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수사관 Ep. 16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주 형사가 근무지로 돌아간 후 나 홀로 텅 빈 응급실 복도에 앉아 술사 헌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밤을 꼬박 새우고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회진을 돌고 있구나 생각했다.
의사들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술사 헌미가 보였다.
술사 헌미가 따라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너무 반가웠다.
의사들이 길 형사의 침상이 있는 곳에서 길 형사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뒤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술사 헌미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술사 헌미도 속삭이며 말했다.
“뭣 좀 구하느라, 전화가 안돼 거기가.”
“어디 길래 전화가 안돼? 대한민국 안에서!”
“그런데가 있소. 디지털 기기가 작동 안 되는 그런 곳이” 술사 헌미가 근엄하게 서서 침대에 누워 있는 길 형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서로 말들을 주고받더니 술사 헌미에게 말했다.
“환자 바이탈은 극히 정상인데 컨시우스네스만 없는 거라 무어라 정확히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멘탈프로브램이 아닐까 고려됩니다. 환자 분 멘털이 큰 쇼크 같은 거 받은 적이 최근에 없었나요?”
담당의로 보이는 의사가 술사 헌미에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술사 헌미가 물었다.
“당분간 응급실에서 지켜보시는 것이 좋을 듯 사료됩니다. 그럼, 나가시죠” 의사가 나가자고 손짓했다.
“여기서 잠시만 있다가 나가도 괜찮을까요?” 술사 헌미가 공손히 손을 모으며 인사를 했다.
“원래 안되지만 그럼 5분 안에 나오시는 걸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의사가 병실을 나서자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따라 나갔다.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명품 로고가 박힌 카우치 백에서 무언가를 뒤적이고 있는 술사 헌미를 보며 내가 말했다 “어제 제가 물어보니까 여기는 못 들어간다고 하던데요.”
“아까 그 사람이 이 병원 원장, 봉투 두둑한 거 건네니 저리 하더군요” 카우치 백에서 주황색 한지 봉투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시늉을 하더니 길 형사의 정수리에 가져가서는 오른쪽 눈에서부터 오른쪽 엄지발가락까지 주문을 읊으며 쓸어내렸다. 그러고 나서 다시 다른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시늉을 또 하더니 다시 정수리부터 왼쪽 눈에서부터 왼쪽 발가락까지 쓸어내렸다. 그런 후에 발 밑 침대 앞에 서서 손가락 동작들을 빠르게 변경하며 기묘한 모양들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리며 잘 접혀 있는 천 같은 것을 소매에서 꺼냈다. 그 천을 접은 순서의 역으로 창 같은 것을 흥얼대는 리듬에 맞춰 펼쳤다.
펼쳐진 천은 신발주머니 보다 조금 더 커 보였다. 황금 색의 번뜩이는 천 위엔 검붉은 투박한 붓터치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참기름 냄새가 났다. 그 주머니의 입구를 크게 연 술사 헌미가 길 형사의 양 발 끝에서부터 무언가를 쓸어 담는 시늉을 하며 정수리 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린 후에 입구에 있는 검은 끈을 조여 틀어막았다. 그 주머니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빨리 나갑시다” 술사 헌미가 병실에서 나를 밀어냈다.
병원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뭐 하신 거예요?” 숨이 찬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다 잡아서 나와쏘” 술사 헌미도 숨이 차 보였다.
“그럼, 길 형사님 이제 괜찮은 건가요?”
“이거 잡아서 봉인했으니 곧 그리 될 거요.”
술사 헌미가 리모컨으로 자신의 고급 세단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 황금색으로 도금된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상자를 열더니 그 주머니를 주문을 외우며 조심스레 넣었다.
술사 헌미는 잽싸게 차에 올랐다. 나도 따라 타려고 조수석으로 갔다.
“공필님은 여기 있다가 길 형사 깨어나면 문자 주세요.” 그런 나를 멈춰 세웠다.
“네?” 황당해하는 나에게, “제가 올 때까지 길 형사 병원에 잡아 두세요. 병원건물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술사 헌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술사 헌미의 고급 세단이 빠르게 병원을 빠져나갔다.
난 다시 응급실 복도에 있는 벤치로 돌아갔다.
응급실 앞 벤치엔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난 한 칸 떨어져 앉았다.
그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피곤한 눈을 감고 있었다.
“저기요” 옆의 남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았다.
눈을 뜨고 봤다.
“혹시 유튜버 영혼 수사관 감공필님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길 형사님 아시죠?” 남자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네, 지금 길 형사님 의식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 많이 듣고 영상들 잘 봤습니다. 저는 길 형사님 후배이자 파트너인 두사문이라고 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난 그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길 형사님 늘 혼자 다니시던데…”
점퍼 안주머니에서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그 젊은 남자가 말했다.
“길 형사님 항상 혼자서 잘 다니십니다.”
“역시, 그러시구나.”
“요 근래 논두렁 여대생 미제 살인사건 알아보시느라 비번도 없이 수사 다니셨어요. 그러다 저리 되셔서...”
“아… 네…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곧 좋아지실 거예요.”
“네, 워낙 강건한 분이라... 실은 저 보고 뭣 좀 알아보라고 하셨는데…”
“그게 뭔가요?”
“그 사건이 일어난 마을에 대한... 뭐 그런 겁니다.”
“마을에 대한 거요?”
“어차피 수사 공유하신다고 들었으니 말씀드릴게요. 제가 가능한 한 빨리 근무지로 복귀해야만 해서요.”
“제가 길 형사님 깨어나시면 전해 드릴께요. 말씀하세요.”
“그 동네에 실종사건이나 다른 미제사건 같은 거 조사해 보라 하셨는데, 그 동네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옆동네에서 중 2 남학생 한 명이 실종 신고가 되어있더라고요.”
“그 학생 이름 아세요?” 난 깜짝 놀랐다.
“네, 잠시만요” 젊은 형사가 수첩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더니 말했다.
“강기진 학생입니다.”
그 형사의 수첩엔 사진도 붙어있었다.
“그 사진 봐도 될까요?”
그 사진 속 남자아이는 묵뚝둑한 표정의 평범한 아이였다.
“이 학생 옆 마을에 있는 밝은 미래의 집 아이입니다.”
“밝은 미래의 집이요?”
“네, 고아원입니다” 그 젊은 형사가 무언가를 포스트잇에 한참을 옮겨 적더니 떼어 사진 뒤에 붙여 함께 주었다.
“이거 길 형사님 괜찮아지시면 전해 주시겠습니까?”
그 사진 뒤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강기진의 신상정보와 학교 정보 그리고 고아원 원장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네, 잘 전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젊은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린 서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중2병 영가가 강기진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 해왔다.
난 벤치에 앉아 깜박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힘겹게 눈을 떴다.
“잠은 집에서 자야죠.”
눈앞에 길 형사가 서 있었다.
“깨어나셨네요!” 너무 반가워 벌떡 일어나 길 형사를 안으려 했다.
“어이! 뭐 하는 거죠!” 길 형사가 나의 팔을 잡아 뒤로 꺾었다.
꺾인 팔이 너무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아나요?” 나의 팔을 놓으며 물었다.
“취조실에서 갑자기 쓰러지셨고 의식이 없으셨다고 하던데요.”
“흠. 전혀 기억이 없네... 암튼, 내 신분증과 옷이랑 신발, 소지품 다 어디에 있죠?”
“침대로 가 있으세요. 담당의 데려 올께요” 난 서둘러 간호사에게로 가려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참, 이거 두 형사님이 길 형사님 깨어나시면 드리라고 하던데요” 난 강기진의 사진과 포스트잇을 길 형사에게 주었다.
“실종된 중 2 학생이랍니다. 그리고 사건 난 곳 옆동네 고아원 아이랍니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침상에서 딱 대기하세요.”
난 담당의를 데리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며 뒤 돌아봤다. 길 형사가 사진을 보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담당의사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밖에서 기다렸다.
조금 후 담당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괜찮은 건가요?”
“네, 원래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의식만 없었을 뿐입니다.”
“그럼, 퇴원하면 되나요?”
“네, 본인이 직접 서류 작성하시고 퇴원하시면 됩니다” 의사는 고개만 까딱이며 인사를 하곤 응급실을 떠났다.
“환자 분 환복 하시면 나오실 겁니다. 그럼, 수납창구로 오시면 됩니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 말했다.
“수납창구가 어디 죠?”
“A 병동 1층에 안내데스크 우측에 있습니다” 간호사도 고개만 까닥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난 길 형사를 기다리며 술사 헌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 형사님 깨어났습니다.”
“병원 건물 안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가능한 한 빨리 갈게요.”
“그럼, A 병동 1층으로 오세요. 저희 수납창구로 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술사 헌미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주 형사에게도 길 형사가 깨어났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길 형사가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묶으며 나왔다.
그 모습은 슬로모션으로 보이며 마치 명품 브랜드 화보의 한 장면 같았다.
멍하니 보고 있는 내 앞으로 길 형사가 무심히 지나쳐 걸어갔다.
“수납창구로 가야 합니다” 길 형사를 따라가며 말했다.
“어딘데요?” 빠르게 걷던 길 형사가 멈춰 서며 말했다.
“저 따라오세요” 나는 길 형사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을 이어갔다.
“술사 샘이 자기 올 때까지 병원건물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왜죠?”
“몰죠. 수납창구 갔다가 자판기 커피나 한잔 하면서 기다리죠” 난 길 형사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앞서 걸었다.
수납창구에 도착한 길 형사는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고 난 자판기나 매점 같은 것이 없나 둘러보았다.
작성을 끝낸 길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난 길 형사를 잡았다.
“저기 S카페라고 있던데 저기서 커피 한잔하고 당 충전도 하고 가요.”
길 형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길 형사는 마지못해 끌려오는 척했다.
“병원 안에 카페가 다 있네. 공필씨가 돈 내야만 하는 거 알죠.”
“Sure, 공무에 시달리시다 쓰러지기까지 하신 형사분 한테 내라 하겠습니까!”
우린 카페로 향했다.
길 형사가 건물 밖으로 못 나가게 종류별로 주문한 조각 케이크들로 한가득 테이블 위를 채워 놓였다.
언제 응급실에서 의식 없이 누워있었냐는 듯 길 형사는 조각 케이크들을 하나씩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 많던 케이크들이 사라졌다.
그제야 느긋하게 기대앉아 커피를 마시며 길 형사가 말했다.
“공필님 귀에 속삭이는 중2병 영가 아무래도 그 새끼한테 살해당한 게 맞는 거 같죠?”
“그러게요. 그날 이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살짝 걱정이 되긴 하는데…”
“그 새끼 암수 살인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싹 다 불게 만들 거죠 내가.”
“그 아이, 강기진, 고아 같던데 시신이라도 찾아서 천도해 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헌미 씨는 알 수도 있겠죠? 이따 오면 물어보시죠.”
“주 형사가 첫 방송 때 그 아일 봤는데 하체가 안 보인다고 했던 게 마음에 걸리네요.”
길 형사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카페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도 아무런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술사 헌미가 빨리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