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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채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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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Mar 10. 2022

작은 감자 이야기

다채 4호는 '목표의 부재'라는 주제로 네 분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본 기사는 우주 님의 인터뷰에 대한 에디터의 답변입니다. 인터뷰이, 그리고 인터뷰이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에디터 |Peko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와 같은 삶의 방식까지도.


의성에서 감자를 심은 이야기를 하던 우주 님의 마음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꼭 감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작은 감자 이야기를 썼다.


여기 목표가 없는 작은 감자가 있다. 땅속에서 작은 감자는 알을 키우진 못했지만 다른 모양으로 나오게 된다.



감자마을에 꽃을 달고 있는 작은 감자가 있었다.


작은 감자는 몸에 달린 작은 꽃과 순을 들여다 보기를 좋아했는데 틈이 날 때마다 자신의 몸에 달린 것들을 관찰해서 하루가 다 지나간 적도 있었다. 제대로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를 매일 관찰하며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 매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작은 감자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피지도 않는 꽃을 그렇게 달고 다니니까 네가 더 자라지 못하는 거잖아. 그것들을 왜 떼지 않는 거야?


‘알이 큰 감자'가 되는 일은 감자라면 당연히 추구하는 목표였기 때문에 다른 감자들은 작은 감자가 꽃과 순을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영양분을 뺏어가는 것들을 빨리 떼어 내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작은 감자는 다른 친구들 모두가 ‘알이 큰 감자'가 되려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친구 감자에게 물으면 일단 ‘알이 큰 감자'가 되어야 뭐든 할 수 있으니 너도 빨리 그 걸리적거리는 꽃과 순들을 떼어내라는 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작은 감자는 자신의 몸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한참이나 작은 걸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서 나는 순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꽃과 작은 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랑해. 아직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해.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순을 보살피고 키워내는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자신이 새로 나오는 순과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기다리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순을 뽑아내고 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작은 감자만 빼고 모두들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무섭고 외로웠다.



‘그렇지만 알이 큰 감자가 되기 위해  나의 순을 잘라내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야.’


작게 소곤거리고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꽃봉오리를 보면 외로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다시 작은 순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피어난 것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데 계속 알고 싶은 게 있고 알려고 해도 도무지 모르겠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감자들이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그 시간은 차갑고 어두웠지만 알을 키워야 하는 감자들이 꼭 지나야 하는 날이었다. 영양분이 가득한 땅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감자들은 알을 더 키워서 나올 수 있었다. 그만큼 땅속에서의 시간은 모든 감자들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작은 감자는 알을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었지만 땅속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순과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며 다른 감자들처럼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무척 어두워서 작은 감자와 그의 몸에 붙은 존재들은 서로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었다. 땅 속엔 충분한 영양분이 있어 작은 감자의 몸에 있던 순은 더 무성해졌다. 땅속에서 작은 감자는 자신의 몸에서 자라는 모든 순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더 많은 순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감자는 땅에 품어진 채로 ‘땅속의 시간  번은  가지고 싶다고 잠깐 생각했는데, 새로 자라나는 순을 보면  그런 시간을 보내게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순을 살피고 꽃봉오리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분명히 채워지고 있어.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게 많지만 무언가를 더 알고 싶다는 것 그리고 더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모두가 일정한 크기까지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자마을에서 작은 감자는 땅속의 시간을 보내기 전과 같은 크기로 나왔다. 대신 작은 감자의 몸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순과 조금 열린 꽃봉오리가 달려있었다.


작은 감자는 이전과는 같은 크기로 하지만 다른 모양으로 말했다.


-다른 마을로 갈 거야. 땅 속에서 나는 내 몸에서 나는 것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아직 더 봐야 할 게 있어. 또 다른 이야기가 그곳에 있을 거야.


친구 감자들은 물을 것이다. 알이 큰 감자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 될 거냐고. 무엇을 바라고 다른 마을로 가냐고. 하지만 작은 감자도 알이 큰 감자 말고 다른 무엇이 되려고 떠나는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떠났다.


-나는 내가 발걸음을 떼야할 곳을 알거든.



*감자 꽃봉오리가 맺힐 때 꽃봉오리를 통째로 따주면 꽃을 피울 양분이 감자로 갈 수 있어 알이 굵어지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순을 질러주면 성장이 억제되어 땅속줄기인 감자덩이의 성장으로 힘이 모아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꽃봉오리 따는 것과 순 질러주는 일을 잊지 말도록 하자.

[네이버 지식백과] 감자 (도시 사람을 위한 주말농사 텃밭 가꾸기, 2010. 6. 5., (사)전국 귀농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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