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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Feb 03. 2023

부음

#낡은 옷 벗기 #조용한 죽음 #새로운 삶



동갑내기 도반이 먼 길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부음에도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조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해 전에 이미 한번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그녀였기 때문인 듯하다.

덤으로 살던 삶이고, 그 삶의 끝은 언제든 불쑥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인지 

식구들도 모두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저 영정사진 속 그녀만이 거추장스러운 몸을 벗어버린 것이 시원하고 행복하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의사들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굳건한 신심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었다.

심장으로 연결된 혈관이 혈액 공급을 제대로 못한 지 며칠 만에 

신기하게도 파열된 혈관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서서히 멈춰 가던 심장이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모두들 기적이라고 놀라워했었다.

의사들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그 믿음의 깊이에 감동하며 

늦게 본 막내아들을 키우고 가라고 우주가 준 선물이라고 했었다.

그 선물의 시간이 8년이었다

어린 아들은 스물셋의 청년이 되어 군복무도 마친 대학생으로 상주 노릇을 의연하게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마음 깊은 그 자리에서 이제 그만 가도 된다고 결정을 했던 것일까,

그녀는 연말 가족 모임 자리에서 그냥 스르르 눈을 감았다고 한다.

마음으로 항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도 

갑작스러운 아내, 엄마의 죽음은 가족들에게는 황망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은 그녀만큼이나 의연하고 꿋꿋했다.


죽음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

그 죽음을 그저 헌 옷 벗듯이 홀가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의 수행이 필요한 것일까.

친구는 죽음의 고비를 한번 넘기고 나서는 참 열심히 수행을  했었다.

그녀의 일상생활 자체가 옷을 잘 벗기 위한 구도의 과정이라 보아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녀 내면의 변화를 세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스칠 때마다 언뜻 느껴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무게가 그 수행의 깊이를 느끼게 했었다. 

삶의 희로애락, 생로병사에서 기인한 그 아무것도 마음에 붙들어 놓지 않고,

놓고 또 녹여 홀가분한 영혼이 되기 위한 철저한 수행의 힘. 

그런 수행으로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한껏 밝고 가벼워진 그녀는 

이제 어느 차원에서 다시금 삶을 시작하고 있을까.


죽음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

그녀를 통해 죽음이란 것이 그림자처럼 늘 발끝에 붙어 따라다니는 것임을 확인하고, 

내일이 오늘처럼 또 주어진다고 확신할 수 없는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저물어가는 날에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마음에 남김없이 비우고, 어느 것에도 집착함 없이 내려놓으며 살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내게도 입은 옷 벗을 시간이 찾아오리라.

그때가 찾아왔을 때 그저 조용히, 그녀처럼 가볍게 그리고 오래 끌지 않고 옷을 활짝 벗고 싶다.

남은 사람들이 환하게, 활기차게 웃는 ㄴ내 모습만 기억할 수 있도록.


오늘은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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