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우리는 바로 기숙사에 도착했다. 남편이 미리 연락했던 지인 분이 우릴 도와주러 기숙사 앞에 나와 계셨다. 기숙사 건물 앞 계단에 앉아계셨는데 어찌나 빛이나 보이던지.. 우리의 구원자였다. 그날 그분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저녁밥은커녕 우리 방이나 제대로 찾아들어갔을지 모르겠다. 그분 덕에 기숙사 방까지 들어가는 건 척척 진행되었다. 아, 방에 들어가기 전에 내 이름을 러시아어로 써야 했는데 비자에 쓰여있는 글자를 보고 겨우 적었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내 이름도 러시아어로 쓸 줄 모르면서 러시아 유학을 오다니..
러시아 기숙사 이야기는 인터넷으로 많이 봐서 기숙사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그 없던 기대보다도 더 심각한 상태의 방을 보게 되었다. 우리를 공항부터 태워다 주신 관리자, 남편의 지인과 다 같이 방을 들어갔는데 아무도 말이 없었다. 사람이 안 지낸 지 오래되었는지 방에 먼지는 가득하고 덮으면 몸이 아파질 것 같은 이불들이 놓여있었다.(그 이불들은 바로 옷장 행) 그리고 밟을 때마다 끽끽 소리가 나는 나무 바닥과 나무로 된 작은 책상 두 개와 침대 두 개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고 지인 분이 "내가 있었던 방보다 조금 더 안 좋긴 하네. 가족회의를 해서 기숙사에서 계속 살 지 집을 구해서 살 지 정해야겠다" 하셨다. 참 심란하긴 한데 가족회의라는 단어는 너무 웃겼다. 그렇지, 우리가 이제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지.
(러시아 기숙사는 바퀴벌레가 많은 걸로 유명하다)
우리의 기숙사 신혼 생활
방에 먼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비염이 있는 남편은 처음 며칠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눈물 콧물을 다 쏟았다. 그래도 그 이후엔 우리가 청소를 하기도 하고 적응이 되었는지 잘 지냈다.
방에는 침대, 옷장, 책상으로 꽉 차 있어서 한 사람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만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쓰던 층은 우리처럼 가족들이 사는 층이라 침대도 붙어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꼼짝없이 딱 붙어지내게 되었다.
(몇 시간 둘이 쓸고 닦고 열심히 치워서 깨끗해진 우리의 방)
우린 결정했다. "우리 여기서 한 달만 살고 집 구해서 나가자."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만 더 있으면 집을 구할 수 있겠지?". 우린 계속 집을 구하지 못해 그렇게 그 방에서 6개월을 살게 되었다. 6개월을 기숙사에 있을 줄 모르고 우리는 짐도 다 풀지 않은 채 지냈다. 옷 몇 개만 옷장에 정리하고 거의 대부분 이민가방에 그대로 넣어두어서 항상 뭔가를 찾느라 바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 방에 냉장고가 없었다. 공용 부엌에도 없었다. 그곳을 금방이라도 떠날 생각으로 우린 냉장고를 구하지 않고 버티고 버티다 냉장고 없는 두 달을 보냈고 결국 중고로 작은 냉장고를 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냉장고는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가전제품이라는 것을. 특히 더운 날엔.
주방 차지하기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공용 부엌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우리 방에서 공용 부엌까지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 방과 부엌까지의 사이에는 문이 3개가 있었고, 요리를 할 때마다 매번 온갖 소스들과 식기 도구들을 방에서 부엌으로 옮겨 다니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아마 나 혼자 그냥 유학생으로 갔었다면 그냥 대충 냉동식품이나 빵, 스파게티만 먹으며 편히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남편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무언가를 하려다 보니 그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게다가 요리를 할 줄 몰랐던 나에겐 더 큰 숙제였다. 그리고 가스불이 말썽이었다.프라이팬이 달궈지기까지는 7분 이상이 걸렸고 물이 팔팔 끓으려면 15분은 올려놔야 했다. 그마저도 잘 달궈지는 불은 12개 중 3개뿐이었기에 다들 그 불을 쓰기 위해 저녁마다 전쟁이었다. 학교를 갔다 오면 우선 프라이팬부터 올려두어야 저녁을 제 때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층엔 중국인 부부들과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중국인들은 주로 큰 솥에 무언가를 맨날 1-2시간씩 푹푹 끓였다. 러시아인들은 그냥 소시지 몇 개, 파스타 또는 튀김류를 먹었다. 저걸로 배가 찰까? 싶은 식단이었다. 부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라는 중국이 1등, 그다음 한국, 그다음이 러시아였다.
세탁기 차지하기
세탁실은 1층에 있었는데 사용 가능한 세탁기는 3대였다. 그래서 주말이나 저녁 시간은 세탁 전쟁이었다. 가끔은 세탁기 앞 의자에 앉아 돌아가는 세탁기 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했다. 아니면 주말 아침 세탁실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달려가 줄을 섰다. 나중엔 남편과 번갈아 가며 자리를 지키거나 앉아서 숙제를 했다. 세탁실에는 항상 관리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는데 당시 내 목표는 기숙사를 나가는 날까지 그 아주머니와 멀쩡한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무뚝뚝한 러시아 아주머니와 친해지려 초코파이 뇌물도 가끔 드리며 겨우 외워간 한 마디를 말해보기도 했다. 내가 목표한 대로 원활한 의사소통은 결국 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그 몇 마디 하는 게 뿌듯했다.
서로의 똥냄새 참기
화장실은 변기와 욕실이 각각 다른 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샤워 칸은 우리가 갔을 때부터 깨끗하지 않았고 샤워를 해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방에만 있으면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샤워 칸은 볼 때마다 너무 이사 가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방 구조의 가장 큰 문제 - 누구라도 큰 일을 보고 나올 때면 문은 반드시 닫아야 하는데, 닫으면 환기를 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환기는 시켜야 할 거 같아 방에 있는 창문이라도 여는 순간에는 바람이 휘잉 들어오면서 화장실 공기와 만나 엄청난 냄새 분자들이 방을 한 바퀴 휘젓고 나갔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똥냄새를 맡으며 지냈다. 그나마 부부라서 다행이지 외국인 룸메이트랑 이러고 지냈으면 너무 민망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