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메뉴 중엔 '똑음밥'이 있다. 기숙사에 사는 동안 처음에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매일 당근, 감자, 양파, 고기를 사다가 볶음밥을 해 먹었다.
거의 매일 볶음밥을 먹다 보니 생긴 단어, 또 + 볶음밥 = 똒음밥. 남편이 장난으로 또옦음밥??! 하긴 했지만 한 번도 불평불만 없이 주는 대로 잘 먹어줬다. 사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말해뒀다. 내가 해주는 밥에 불평하면 밥 안 할 거라고.
나는 결혼하기 전에 할 줄 아는 음식이 미역국과 김치볶음밥 밖에 없었다. 혼자 장을 본 적도 없었다.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 다니긴 했어도 엄마가 어떤 걸 사는지 보는 것보다 내가 먹고 싶은 걸 찾아 바구니에 담았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걸 러시아에 와서 하려니 마트에 가는 것부터가 나에겐 일이었다. 일단 뭐가 뭔지 단어를 외우는 게 급했기에 처음엔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사고 집에 와서 영수증을 보며 사전에서 하나씩 찾아 단어를 외웠다.
러시아어뿐 아니라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냐면 야채나 과일을 고른 후 바코드 스티커를 어떻게 출력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옆에 있는 착해 보이는 여학생에게 물어봤다. 물론 말은 할 줄 몰라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바나나를 들고 "죄송합니다.. 이거.. 어떻게..?" 했더니 여학생이 찰떡 같이 알아듣고 알려주었다.
그다음 가장 무서운 코너는 정육코너. 한국에서도 등심과 안심 차이도 모르고 어떤 부위로 어떤 음식을 해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 구글에서 돼지 부위가 나눠진 그림을 다운로드 해서 저장해 다녔다. 정육코너에 가서 그 부위의 그림을 보여주며 달라고 했다. 러시아는 고기를 엄청 큰 덩어리로 팔기 때문에 썰어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도 힘드니 누가 이미 썰어서 가져가고 남은 작은 덩어리를 주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기를 물에 빠뜨릴 수 있다니!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러시아 재료들로 이런 음식을 만들 수 있다구? 하며 초보새댁은 놀랄 수밖에 없는 상차림이었다. 그리고 신나게 밥을 먹었다.
- 요즘 밥은 뭐 해 먹어요?
- 음 고기 구워 먹어요.
- 맨날 고기만?
- 네..
그날 상에 있던 고기는 매운 돼지고기찜이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 고기를 굽는 거 말고 물에도 빠뜨릴 수 있구나!' 여태 엄마가 많이 해주신 음식이었는데도 나는 아예 그 메뉴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날 큰 깨달음을 얻고 내 음식은 많이 달라졌다. 이것저것 인터넷에서 찾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매번 인생 첫 메뉴 도전이라 뿌듯하고 재밌었다. 내가 이런 음식을 하다니! 남편도 '오~ 좋은 냄새가 나는데?' 하며 놀라워했다.
처음 하는 음식들이라 그렇게 맛있진 않았을텐데도 남편은 항상 맛있다며 잘 먹어줬다. 그렇게 군소리 없이 먹어줬던 남편 덕에 나는 더 다양한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내 요리가 많이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