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수사관 Ep. 14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그 후로 술사 헌미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중딩 영가를 불러 봤지만 아무런 소리도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중딩영가가 주변에 나타나면 역한 생선 썩는 냄새가 났다 사라지며 말을 걸어왔었다.
하지만 삼일이 지나는 동안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사건 현장이 어떻게 되었을지 너무 궁금했다. 그렇지만,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예전 방송들을 통합한 2시간, 3시간, 5시간짜리 몰아보기 영상들만 올릴 뿐이었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다.
다음 방송 예고 떡밥으로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힘겹게 일궈 온 채널은 붕괴되기 일보직전의 위기에 직면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며칠이 지난 오후.
길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셨어요?”
“잡았죠!” 길 형사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어요?”
“살인자 새끼 잡았다니깐!” 길 형사의 흥분된 목소리가 높아졌다.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 말씀해 보세요” 길 형사를 진정시켰다.
“논두렁 진범 잡았죠 내가!”
“네? 어떻게요?”
“그날 헌미 씨가 집에 쳐 박혀 있으라고 한날, 뭔가 감이 오더라고 그래서 그날부터 잠복을 했죠 거기 대나무 숲 언덕 근처에서.”
길 형사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아! 술사 샘도 이 사실을 알아요?”
“아니, 모르죠.”
“그날 눈앞에서 그런 난리가 났었는데… 빨리 술사 샘에게 전화해서 말하세요! 무슨 일을 당하실라구 그러세요. 정말!” 나는 길 형사가 역살이라도 맞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건! 미신이나 믿는 사람들한테 해당되는 거고! 암튼 잡았죠 그 개새끼!” 길 형사의 목소리에 악이 받쳐 있었다.
“지금 어디세요?”
“서.”
“휴~, 진범은 맞아요?”
“DNA 넘겼으니 곧 결과 나올 테죠.”
“제가 지금 갈게요. 거기서 딱 기다리고 계세요.”
술사 헌미에게 전화를 걸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전화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메시지로 길 형사의 상황을 간략하게 남기고 경찰서로 향했다.
“길 형사님 저 서 정문에 왔어요.”
“네, 나갑니다” 길 형사의 목소리가 신이 나 있었다.
나는 길 형사를 기다리며 술사 헌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길 형사가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나에게 드릴 커피는 어디?” 피곤해 보이는 길 형사가 물으며 손을 내밀었다.
“커피는 이따 자판기에서 원하시는 걸로 뽑아 드릴게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길 형사는 아무 말없이 서 밖으로 나가며 따라오라 손짓했다.
“어디 가세요? 범인 새끼 보여 줘요!” 그대로 서 있었다.
경찰서 밖으로 걸어 나가던 길 형사가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길 형사를 향해 어쩔 수 없이 뛰어갔다.
“어디 가시는데요?”
“요 앞에 비싼 카페죠.”
“카페는 왜요?”
“밀린 커피 드림을 받아야죠” 길 형사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자꾸만 길 형사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요, 오늘 밀린 거 다 결산하겠습니다.”
“커피나 한잔 하면서 검거한 썰 말해드리죠” 길 형사가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쓰윽 흝었다.
“다음 방송 예고편으로 좋겠네요” 은근 기대감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카페 문을 열자 커피 볶는 향기가 풍겨왔다.
“오~ 커피 향이 뭐 이건...”
“여기 사장님이 커피 원두 직접 사 오시고 볶고 저기 저 큰 기계로 커피 뽑는 데죠.”
“길 형사님 오늘 제대로 뽕 뽑으려 하시네요.”
“가난한 형사가 후원금 뽕뽑는 삶한테 커피 한잔 얻어 마셔 보는 거죠.”
“여기 블랙 아이보리 있습니까?” 주문대에 선 길 형사가 묻자 커피를 로스팅하고 있던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여긴 그런 커피 안 팝니다.”
“아깝이!” 길 형사가 아이 같아 보였다.
“그게 뭔데 그러세요?” 내가 길 형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까 그 중년의 남자가 말을 받았다.
“동물들 괴롭혀서 만든 몹쓸 것 들입니다. 그냥 모르셔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으십니다.”
“그럼, 여기서 제일 비싼 커피 두 잔 주세요.” 길 형사가 주문대 옆으로 비켜서며 나를 봤다.
“제 것도 주문하신 거 아니에요?”
“내가 두 잔 다 마실 거죠”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당당하게 서서 길 형사가 말했다.
“저도 같은 걸루 한 잔 더 주세요.” 그리고 빠르게 메뉴판을 스캔했다.
제일 비싼 커피의 금액이 30만 원이었다.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했다. ‘뭐야! 커피 3잔에 90만 원…’
“사장님, 이 커피 왜 이렇게 비싼가요?” 궁금해서 물었다.
“엘 인헤르또 커피 중에서도 최상급만 선별해 온 프리미엄의 프리미엄 커피입니다. 소량으로만 판매되는 귀한 커피입니다. 더 자세히 설명드릴까요?” 그 중년의 남자의 얼굴엔 자부심과 긍지가 보였다.
“괜찮습니다. 바쁘실 텐데 검색해 보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6개월 할부로 카드 결제를 하고 길 형사를 따라 창가 옆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카우치가 나를 감싸 안았다.
맞은편에 앉은 길 형사의 처음 보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낯설었다.
유럽 풍의 굉장히 비싸 보이는 커피잔에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잘 모르는 나는 이 커피가 왜 30만 원이나 하는지 그 가치를 알 수 없었다.
“길 형사님 덕분에 이런 비싼 커피도 마셔보네요.”
“나랑 친해지면 이런 호사스러운 일들에 돈 많이 내야죠.”
길 형사는 설탕 봉지를 한 움큼 야상 주머니에서 꺼내 3개를 한꺼번에 땋아 커피잔에 털어 넣고 티스푼으로 빙글빙글 저었다.
그리곤 후후 커피를 불더니 차가운 캔 커피를 마시듯 벌컥벌컥 한잔을 다 마셨다.
“내가 그날 잠복을 나가서 한 삼일 짼가 오일 짼가 되던 날 밤. 1톤 트럭 한 대가 들어 오더라고…” 또다시 설탕 봉지 3개를 한꺼번에 뜯으며 길 형사가 말했다.
나는 소중한 커피를 조금씩 아껴가며 마시고 있었다.
“그러더니 따블 백을 멘 남자가 트럭에서 내려서 걸어 나오는 거죠.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따블 백에서 페트병 같은 걸 꺼냈죠” 말을 멈추고 커피를 후후 불더니 마셨다.
“그래서요?” 첫 잔처럼 원샷하지 못하게 말을 걸었다.
들이켜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길 형사가 말을 이어 갔다.
“그러더니 헌미 씨처럼 뭘 중얼중얼하면서 그 현장 주변을 빙빙 돌길래 천천히 다가가 봤죠.”
“뭘 입고 있던가요?”
“야상. 이거랑 비슷한 야상을 입고 있던데. 그때 생선 썩는 역한 냄새가 확 대나무 숲에서 풍겨 왔죠.”
“생선 썩는 냄새요?” 이건 그 중딩 영가가 나타날 때 나던 냄새였는데 생각했다.
“그놈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따블 백에서 서둘러 칼 같은 걸 꺼내서 턱 아래서부터 긋는 시늉을 하며 가슴 중앙에 가져가 중얼중얼, 그 소리가 어찌나 기분 나쁘던지… 역한 냄새와 그 소리에 토가 나오려는데 간신히 참으며 기어서 다가갔죠.”
“기어서요? 어디까지요?”
“최대한 가까이. 손에 칼로 보이던 게 무슨 마법 칼같이 생긴 RPG 게임의 아이템 같은 걸 들고 있었죠. 그리고 페트병에 담아 온 걸 지그재그로 공중에다가 뿌리니까 그 역한 냄새가 사라졌죠.”
“그게 뭐였을까요?” 알 수 없는 그것이 혹시 중딩 영가를 소멸시키지나 않았을까 염려가 되었다.
“이 새끼가 뭐 비단 같은 커다란 검보라 색 천을 꺼내서 그 액체를 흩뿌려진 곳 위에 펼치더니 그 위에 올라서서는 양손을 모아 위로 높이 들고 펄쩍펄쩍 무당처럼 한참을 뛰다가 천 밖으로 나왔죠.”
길 형사가 커피를 꿀꺽꿀꺽 삼켰다.
“그 천이 부적 같아 보였나요?” 길 형사를 재촉했다.
“그건 잘 모르겠고, 그 새끼가 그 천에 불을 붙였죠. 불이 확 하고 오르는데 그걸 보는 놈의 얼굴이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기괴한 소리로 웃더니 이렇게 말했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못할 거야”라고 하면서 따블 백에서 뭘 꺼내는데 내가 그냥 날아 차기로 쪼졌죠.”
“거기 길 형사님 혼자 가셨어요?”
“고럼! 누구랑 가죠? 다들 정신없이 바쁜데.”
"와~ 이러니 형사를 할 수 있는 건가!" 그 강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놈이 꺼내던 게 뭐였나요?”
“칼. 람보 알죠?”
“네, 다 봤어요. 전 시리즈.”
“커다란 칼을 꺼내는 중이었죠. 내가 삼단봉 펴서 늘씬하게 만들어 주고 수갑 채우고 지원 기다리며 물어봤는데…” 다 비운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 마셨다.
“물 드세요“ 나는 길 형사가 커피를 주문하지 못하도록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갔다.
물컵을 길 형사 앞에 내려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길 형사가 빈 컵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최대한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빈 컵을 받아 들고 다시 물을 가져왔다.
그 물을 또다시 단숨에 다 들이켠 길 형사가 말을 이어갔다.
“날 봤뎄죠. 그 불이 확 올라오니까 내가 땅바닥에서 기어 오는 게 보이더래. 그런데 거기서 날아와서 자기를 찰 줄 몰랐댔죠. 하하하하하” 길 형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안 다친 게 다행이네요” 남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아까 취조실에서 물었더니 쳐 맞아서 퉁퉁 부은 입 꾹 쳐 닫고 있던 게 자백을 했죠. DNA 있다고 하니까.”
“그래요? 의외네요” 난 빈 커피잔에 물을 조금 부어 컵을 휘휘 돌리며 길 형사를 보았다.
“이따 수색영장 나오면 그 새끼 집에 갈 건데 가시려오?” 길 형사가 상체를 움찔거리며 말했다.
난 휘휘 돌리던 커피잔의 물을 마셨다.
“언제 가실 건데요?”
“영장 나오면 바로죠.”
“참, 그 새끼 야상 입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지금 형사님 입고 계신 거와 비슷한?”
“왜 그걸 묻죠?”
“저한테 말 거는 중딩 영가가 있는데. 그 논두렁에서 여대생 죽인 놈이 같은 날 자기도 죽였고 야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더라구요.”
“이 새끼 역시 연쇄였군!” 빈 커피잔을 들었다 놨다 하던 길 형사가 말했다.
“그럼, 집에 가서 전에 쓰던 캠코더 가지고 다시 올게요”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커피 하나만 더 드리고 갔다 오죠.” 길 형사가 삐딱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았다.
“네?” 나는 망설였다.
"이번엔 커피 음미하면서 드실 거라면 쏘고 그렇지 않고 숭늉 마시듯 하실 거면 거절입니다."
오케이 사인을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이는 아리따운 여인의 요청에 나는 더 이상 거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커피값으로 피 같은 돈 총 120만 원을 6개월 할부로 긁고 나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