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남편은 요리를 즐긴다.
여기서 '최근의'의 의미는, '사업이 망하고 그걸 수습하려고 할 수 있는 긴박하고 다급한 노력을 모두 다 하고 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갖고 있는 건 오로지 나에 대한 죄책감밖에는 없는, 비루하고 짠하기 그지없는 시기의'이다.
남편이 경기도에서 일하다가 잠시 집에 내려와 있을 때, 남편은 아이와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을 만들어낸다. 치킨, 탕수육, 짜장면, 잡채, 갈비찜, 초밥, 열무김치, 무생채 등등 주문하는 건 모두 요리해서 내온다.
라면밖에 끓이지 못했던 남편이 최근 일 년 사이에 요리를 하게 된 이유는, 가난해져서이다. 남편은 가족들에게 외식을 시켜 줄 돈이 없다. 남편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가 산 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칭찬이다. 남편은 요리를 하기 전에 요리 레시피 유튜브를 매우 집중해서 본다. 유튜브에 나온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기 때문에 남편의 요리는 대부분 맛있다. 남편이 만든 요리를 먹고 나와 아이가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면, 남편은 말할 수 없이 뿌듯해한다.
원래 남편은 칭찬을 갈구하는, 칭찬만 해주면 춤도 출 고래 같은 인간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도 남편을 칭찬해주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지독한 원망의 말들을 들으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중이어서, 한 마디의 칭찬도 남편에게는 한 방울의 생명수일 것이다.
그 칭찬을 듣기 위해 남편은 요리 유튜브를 정독한 후 두 시간을 서서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남편은 그렇게 하여 딱 한 끼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며칠 전 요리를 하다가 남편이 말했다.
"나한테 요리는 속죄 의식 같은 거야. 자기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가을동화의 송혜교처럼, 남편의 머리에 손이라도 얹고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했어야 하나 싶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의 모든 죄를 사할 넓은 아량이 나에게는 없다.
철저히 독박 육아를 시켜 나를 끊임없이 고독하게 만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싹 망해 나의 삶을 우르르 무너질 것처럼 만든 것, 나의 이름으로 갖가지 대출을 받도록 해 나의 생활을 궁핍하고 위태롭게 만든 것. 그 많은 죄들을 한 끼의 음식으로 퉁칠 수는 없는 일이다.
남편은 나와 아이가 먹고사는 것에 심각하게 큰 지장을 주었다. 하지만 또 역설적이게, 남편은 나와 아이가 맛있고 푸짐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남편이 만들어준 요리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건 천만 원짜리 음식이구나, 내가 한 끼의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아주 큰돈을 지불했구나... 그런 생각들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편이 담근 열무김치는 남편이 전당포에 맡겼다가 결국은 되찾지 못한 아이의 돌반지이고, 남편이 만든 비빔국수는 할부금을 고스란히 남긴 채 팔아넘겨야 했던 나의 자동차이다. 남편이 만든 김치찜은 집을 저당 잡히고 얻어준 대출이고, 남편이 만든 닭볶음탕은 언제 우리의 일상이 깨질지 몰라 항상 불안해해야 하는 나의 두려움이다.
나는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하고 한 끼 분량의 포만감을 얻는다. 한 끼의 미식을, 그로 인한 찰나의 웃음과 평안을 획득한다. 그리 생각하면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비효율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해 한 달 이상 전화기가 끊겨있었던 남편에게 오늘 전화가 왔다. 휴대폰에 남편 번호가 떴을 때 든 마음은, 애석하게도 반가움이었다. 드디어 휴대폰 요금을 해결했구나 하는.
이제는 남편이 전화 발신만 할 수 있는 상황만 되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남편에게 갖는 기대치가 얼마만큼 낮아질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남편이 만든 극한에 적응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나의 뛰어난 적응력이 심히..... 못마땅하다.
내가 물었다.
"휴대폰 요금 해결했어?"
"요금 쪼끔 내고 이틀 동안만 쓰기로 했어."
아, 비루하고 비루하고 비루한 인간이어라. 헛웃음만 나왔다.
이 비루함이 나에게도 전염되는 것 같아 남편과의 헤어짐을 고민하는 것이다. 산뜻하고 깔끔하게 살고 싶어 이혼을 숙려 하는 것이다.
나의 이혼 숙려 기간은 이렇게 또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