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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Jul 14. 2021

유지어트는 쉬울 줄 알았는데:
유지라는 말의 무게

36kg를 감량한 탄수화물 중독자의 유지어트 이야기



흔히 쓰이는 사자성어 중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결심 후 빠른 포기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다이어트 시장처럼 작심삼일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곳도 없다. 주로 다이어트 결심을 한지 작심삼일, 치킨을 시켜 먹는다던가 피자를 시켜먹는다던가 폭식을 했다던가 하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대부분이다. 굳은 결심이 반드시 좋은 성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선 나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당장 내 브런치만 해도 그렇다. 일주일에 두편은 꼬박꼬박 쓰겠다는 결심이 회사일 때문에, 운동때문에 피곤해서 등등 변명은 대려면 많았다. 최근 회사일이 바빠진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출퇴근길에 브런치를 쓰던 나는 서서히 더위와 인파에 지쳐 음악이나 듣게 되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사람을 몹시 짜증스럽게 만드는데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습한 기분이다. 다이어트 하기엔 땀이 많이 흐르니 좋은 날씨라고 하지만 글쎄다. 내 경험상 땀을 흘리는 양과 살이 빠지는 건 비례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동물인데다 나는 자제력이 꽝이라서 조금만 방심하면 굳은 결심과 멋진 계획들이 슬라임처럼 흐물해져버린다. 주말만 해도 각종 공부와 업무를 위한 준비를 하려고 했건만 게임만 실컷 했다. 그와중에 달리기를 위해 나간 것이 참으로 용했다. 어떻게든 이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 조차 힘들고 벅차다.


결심은 때로 가슴에 품고 있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난 지금 다이어트 중이니까, 살을 빼야 하니까 굳게 다짐해놓고 정작 하는 행동은 없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선 온갖 다이어트를 다 하고 지쳐있다. 행동한지 오래된 결심은 자제력의 상실과 보상심리를 부른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니 육체적 변화는 없어도 심리적인 보상을 원하는 거다. 나는 오래전 실패한 다이어트를 할때 이랬다. 지키지 못할 완벽한 계획표를 짜놓고 인쇄해 붙여놓았다. 보기만 해도 살이 빠질듯한 운동 계획과 이상적인 식단이었으나... 


헛 완벽주의자인 나는 아침 운동 계획만 틀어져도 그날 하루를 전부 버린셈쳤다. 끝까지 달성한 날은 손에 꼽았다. 계획이 실패하면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고 우울했다. 그러기를 한달이 넘자 마음속에서 서서히 자기합리화가 시작되었고 결국 좋지 않은 흐름으로 흘러갔다. 난 지금 다이어트 중이고 나름 열심히 했으니까 이정도는 괜찮다며 말이다. 정작 한 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유지어트는 집안 살림과 비슷하다. 뭔갈 열심히 하고 있지만 티는 나지 않는다. 타인이 쉽게 알아주지도 않는 노력을 24시간 하고 있는거다. 이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운동이라도 나갈라치면 짜증이 솟는다. 대체 체중 유지에도 이렇게 힘이 들다니, 다이어트는 어떻게 했는지 내 자신도 궁금하다. 과거의 나는 얼마나 독했는지 새삼 상기한다. 정말이지 일상을 알차게 꾸려나가는데 드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육체의 피로는 운동으로 단련한다지만 정신적 탈력감은 어떻게 하면 무뎌질까? 판데믹 시대에 큰 불만은 없지만 뉴스에서 등장하는 원정유흥같은 헛소리를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몇몇 몰상식한 어른들의 쾌락을 앞세운 행동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이 소중한 시간을 친구도 만나지 못한채 집에서 보내고 있을까. 약속은 죄다 취소했고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생활이다. 퇴근 후 달리기나 운동을 나간다지만 마스크를 끼고 하다보면 숨이 차다 못해 머리가 멍해질때도 있다. 답답해서 운동을 하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마스크 끈을 죽 늘여 잠시 미적지근한 공기를 쐬기도 한다. 이런 꼴을 하고서도 운동을 해야만 하는 내 처지가 웃기다.  


그래도 해야 한다. 누가 내 운동이나 건강을 대신 보살펴주지 못한다. 나는 내 몸의 주인이라는 무게, 무사히 뺀 체중을 유지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이다. 때로 이 몸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것처럼 굴 때도 있었다. 마치 참고 기다리다보면 누군가가 해주듯, 학교 다니던 시절 어떻게든 내 인생을 앞에서 뒤에서 끌고 밀던 선생님과 부모님 시절을 잊지 못했다. 내 몸은 내 책임이라는 무게를 잊고 싶었다. 방종의 대가는 건강 이상과 엄청난 체중으로 다가왔다. 또 허름해지려는 내 의지를 다시 세워본다. 유지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숨어있는지는 유지어터들만 알고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을 실천하는 분들께 오늘도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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