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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tingham Castle Oct 17. 2022

킹스맨 거리의 전설들#4

Richard James

마지막으로 만나 볼 킹스맨 거리의 전설은 Richard James이다. Richard James는 디자이너 Richard James와 그의 파트너 Sean Dixon이 1992년에 세웠다. 리처드 제임스의 이전 경력이 무척 흥미로운데 그는 Brighton College of Art를 졸업하고 영국의 유명한 편집숍 Browns의 바이어로 일한 적이 있다.


Browns에 대해서 잠시만 살펴보고 가자.

영국에 유명한 편집숍이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꼼 데 가르송 COMME des GARCONS'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가 2004년 오픈한 Dover Street Market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곳 Browns이다.

Browns는 Joan Burstein이 운영하는데 John Galliano와 Alexander McQueen을 세상에 처음 소개한 곳으로 유명하다. 2015년 Farfetch에 의해 인수되어 전통의 Browns가 이제는 옴니채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Browns London

전설적인 Browns에서의 경험을 통해, 리처드 제임스는 새로운 세대의 Savile Row 남성복에 대한 그의 비전을 키울 수가 있었다.


필자는 단일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그래서 매 시즌 수 백 스타일이 넘는 컬렉션에서 한국 시장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와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이 업무의 특성인 반면 편집숍 바이어들은 전 세계 방방곡곡 유명 브랜드부터 신진 디자이너 쇼룸까지 방문하고 나서 공통분모를 찾고 새롭게 조합하여 하나의 매장을 꾸리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한 발 앞서 나가는 패션 감각은 물론 이거니와 때로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모험을 해야 하는 선구안과 배짱도 필요한 것이 바로 편집숍 바이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초기에 Richard James는 전통적인 비스포크보다는 뉴욕과 도쿄 시장 등을 타깃으로 놓고 MTM과 기성복에 집중했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Savile Row 비스포크 연합의 회원사이지만 초기에는 “Savile Row의 명성에 기생한다”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Richard James는 1992년에 세워진 만큼 신진 그룹으로 분류된다. 1995년 Gucci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였던 Tom Ford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PPR 그룹(現 Kering 그룹) 산하에서 론칭할 때 Savile Row는 적잖이 당황을 한다.

아마도 Giorgio Armani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같은 것인가? Giorgio Armani가 등장하여 Savile Row 테일러들이 위기감을 느낀 것을 전편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Savile Row가 예전과 달리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은 바로 Richard James가 있기 때문이었다. Savile Row에 기생하는 브랜드에서 이제 어느덧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 맞서는 든든한 대항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8월 Richard James는 현재 위치인 Savile Row 29번지로 이전을 했다. 이는 Savile Row에서 가장 큰 매장이다. 틀린 경우도 종종 있지만 매장 크기가 늘어 갈 때는 비즈니스도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07년에는 본 매장 맞은편인 Clifford Street 19번지에 비스포크 전문 매장을 드디어 오픈한다. 이것은 Savile Row 비스포크에 대한 책무를 다하기 위한 또 다른 한 걸음인 것이다.

다른 브랜드가 비스포크로 시작해서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Richard James는 MTM과 기성복으로 시작해서 정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Richard James for RTW @ 29 Savile Row / Richard James for Bespoke & MTM @ 219 Clifford Street


리처드 제임스의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비스포크 테일러링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객들의 계속되는 요청에 부응하고자 2007년에 비로소 시작한 것이다.

2000년 대에 들어서 비스포크 사업을 시작한 만큼 Richard James는 Savile Row의 장인정신은 존중하면서 보다 새롭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Richard James의 재단사와 테일러들은 모두 30대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Richard James의 직원들은 비스포크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패션에 대한 감각도 있다. 대표의 운영 철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나이가 많다고 패션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렌드에서 다소 비켜 나가는 경향이 있다. 대중음악 작사가로 유명한 김이나 씨도 본인이 20-30대 일 때는 노래를 향유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대라서 느끼는 대로 써도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류의 가사를 쓰면 젊은 감각을 흉내 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패션도 마찬가지이다. 디자이너든 바이어든 고객과 비슷한 나이일 때 조금 더 쉽게 고객의 취향과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200년이 넘도록 조금밖에 안 바뀐 클래식 남성복 종사자들도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다소 신기할 뿐이다.


Richard James에 오는 고객들은 물론 50-60대도 있지만 대부분 30-40대 고객입니다.
젊은 재단사를 고용하는 것에 관해서는,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재단사가 나이 든 고객을 응대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이 든 재단사가 젊은 고객을 응대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뒤죽박죽 섞여 있었죠. 재단사마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고 고객에게 그 스타일을 강조하여 제안하기 마련입니다. 나이가 있는 재단사는 이를 테면 넓은 통의 바지와 총장이 긴 재킷 등을 제안할 수 있어요.
Richard James의 스타일이기도 하고 좋은 디자인이지만 20대나 30대 재단사가 하는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수석 재단사, Richard James)


자칫 위험한 발언을 솔직하게 전달한 수석 재단사는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인연이 있어서인지 여타의 테일러 숍과는 달리 필자에게 작업실도 구석구석 보여주고, 작업하고 있던 패턴지도 보여 주었으며 맛있는 영국식 차(茶)까지 대접해 주었다. 한국에 오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기로 하고 명함까지 주고 왔건만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지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Richard James는 Savile Row의 여러 테일러 숍 중에서 특별히 현대식 테일러링의 선구자로 꼽힌다. 약간의 반칙을 굳이 언급하자면 Richard James의 수트는 영국 전통을 곧이곧대로 따르기보다는 이태리 분위기를 살짝 가지고 있다. Giorgio Armani, Dolce&Gabbana 등 이태리 수트의 맛을 본 일부 고객들이 Savile Row의 영국식 스타일에 대안을 찾을 때 Richard James는 훌륭한 답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학위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는 길에 인터뷰에 응해 준 여러 테일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런던에 잠시 들렀다. Savile Row 한 복판에서 Richard James를 우연히 만났는데 재킷에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의 모습이 세상 멋있기는 했으나 영국 신사라기보다는 이태리 신사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글의 서두에 언급했지만 Richard James는 전설적인 편집숍 Browns 출신이다. 그러한 이유로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할 때 Savile Row가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Savile Row 비스포크 대신 글로벌 브랜드를 입는 고객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꿰뚫었다. 이것이 비교적 단시간 내에 그가 Savile Row에서 그리고 경쟁이 극심한 남성복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이다.


Richard James, 2019. Timeline | Richard James Savile Row. Available at: https://www.richard-james.com/timeline [Accessed August 15, 2019].

Sherwood, J., 2010. Savile Row: the master tailors of British bespoke. London: Thames & Hudson.


Photo39. https://www.thegentlemansjournal.com/the-interview-richard-james/

Photo40. https://www.vogue.co.uk/article/browns-new-store-brook-street

Photo41. https://www.richard-james.com/en-kr/pages/st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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