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Huntsman & Sons
이번 시간에는 세 번째 전설인 H. Huntsman & Sons를 만나보자.
H. Huntsman & Sons는 1849년 Henry Huntsman이 설립했다. 초기 Huntsman은 승마용 바지(breeches)와 스포츠 재킷(sporting clothing) 등에 특화되어있었다.
영국에서 스포츠 재킷이라고 하면 일종의 사냥용 재킷을 말하는데 엽총의 개머리판이 닿는 가슴 부위와 팔꿈치 부분이 가죽 등으로 덧대어 있고 주머니는 총알과 사냥에 필요한 물품을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냥철이 되면 요즘도 Huntsman에는 스포츠 재킷과 총집 등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Huntsman이 Savile Row 11번지에 자리 잡은 것은 1919년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32년 Robert Packer가 Huntsman 일가로부터 사업을 인수하게 된다.
Packer는 비스포크 수트 제작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Huntsman의 비스포크 수트는 흠잡을 곳 없는 장인 정신이 특징인데, 동시에 Savile Row에서 가장 비싼 테일러 숍이라는 악명도 가지고 있다.
Huntsman의 초기 운영 철학은 모든 공정을 장인이 한 땀 한 땀 진행하며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작업실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핸드메이드라고 하더라도 주요 부분만 손으로 작업하고 핵심과 크게 관련이 없는 부분은 미싱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Huntsman은 실로 대단한 고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Huntsman이 1981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기성복 사업을 시작한다. Giorgio Armani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급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겠지만 이는 성급한 결정이었으며 결국 Huntsman의 비스포크 비즈니스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영국에서는 사실 Savile Row에서 수트를 맞춰 입는 사람은 upper class 이거나 상당한 부(富)를 이룬 middle class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장 규모가 큰 미국은 언제나 Savile Row에 기회이자 유혹인 곳이었다. 결국 Huntsman의 이러한 결정은 Huntsman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희석시키고 만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Huntsman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기성복을 구매할 수 있다. 시작 가격은 영국 현지 통화 2,200 파운드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백5십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라 필자를 비롯하여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큰 금액이지만 Savile Row 비스포크가 평균 5천 파운드 후반임을 생각할 때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Huntsman이 기성복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해외 수출을 위한 것이었지 Savile Row에 진열해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헌츠맨의 수석 고객 매니저의 답변을 들어 보자.
Savile Row의 다른 테일러들도 적은 규모라도 기성복을 취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기성복은 우리 고객 중 일부를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필리핀이나 호주 등에 살고 있는 고객들은 체촌과 몇 차례 이어지는 가봉을 런던에서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객들을 위해 우리는 바로 구매해서 기장 등 일부만 수선하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품질 좋은 기성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석 고객 매니저, H. Huntsman & Sons)
2002년에 Huntsman은 지금은 유명(幽明)을 달리했지만 당대 천재 디자이너이자 동명의 브랜드를 운영했던 Alexander McQueen과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맥퀸의 이름값 때문에 안 그래도 비싼 Huntsman의 가격에 1천 파운드나 더 얹어졌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럭셔리 비즈니스의 운영 원칙에서 볼 때, 이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두 회사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할 때에는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있어야 하고 시너지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1 +1 = 2'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만약 어느 한 브랜드가 부가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지 않고 단순히 다른 브랜드의 후광에 기댄다면 고객의 관심을 받기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Huntsman은 한 때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4명의 투자자 덕분에 기사회생하게 된다. 그중에 한 명이 現 매니징 디렉터인 David Coleridge이다. 매니징 디렉터 David는 ‘Savile Row에서 가장 훌륭한 수트는 만들고, 세상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익 창출은 맨 마지막이다’라는 Huntsman의 대대로 내려오는 미션을 재건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편 Huntsman은 2015년에 상영된 영화 킹스맨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Savile Row를 지날 때마다 관광객들이 Huntsman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입구 오른쪽 금속 간판은 아직도 ‘Kingsman’으로 적혀있다.
필자도 차용을 하였지만 Huntsman은 Savile Row를 ‘킹스맨 거리’로 인식시키고 미래의 고객들에게 영국 비스포크 수트의 탁월함과 우아함을 알려 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Huntsman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제 Huntsman이 본연의 철학과 가치를 지키고 훌륭한 문화유산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한다면 이전보다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응원한다.
Sherwood, J., 2010. Savile Row: the master tailors of British bespoke. London: Thames & Hudson.
Sherwood, J., 2007. The London cut: Savile Row bespoke tailoring. Milan: Northam: Marsilio; Roundhouse distributor.
Photo35. Guy Hills, 2009. Huntsman In: B Sherwood, J., 2010. Savile Row: the master tailors of British bespoke. London: Thames & Hudson., p.71.
Photo36. https://www.huntsmansavilerow.com/sartorial-shooting-partner/
Photo37. https://www.fashionbeans.com/2016/huntsman-alexander-mcqueen/
Photo38. https://www.huntsmansavilerow.com/world-of-huntsman-2/kingsman-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