  세팅하여 준비


이제 대망의 결혼식입니다.  식은 1. 신랑입장. 2. 아빠가 신부의 손을 잡고 신랑에게 인계 3. 예물교환 4. 주례사  순으로 진행하는데 제가 80년대 결혼했던 그 순서와 거의 유사했습니다. 이런 식은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역사가 되었죠. 장담컨대 꾸준히 전통을 유지하는 미국 예식순서와 달리 우리나라 예식 순서는 앞으로 또 바뀔 겁니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자 변화의 민족 그리고 애매모호의 민족입니다. (주례는 예식장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 결혼식 문화에 신랑신부 들놀이( 베스트맨과 베스트 메이드)가 빠질 수 없습니다. 사실 베스트맨은  best swordman(최고의 칼잡이)의 준말이며 과거  중세 독일 혹은 영국에서 신부를 약탈하여 결혼했던 역사를 반영하는 단어입니다. 마을 내에서 예비 신부 수가 부족하면 남자가 결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자를 납치하는 일입니다. 여자를 훔쳐오면 아빠는 딸을 되찾기 위해  칼잡이들을 보내는데 이를 대비하여 남자 측에서는 칼솜씨가 제일 좋은 친구를  준비해 놓았다고 합니다. 베스트 메이드는 로마 시대의 풍습입니다. 결혼식날 신부에게 마법을 거는 못된 악령들을 (혹은 신부 약탈자들을 ) 헷갈리게 하기 위하여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이 모두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신부를 보호한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문화가 합쳐져 미국의 들놀이 문화가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결혼식 진행 도우미 역할을 합니다.       


이제 식은 끝났고 파티 타임입니다. 가운데 신랑신부석이 마련되어 있고 전문 디제이의 사회로 결혼식 리셉션 파티가 진행됩니다. 대략 다음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1. 케이크커팅 (빅토리아 시대의 풍습으로 원래는 신부가 하는 일이었으며 케이크조각은 다산의 상징. 지금은 신랑신부가 같이 자르며 이는 앞으로 모든 행동과 책임을 공유함을 상징)      


2. 신랑 신부와 함께 건배  

3. 신랑 절친(bestman)의 스피치 ( 베프가 전달하는 신랑 소개)  

4. 신부 절친(maid of honor)의 스피치 ( 베프의 신부소개. 신부는 이쁘고 착하고 어쩌고 저쩌고...)  



5. 신랑 신부 첫 댄스    


6. 신랑은 신랑 엄마와 댄스

7. 신부는 신부 아빠와 댄스 (춤을 추겠느냐고 물어보아서 워낙 몸치인 관계로 안 추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딸과의 춤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No라고 대답한 걸 지금도 후회합니다)  



8. 파티타임 ( 저녁 10시까지 진행.  파티에 사용할 음악도 결혼 전에 신랑신부가 선택하여 디제이에게 전달합니다)   

9. 신부의 부케 던지기 (신부의  꽃은 여성의 처녀성을 상징)




10.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신랑신부 퇴장

11. 준비된 리무진을 타고 예약된 시간 동안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예약된 호텔로 고고.

12. 다음날 아침 멀리서 온 하객들에게 아침 식사를 접대한 후 신혼여행지로  출발.



미국에서 결혼식 비용은 전통적으로 신부의 몫입니다. (신부가 갖고 오는 지참금이 세월이 지나면서 신부 측의 웨딩 비용부담으로 변한 듯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신랑신부가 반반씩 부담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우리 딸은 모든 비용을 합한 후 신랑과  반씩  부담했다고 합니다. (사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 같이 시댁과 친정이 주고받는 예단문화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로 인한 갈등과 말썽도 있을 리 없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면 "전세라도 " 혹은 딸이 결혼하면 혼수를 해줘야 하는 개념도 없으며 해주는 게 있다면 결혼선물 (천 달라 정도의 합리적인 액수의 현금이나 선물)이 전부입니다. 결혼 안 한 시누이가 "그림 퍼즐"을 선물했다 합니다. 받는 선물이 부담이 없으면  할 때도 부담이 없는 법입니다.          


딸이 결혼을 한지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유학시절 낳은 아이가 벌써 자신만의 가정을 꾸렸습니다. 저는 곧 결혼 39주년을 맞이 하니 긴 세월의 모든 일이 어제 단 하루에 일어난 듯합니다. 아쉽게 딸과 함께 춤은 못 추었지만 내가 사랑한 영시 한 편은 남겨 주고 싶습니다.     



거주                      (마가렛 앳우드)


결혼은 집도 아니고

텐트는 더욱 아니지      

결혼은 그 이전이며 그리고 더욱 춥지        

숲의 가장자리이며

사막의 가장자리           

집 뒷마당에 있는 페인트 칠 안 된 계단에서

쭈그리고 앉아 팝콘을 먹는      

녹아 없어지는 빙하조각의 가장자리에서   

고통스럽게 그리고 놀랍게

지금껏 생존했으니       

우리는 불 피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Habitation              ( Margaret Atwood)


Marriage is not

a house or even a tent     

it is before that, and colder:     

the edge of the forest, the edge

of the desert

                    the unpainted stairs

at the back where we squat

outside, eating popcorn     

the edge of the receding glacier     

where painfully and with wonder

at having survived even

this far     

we are learning to make fire     



결혼은 집도 아니고 텐트도 아니니 생각보다 추울 수 있습니다. 바람막이 없는 숲과 모래바람 불어닥치는 사막의 언저리이며 빠르게 사라지는 거대한 얼음 조각의 언저리(edge)입니다.  에지(edge)는 위험이나 파멸로 떨어지는 입구입니다. 살다 보면 부부가 이런 에지에 서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집은 페인트칠도 되지 않았고 (늘 뭔가가 부족하고) 우리는 강냉이로 끼니를 때우지만 그래도 고통을 견디며 여태껏 생존한 건 놀라울 따름입니다.  탄생이래 불 없이 살 수 없는 인간. 결혼은 불 피우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불은  늘 조심스럽게 피우고 신경 써서 다루어야 합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가 함께 노력해서 온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추우면 얼어 죽지만 또 너무 뜨거우면 화상을 입고 자칫 잘못하면 불이 나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 불 피우고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혼식장의 벤치에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둘을 맺어주었으니 누구도 부부를 갈라서지 못하게 하라" (마크 10:9) 이를 한국식으로 바꾸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 "한번 부부면 영원한 부부"입니다. 우리 딸과 브라이언, 그리고 모든 신혼부부들의 백년해로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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