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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리 Oct 14. 2022

러시아 폭설 속 이사하다가 이혼당할 뻔했다

쉽지 않은 기숙사 탈출기


기숙사를 탈출해 우리가 집을 구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어를 못 해서 매물이 나와도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매물을 구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기숙사의 삶에도 익숙해져 가다가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 이제 짐을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건데 또다시 우리 관계가 삐뚤빼뚤해졌다.


우리가 이사를 한 날은 눈이 펑펑 내리던 모스크바의 2월. 바닥엔 이미 온통 눈이 쌓여있었고 머리 위로는 눈발이 계속 흩날렸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관계가 잘못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기숙사 방에서 짐을 쌀 때부터 서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눈 쌓인 기숙사 앞 호수


한국에서 올 때 가뜩이나 짐이 많았는데 거기에 6개월 동안 기숙사 방에 살림을 차렸으니 짐의 양은 더 많이 늘어나 있었다. 이불들을 가방에 겨우겨우 쑤셔 넣고 프라이팬도 끼여 넣으니 이민가방의 실밥은 거의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구한 집은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택시로 가면 10분, 버스를 타면 버스 세 정거장 + 도보 10분. 그날은 총 2번을 왔다 갔다 했는데 한 번은 택시 두 대를 불러서 한 명씩 짐이랑 함께 갔고, 한 번은 대중교통으로 옮겼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건 아마도 돈을 아끼려고 그랬던 거 같은데 그날 이후 정신건강과 부부 사이를 위한 돈은 아끼지 말자고 다짐했다.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사는 동안 카쉐어링도 정말 잘 썼는데, 그 당시엔 너무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카쉐어링 생각은 하지도 못 했다. 카쉐어링이라도 이용했으면 우리 몸도 편했을 거고, 그러면 하하호호 웃기까진 못 해도 평온하게 이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버스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잘난 자존심 때문에. 기숙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눈이 쌓여있어서 내가 밀고 가다가는 횡단보도 불도 빨간불로 바뀔 지경이라 결국 남편이 도와줬다.


기분도 안 좋은 와중에 사진은 열심히 찍었나 보다


어쨌든 겨우겨우 짐을 올려 버스를 타고 잘 가다가 한 정거장에서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하잖아!" 남편은 말없이 내렸다. 내리고 보니 한 정거장을 더 갔어야 했다. 남편은 거기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내가 내려야 한다고 다급하게 등 떠미니 화가 났는지 그냥 내렸다. 거기서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되는데 이미 전부터 기분이 상해있던 남편은 "그냥 걸어가자" 하며 앞으로 갔다. 눈은 펑펑 내리고 저녁이 되어 날은 어둡고 가는 길은 또 오르막길인 데다 이민가방에 짐을 너무 많이 넣어서 바퀴는 눈 위에서 구르기를 멈추며 자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바퀴의 힘으로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눈 쌓인 땅에 천 가방을 미는 수준이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화가 나서 앞에 가는 남편의 등도 너무 미웠다. 사실 남편은 나보다 두 배의 짐을 눈 길 위에서 끌고 있었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순간은 눈 쌓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산한다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지나가는 행인들까지도 미웠다. '아니 작은 동양인이 이렇게 힘들게 짐을 끌고 올라가는데 아무도 내가 불쌍하지 않은 거야?!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으니 그 불똥이 지나가는 죄 없는 행인들에게까지 튄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남편을 놓쳤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 주소를 몰랐다. 대략적인 위치만 알 뿐. 러시아 집들은 소련 시절 지어진 집들이 많은데 다 똑같이 생겼다. 정말로! 다! 똑같다. 그래서 심지어 소련 영화 중엔 모스크바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서 다른 지역에 갔는데 집 주소도 같아서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가는 에피소드도 있다. (심지어 열쇠도 똑같아서 -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긴 싫었다. 말도 하고 싶지 않은걸. 그래서 대충 여기겠지 싶어 낑낑 대며 1층 현관에 도착했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남편 목소리, "어디가!" "아니 나는 여기가 우리 집인 줄 알고..." "에휴 정말" 하며 내 가방을 끌고 반대편에 있는 진짜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짐도 다 옮겼고 몰아치는 눈발을 피해 안전한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둘 다 마음이 녹았는지, 그리고 쭈굴쭈굴해진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남편이 먼저 말을 걸어줬다. "힘들었지?" "응, 뭐..."

드디어 우리 집이 생긴 즐거운 날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날 이혼당하는 줄 알았다. 다음 날 엄마의 전화, "이사는 잘했어?" "엄마 나 이사하다가 이혼당하는 줄 알았잖아" "푸하하하 이사가 힘들지!". 그땐 정말 심신이 다 힘들었던 날인데 두고두고 떠올리는 우리의 웃긴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추억이 되려면 힘들어야 하나 보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추억은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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