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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리 Oct 17. 2022

이제는 하나가 되어 잘 삽니다


이사를 한 이후 새 집에서는 싸웠던 기억이 거의 없이 아주 잘 지냈다. 우리의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일단 나는 부엌이 생긴 게 너무 좋았다. 더 이상 프라이팬이랑 온갖 소스들을 이고 지고 방에서 부엌으로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 가스불도 활활 잘 타올라 요리할 때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큰 냉장고도 생겨서 음식이란 걸 저장할 수도 있었다. 얏호! (러시아 집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가구들이 다 셋팅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다닐 때 서로 어깨를 부딪힐 일 없이 각자의 공간도 생겼다. 와이파이도 생겼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시간도 보내고 함께 하는 시간도 보냈다. 그리고 그때쯤은 러시아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게 돼서 간단한 일은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부엌


우리가 이사를 해서 집에 정착한 건 2월. 코로나가 모스크바에도 들어왔다고 발표하기 시작한 것도 2월. 우리가 그때 이사를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질 때 기숙사에 있었다면 부엌을 갈 때마다 마스크를 썼어야 했을 것이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벽에도 경찰들이 수시로 찾아와 학생들 여권 사진을 찍어가고 체온계로 체온을 측정했다고 한다. 우린 그런 거 없이 편하게 집콕을 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이혼율 급증"

코로나가 더욱 심해지면서 장기화되고 있을 무렵 부부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갈등도 많아져 여기저기서 이혼율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한국은 반대로 이혼율이 줄었지만) 나는 "그러니까, 모든 부부는 이렇게 붙어있는 시간을 한 번 경험해 봐야 돼, 우린 이미 그 산을 넘었잖아~"라고 남편에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또 한편으로는 부부가 같이 사업을 하면서 하루 종일 일도 같이 하고 생활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 아무튼 우리가 만약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면 하루 동안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때는 아침과 저녁 시간뿐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각자의 삶을 사니 부딪힐 일도 적었을 것이다. 또는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힘든 시기가 더 길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다 가끔씩 터지는 상황들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묻혔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함께 했던 기숙사에서의 6개월이라는 시간은 참 힘들었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서만 살아보는 것도 좋을 거야"

우리가 러시아로 떠날 때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이다. "가족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서 의지하면서 사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근데 정말 그랬다. 러시아어 문제만 빼면 온전히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 의지할 사람은 오직 서로뿐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괜찮겠지

앞으로 아이가 생기거나 또 다른 새로운 환경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또 힘들어질까?라는 생각에 살짝 무섭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금방 잘 이겨낼 거라 생각한다. 만약 지금 우리의 상태로 그 단칸방 기숙사로 돌아간다고 상상하면 그때보다 더 재밌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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