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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채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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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Mar 08. 2022

나와 타인을 계속 탐험하는 삶

'목표의 부재' 두 번째 인터뷰

다채 4호는 '목표의 부재'라는 주제로 네 분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각각의 인터뷰이 분들께 '목표' 하면 생각나는 물건을 들고 와 달라고 요청드리고, 그 물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인터뷰에 대한 편집진의 답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이 ㅣ 우주(가명)

에디터 ㅣ Seney



(풋살화를 꺼내며) 이게 조금 냄새가 날 수 있어요. 뭐라도 뿌리고 올 걸…. 제가 발볼이 넓어서 시중에 나와 있는 풋살화가 잘 안 맞거든요. 근데 이게 되게 잘 맞더라고요. 잘 신고 있습니다.



지원할 때 보내주신 풋살화 사진에서, 양말은 실수로 짝짝이로 신으신 거예요?


아니요. 알고 신은 거예요. 특별하지 않나요?! 나이키랑 아디다스 둘 다 신을 수 있잖아요. (양말을 보여주며) 오늘도 짝짝이로 신었어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오... 진짜네요!


인터뷰 당일 우주님의 양말



꼭 목표를 세우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
저는 부담과 압박을 느껴요.


인터뷰이 지원해주실 때 ‘목표’하면 생각나는 물건이 풋살화인 이유가 나중에 본인만의 풋살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하셨잖아요?


네. 제가 풋살을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도장 깨기 같은 걸 많이 하거든요. 어느 곳에 여행을 가든 풋살을 하는 거예요.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하고 왔어요. 독일에 갔을 때는 주말에 무작정 큰 공원을 찾아간 적도 있어요. 갔더니 역시나 풋살 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껴달라고 해서 같이 했죠.


나중에는 제가 경기장을 만들어서 친구들을 놀러 오라고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풋살장은 가보면 대부분 척박해요. 탈의실도 없는 경우가 많고, 동떨어져 있어서 주변에도 뭐가 없고.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만의 소유 공간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누구나 놀러 와서 편하게 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완전 좋은데요? 제발 만들어주세요.


지금 생각난 건데, 콜로세움처럼 맨 아래층에 풋살장을 놓고 그 둘레에 위층을 쌓아서 어디서든 경기를 다 볼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위층에 쇼핑몰이나 카페, 서점 같은 걸 만들고. (웃음)


근데 꼭 이 목표를 이뤄야겠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뚜렷한 목표 없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거든요. 풋살장은 인터뷰이 지원을 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설정한 목표예요.


그런데 사회나 주변 사람들이 꼭 목표를 세우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 저는 부담과 압박을 느껴요. 제가 마치 철이 없고,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저와 타인을 계속 탐험하는 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풋살 엄청 좋아하거든요. 몇 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하고 있어요. 오늘 우주님이랑 풋살 얘기할 생각에 신나더라고요.


와 정말요? 아 너무 좋아요. 요즘 ‘골 때리는 그녀들’ 덕분에 풋살 하는 여성분들이 많아졌는데 너무 멋있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중에 한 판 붙어요. 근데 오늘이 토요일 아닌가요?



네. 오늘은 인터뷰해야 되니까 풋살은 참여 안 했어요.


인터뷰 다른 날 잡으시지. 풋살 하시게. 다른 것 때문에 풋살을 못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에요. 일주일 못하면 감도 떨어지고… 일이 먼저가 아니에요. 풋살이 먼저지.



인터뷰하러 왔다가 풋살 안 해서 혼나고 있네요. (웃음) 아무튼 저는 우주님 풋살 포지션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저는 풋살 할 때 그 사람의 가장 본능적인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포지션에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되더라고요.


와, 풋살에 진짜 진심이시네요. 맞아요. 저는 주로 공격 포지션을 선호하고 잘해요. 풋살 할 때의 자아는 제 모든 자아 중에 가장 적극적인 자아예요. 그때만큼은 완전 눈빛이 달라져서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제 공격적인 본능을 풋살로 배출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그럼 평소에도 적극적인 편이세요?


적극적일 때는 적극적이지만 눈치를 보면서 해요. 본능을 숨기고 브레이크를 거는 거죠.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 


제가 사교성이 좋아서 아무 하고나 친구를 해요. 확 선을 넘는다고 해야 되나? 스킨십도 잘하거든요. 친한 친구들은 막 껴안기도 해요. 근데 이런 게 친구든 연인이든 독이 될 때가 많았어요. 상대는 부담스러워하거나 거부감이 드는 거죠.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어도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많이 느끼다 보니까 이제는 조심히 다가가려고 해요.



언제부터 적극적인 성격이셨는지 궁금해요. 


학교 다닐 때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를 들면, 중학교가 9반까지 있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잖아요? 그러면 1반부터 9반까지 돌아요. 뒷문으로 들어가서 앞문으로 나오고.



왜요…? 


그냥 애들 보려고요. 친구들한테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이러면서 한 명씩 다 인사하고 가요. 9반까지 갔는데도 시간이 좀 남으면 그때는 교무실에 가요. 선생님들 보러 가서 뭐 하시는지 한번 지켜보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랑 호감이 기본적으로 있는 편이에요.



그러면 혹시 좀 지치거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나만의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지친 적은 많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저도 신기해요.


‘다 다른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 스스로를 우주라고 생각해서 만든 제 별명이 ‘우주’인데, 다른 사람들도 우주잖아요. 한 명 한 명이 다 다른 우주인 거죠. 그 우주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데 그게 너무 궁금한 거죠. 저와 타인을 계속 탐험하는 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열심히
싹이 트려고 힘들었구나.


적극적이기 때문에 분명 좋은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사람 사귀는 게 제 나름의 생존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작년에 경상북도 의성으로 귀촌을 했었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다 제 친구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일거리도 잘 들어오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알바하면서 생계유지를 했어요. 거기서 양어머니도 얻었다니까요. 자두 따는 알바를 하게 됐는데 주인 어머님이랑 수다 떨다가 “너 내 아들 해라” 이러시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하고 잘 챙겨주시고 자두도 엄청 많이 주시고…  



와… 대단해요. 근데 갑자기 귀촌을 하신 이유가 뭐예요? 


대학교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어요. 졸업하고 나니까 낭떠러지에 있는 기분이더라고요.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이 사회에 나가서 뭘 해야 하는데 너무 무기력했어요.


설상가상으로 제가 가출을 했어요. 부모님이랑 갈등이 너무 심해져서 이렇겐 안 되겠다 싶어서 외갓집으로 도피를 했죠.


외갓집에 얹혀 있는 것도 눈치 보이니까 나중엔 친구네를 떠돌다가, 지역 살이 프로젝트를 발견해서 지원을 했는데 붙은 거죠. 합격자 명단 보고 한두 시간을 울었어요. 집도 나오고 잘 풀리는 것도 하나 없었는데 어디라도 갈 데가 생긴 거니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부모님과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부모님은 계속 취업을 하라고 압박하시고, 저만의 고유성이나 특성은 전혀 존중받지 못했어요. 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과잉보호, 간섭이 심했고 정신적인 폭력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그걸 못 참은 거예요.


결국에는 도망을 갔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제 몸과 마음을 살리려고 나간 거예요.



의성에서 회복을 좀 하셨을까요? 


회복을 진짜 많이 했죠. 사실 처음 갔을 때는 계속 안 좋은 상태였어요. 새로운 청년들이 15명이나 있었거든요? 원래 같았으면 한 명 한 명 먼저 다가갔을 텐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자책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도 저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다가와주는 애들이 몇 명 있는 거예요. 그 친구들이랑 대화를 많이 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니까 힘든 것들을 오히려 잘 털어놓게 되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의성에 간 건 우주님께 정말 좋은 기회였네요.


맞아요. 그리고 사실, 킬링 포인트는 감자예요.



감자요?


감자를 심으려고 땅부터 가는데 제 속 안에 쌓여있던 게 막 분출이 되는 거예요. 너무 많이 파다가 손에 상처 나고, 옆에서 누나들이 말리고 그랬어요.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감자 심을 때 싹을 위로 심으면 안 되거든요? 아래로 향하게 심어야 돼요. 싹을 아래에서 가장 오래 둬야 돼요. 그래야 튼튼하니까. 그리고 밑에 있던 싹이 나중에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싹이 너무 빨리 올라와버리니까 금방 썩을 수도 있거든요. 그 싹이 올라온 걸 보는데 너무 감동이더라고요. 나도 이렇게 열심히 싹이 트려고 힘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감자를 보면서 살아났죠.



부모님과의 갈등은 나아졌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정말 많이 변했어요. 그전에는 나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버거우니까 부모님과의 관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의성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원하고 싫어하는지 알았고,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까 이제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여유가 생긴 거죠. 엄마 아빠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이유로 그런 말을 했구나…


의성에서 만난 친구의 어머님이랑 같이 술을 마시면서 진솔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그분이 우리 세대가 너희한테 너무 미안하다, 너희가 참 소중하다 이런 얘기를 하시면서 한 명씩 안아주셨거든요. 우리 엄마도 똑같은 마음이겠구나, 싶더라고요. 표현을 못하고 미성숙한 것뿐이죠.


그래서 한 두 달 만인가 엄마한테 전화를 먼저 했어요. 뜬금없이 전화를 해서 한참 울었어요. 엄마는 놀랐죠. 갑자기 시골 내려가서 전화하더니 우니까. 무슨 일 있냐고 빨리 말해보라고 하시는데 그냥 사랑한다고 했어요. (울먹이며) 아까부터 참았어요. 감자 얘기부터 참았는데 못 참겠네…


(눈물을 닦고) 정말 진심으로 나온 말이어서 그게 너무 소중했어요. 의무적으로 사랑한다고 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하니까 마음이 싹 다 씻어지고 후련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런데 엄마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알지’ 이러면서 가볍게 넘어가셨어요.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데 왜 저러나, 분통이 나면서도 그것까지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인생을 사는 데 목표는 방해물이 돼요.


우주님이 생각하는 목표의 정의는 뭐예요?


저는 목표하면 과녁이 생각나요. 그러니까 인생을 사는 데 목표는 방해물이 돼요.



시야를 좁아지게 하는 거군요.


네. 온통 거기에다 내 에너지와 정신을 쏟아야 하는데, 저는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요. 사람이 한 곳만 보고 달리면 여유가 없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 삶이 피폐해진다고 생각해요.



목표 없이 살아가는 걸 더 좋아하게 된 계기에 부모님의 간섭도 있었을까요?


맞아요. 의성에서 제 자아를 찾기 전에는, 제가 원하고 목표하는 것들이 다 부모님의 생각이었어요. 내 것이 아니었어요. 나 스스로 조차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거든요.



지금은 우주님이 뭘 원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 제가 원하는 건요,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돕는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는데, 단계별로 이야기해볼게요. 첫 번째, 아파서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치유해주기. 두 번째, 망설이고 있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기. 세 번째, 나답게 살고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며 서포트해주기.


이런 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제는 어쩌면 목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지치기를 하는 거죠. 오로지 제 필요에 의해서 다른 것들은 잠시만 뒤로 하는 거예요.



우주님만의 세계를 만든다면,
그곳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을까요?

전 인터뷰이분이 우주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에요. 우주님은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싶으세요?


사람들 사이에서 안 보이는 것들이 많잖아요. 생각이나 감정, 마음 같은 거. 근데 저는 그걸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걸 제 세상에서 계속 이루고 싶어요. 계속 마음을 듣고 나누는 것.



그럼 우주님의 세계는 서로의 마음이 투명하게 보이는 세계일까요?


그러면 안 되죠. 의미가 없죠. 안 나누는 것조차 존중을 하는 거죠. 쟤는 나랑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조차 저는 좋은 거예요.


의성에서 어떤 친구랑 좀 트러블이 있었어요. 제가 지나가듯이 그 친구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야, 너 나 싫어하지?” 그랬는데 싫대요. 전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저한테 확실하게 자기 마음을 말해주니까 너무 후련했어요.



그럼 이번에는 우주님이 다음 인터뷰이를 위한 릴레이 질문을 남겨주세요.


일단 그분과 친해지고 싶고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당신의 몸과 마음이 합쳐져 있을 때랑 떨어져 있을 때는 언제인지 각각 세 가지씩 서술하시오. (웃음) 장난이고 없으면 없다고 얘기해도 돼요. 저는 일단 풋살 할 때 몸과 마음이 일치하고요. 몸과 마음이 분리될 때는 산책할 때. 몸은 산책하고 있는데 마음은 저기 딴 데 가 있어요. 그리고 인스타 볼 때.



잘 전달해드릴게요. 진짜 마지막으로, 혹시 지금 이 순간 문득 이루고 싶은 목표 있으세요?


지금 연락하는 썸녀랑 사귀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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