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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속휘 Sep 19. 2022

지하, 커튼, 그리고

영혼 수사관 Ep. 15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수납장 맨 아래 깊숙이 넣어 둔 오래된 캠코더 가방을 꺼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가방을 열어 캠코더를 꺼냈다. 그리고 충전기에 배터리를 충전하며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냈다.

“이게 잘 찍히려나” 걱정스러웠지만 대안이 없었다.


충전을 기다리며 아까 길 형사의 이야기를 스마트 패드에 써넣었다. 다음 방송 예고편에 쓸 계획이었다.

길 형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영장이 나와서 지금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충전 중이던 배터리 중 하나를 캠코더에 장착하고 전원을 켰다. 다행히도 작동이 되었다.

쓰고 있던 글을 일단 마무리했다.

그리고 완충된 배터리 두 개와 깨끗하게 청소를 한 캠코더를 가방에 넣었다.


길 형사의 도착 시간이 되어 아래로 내려 가 기다리기로 했다.

아파트 공동 현관을 나서자 길 형사의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나를 태운 길 형사의 차가 구불구불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길에 주차를 했다.

“여기서부터 걸어가야죠” 길 형사가 차에서 내렸다.

차를 주차한 길 옆으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 보였다.

“저기로 올라가는 건 설마 아닐 거라 믿습니다.”

“왜 그러하죠? 가시죠.”


계단을 조금 올랐을 뿐인데 숨이 찼다.

헉헉거리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자 길 형사가 캠코더 가방을 가져가며 운동 좀 하라고 핀잔을 줬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여기저기 깨어진 시멘트 포장의 언덕길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며 길 형사가 검은 대문의 집 초인 종을 눌렀다.

담장 안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구시요?”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박춘호라고 세 살죠?”

길 형사가 문을 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뉘슈?” 할아버지가 문을 반쯤 열고 물었다.

“형사입니다. 여기 신분증이고요, 이건 수색영장입니다.”

할아버지가 대문을 활짝 열고는 신분증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저 반지하 방인디” 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길 형사와 나는 천천히 걸어 가시는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다.

반지하의 출입구는 잠겨 있었다.

“열쇠 있으시죠. 없으면 이 문 부셔야 합니다” 길 형사가 말했다.

“부순다고? 그럼 변상해 줘?”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죠. 그런 거 없죠. 그러니 열쇠 얼렁 가져오시죠” 길 형사가 문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말했다.

“기다려보슈” 할아버지가 집안으로 느릿한 걸음으로 들어가셨다.

길 형사가 라텍스 장갑을 나에게 주었다.

장갑을 손에 끼우며 길 형사에게 물었다 “수색영장 집행할 때 다른 분들도 오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수사대에 인원이 너무 없어서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죠.”

“미제사건이 태산 같은데 인원 충원 뭐 그런 거 안 해줘요?”

길 형사는 아무 대꾸도 없이 창문을 열어 보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나오셨다.

“여기서 찾아보슈” 열쇠가 무수히 달린 열쇠 꾸러미를 나한테 주셨다.

“길 형사님” 창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길 형사를 불렀다.

돌아보는 길 형사에게 열쇠 꾸러미를 내밀었다.

“공필씨가 열어보죠. 난 여기 좀 살펴볼 테니까.”

철렁철렁 소리가 나는 열쇠 꾸러미를 들고 문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구부정한 허리를 힘겹게 지탱하고 서서 우리를 보고 계셨다.

“할아버지 힘드시면 들어가 계시죠. 다 끝나면 알려드릴게” 길 형사가 장갑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러슈 그럼, 갈 때 열쇠는 신발장 위에 잘 두고 대문도 잘 닫고 가슈” 할아버지가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집으로 들어가셨다.


한 참을 열쇠들을 바꿔가며 열쇠 구멍에 꼽아 봐도 맞는 열쇠를 찾을 수 없었다.

길 형사가 문의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더니 내 손에 들려 있는 열쇠 꾸러미의 열쇠들을 살폈다.

그리고 몇 개를 집어 주며 열어 보라 했다.

처음 것을 넣어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렸다.

‘철컹’ 문이 열렸다.

“오~ 대단하시네요.”

“그거 할아버지에게 주고 오죠” 길 형사가 머리에는 샤워 캡 같은 걸 쓰고 신발에 덧신 신으며 말했다.

열린 문을 열고 길 형사가 집안으로 조심히 들어갔다.

“들어올 때 이것들 꼭 머리랑 신발에 씌우고 들어오시죠.” 길 형사가 캡과 덧신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것들을 받아 든 나는 캡을 머리에 쓰고 덧신을 신으며 말했다 “열쇠는 이따 다 끝나고 갈 때 할아버지께 드릴게요.” 그리고 그 열쇠 꾸러미는 수색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집안에 있는 신발장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집안은 반지하라 어둡고 습했지만 엄청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있었다.

장판이며 벽지며 모두 새것처럼 보였고 은은한 방향제 냄새도 났다.

“연쇄살인범 집 같지 않은데요.”

“싸패 중에 이런 놈들 많이 있죠.”

난 캠코더를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먼저 한 장소의 촬영이 끝나면 길 형사가 그곳을 세밀하게 살폈다.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특별해 보이거나 수상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 새끼 이거, 증거 될만한 것들 전부 벌써 다 태운 거 아닐까요?”

“글쎄” 길 형사가 촬영이 끝난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기 쪽문이 잠겨 있는데 그 열쇠들 좀 가져다주죠” 크지도 안은 집에서 길 형사가 소리쳤다.

난 신발장 위에 올려 두었던 열쇠 꾸러미를 화장실로 가져갔다.

길 형사가 단숨에 열쇠를 찾아 작은 알루미늄 새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플래시에 의존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난 전등 스위치를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캠코더 가방에서 자그마한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작은 문 안으로 길 형사를 따라 들어갔다.


길 형사는 스마트폰의 불빛을 이곳저곳 비춰보고 있었다.

캠코더로 촬영을 하며 길 형사에게 다가갔다.

그곳은 좁고 기다란 텅 빈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길 형사가 몸을 돌려 나오려고 하길래 피해 주려고 옆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자 내 발 밑으로 ‘텅’하며 빈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아래로 손전등을 비췄다.

녹슨 커다란 철판이 보였다.

그리고 위쪽에 손잡이 같은 것이 보였다.

길 형사가 그 손잡이를 잡고 낑낑대며 위로 들어 보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위로 들어 열기에 철문으로 보이는 철판의 크기가 컸다. 난 그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밀었다.

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흙 계단이 보였다. 그 아래서부터 자극적인 화학약품 냄새가 올라왔다.

길 형사가 내 손전등을 빼앗듯 가로채 갔다. 그리고 천천히 사방을 비춰가며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그 아래에는 똑바로 설 수 없이 천정이 낮고 협소한 공간이 나왔다.

그 계단 바로 옆에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 정면에 검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길 형사가 다가가 그 커튼을 열더니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캠코더로 커튼이 열린 곳을 줌을 당겨 촬영하며 LCD 화면을 보았다.

자그마한 LCD화면에는 흐릿하게 철재 조립식 수납장이 보였고 그 위에는 약주를 담글 때 쓰이는 용기 같은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줌 성능이 떨어지는 오래된 캠코더라 최대한 줌을 당겨 놓은 상태로 천천히 그 수납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진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유리용기 속 액체에 담긴 많은 눈알들이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흙바닥에 넘어졌다. 난 뒤로 엉금엉금 기어 길 형사에게로 갔다.

여러 개의 유리병 안에는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것들과 알 수 없는 동물들의 눈알들이 뒤 섞여 담겨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을 끝낸 길 형사가 수사대로 전화를 걸었다.


길 형사와 나는 소름 끼치는 지하에서 빠져나와 대문 앞에서 수사대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악마가 분명합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난 멍하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동안 나의 반복되는 말을 듣고서 있던 길 형사가 내 손에 들려있던 캠코더를 가져가 바닥에 놓아둔 가방에 넣고는 둘러멨다.

“악마가 아니고 연쇄 살인을 한 범죄자죠”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선 길 형사가 땅을 낡은 전투화로 문지르며 말했다. 강인해 보이던 길 형사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들리오던 사이렌 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그러자 집안에서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할아버지 그냥 집으로 들어가시죠. 여기 이제부터 범죄 현장입니다” 길 형사가 소리쳤다.

몇 안 되는 주변의 집들의 대문들이 열리며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내다봤다.


열어 둔 현관문으로 방진복과 고글을 쓴 KCSI 요원들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들어섰다.

“화장실 안쪽 지하입니다” 길 형사가 말을 전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처음 보는 KCSI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길 형사를 따라 나왔다.

이미 그 집 주변으로 폴리스 라인이 쳐지고 있었다.


길 형사와 나는 현장을 뒤로한 채 경찰서로 향했다.

“그 싸이코 패스 새끼 왜 눈들을 뽑아다 보관을 하고 있었을까요?”

“가서 물어봐야죠” 길 형사의 굳은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이번에는 길 형사를 따라 경찰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캠코더마저 압수당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냥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충격을 받은 머리가 띵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있었다.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까 본 유리병 안의 눈들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음악소리에 잠에서 깼다. 켜둔 텔레비전에선 예능프로가 재방송 중이었다.

비몽사몽 간에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소파 등받이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다. 손을 소파 쿠션 안으로 밀어 넣어 울리고 있는 전화기를 꺼냈다.

주 형사의 전화였다.

“어쩐 일이세요?”

“혹시 술사 헌미 님하고 연락되십니까?”

“무슨 일이신데요?”

“지금 길 형사가 위독합니다. 서려 대학병원 응급실에 있습니다”

“왜요? 아까 낮에만 해도 멀쩡했는데요?”

“응급실 의사들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주 형사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저도 술사 샘한테 연락해 볼게요.”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헌미님 말 안 듣고 잠복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네, 저도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술사 샘에게 전화했었는데 안 받더라구요. 저도 지금 응급실로 가겠습니다.”

술사 헌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길 형사가 서려대 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했고 잠복근무 이야기를 다시 남겼다.


도착한 응급실 앞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 밖으로 나와 벤치에 걸 터 앉아 주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 형사가 전화를 받으며 병원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주 형사님, 여기요” 손을 흔들 보였다.

주 형사가 다가와 앉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취조실에서 취조하다 쓰러 졌는데 의식이 없어서 급하게 옮겼답니다.”

“길 형사님 가족분들께 연락은 드렸나요?”

“길 형사 가족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적인 이야기라 길 형사가 깨어나면 직접 물어보려 했다.


사건은 점점 괴이하게 꼬여만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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