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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리 Sep 28. 2022

떠났고, 도착했다. 러시아에.

우리의 수난시대 시작


평소 나는 해외로 여행을 떠날 때 설렘이 앞서긴 하지만 두려움도 늘 뒤따라 온다. 별일 없겠지? 무섭지 않겠지? 그럴 때마다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


9월. 그날이 다가왔다.


인천 공항 도착, 가족들 안녕 -

각자 자신의 부모님 집에서 지내다가 인천 공항에서 양가 부모님들, 남편의 누나까지 다 같이 모였다. 아무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아니 일단 슬퍼하기 전에 우리의 짐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짐 무게가 초과가 된 남편은 캐리어에서 하나씩 물건을 빼기 시작했다. 전기밥솥이 가장 먼저 아웃되었고 그 이후로 남편 옷, 어머님께서 싸주신 한국음식 등이 줄줄이 나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짐은 매우 많아서 각자 수화물 추가 요금을 내고 갔다. 거의 세 명이 러시아에 가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금방 다시 만날 것임을 약속하며 헤어짐의 슬픔은 잠시 접어두었다. 코로나가 이 약속을 깨뜨릴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나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모스크바 공항 도착, 러시아인들 안녕!

그 당시 코로나 전으로 공항에 사람은 정말 많았다. 사람들 사이를 휩쓸려 지나갔다. 짐은 또 왜 이렇게 많이 챙겼는지 각자의 짐을 맡아 끄는데 힘차게 밀어도 똑바로 가지 못 했다. 정신없는 사람들 속 다행히 우리를 마중 나온 학교 담당자를 만났다. 이제 우리의 수난시대 시작. 그 사람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우리는 러시아어를 전혀 할 줄 모르니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우리가 딱 하나 알아들은 건 "정말 많다" Очень много. 우리가 짐이 많다는 사실을 알리 없었던 학교 측에선 우리 둘이 탈 수 있는 작은 승용차를 보냈다. 놀랍게도 그 차에 성인 셋, 이민가방 포함 짐 8개가 다 들어갔다. 러시아 아저씨의 엄청난 테트리스 기술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자네는 뒤에 타고" 나한테는 "자네는 조수석 타고"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남편은 뒷좌석에 짐들 사이에 끼여 가고 나는 조수석에서 편안히 갔다. 대화가 안 되니 차 안에는 러시아 라디오 소리만 가득했는데, 이게 언어라고? 이걸 알아듣는다고? 싶은 엄청난 속도의 말들이 귀를 빗겨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은 잊은 채 고개를 좌우로 꺾어가며 졸았다.


이제 정말 우린 러시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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