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복권을 사러 걸어가면서 남편과 나눈 전화 통화 내용이다.
남편: 밖이야?
나: 응. 열불이 나서,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어.
남편: 그렇구나.
나: 주가가 엄청 오르고 있대. 삼성전자는 벌써 10만 원이 넘었대. 다른 사람들은 주식해서 돈 버는데 나는 너 때문에 주식도 한 번도 못해봤어. 대출금 이자만 내는데도 허리가 휘어.
남편: 나는 해봤나?
나: 그러니까, 너는 너 때문에 못한 거지만 나도 너 때문에 못한 거잖아.
남편: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나: 왜 몰라? 이렇게 될 줄 왜 몰랐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업은 왜 했어?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했으면서 그런 큰일은 왜 벌렸냐구?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겠어?
남편: 나는 더 비참해.
나: 됐어 끊어.
복권집에 갔다 오는 내내 억울함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천 원을 주고 산 복권은 천 원이 당첨되었다. 이게 뭘까, 나는 왜 결국은 꽝인 복권을 사기 위해 매일 저녁 이렇게 걷는 것일까 잠시 허무했다.
하지만 복권의 희망마저 없다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적과 같은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그 미약한 기대마저 없다면, 나는 버틸 수 없다. 하루에 이천 원으로 나는 그 기대, 그 헛된 희망을 사는 것이다.
코스피가 사천이 넘고 여러 회사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고 한다. 경제 문외한인 나는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이런 현상들 덕에 돈을 버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는 한다.
같은 회사 누군가는 큰돈의 주식을 굴려 회사를 취미로 다니고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삼성전자를 더 좋은 가격에 팔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다. 오래 알고 있는 지인 중 한 명은 아이에게 물려줄 계획으로 벌써 십여 년 전에 삼성전자를 여러 주 사놓았다고 했다.
남편 사업 자금으로 벌써 아이 통장을 깨고 돌반지까지 팔아넘긴 나로서는, 참 부러운 이야기들이다.
부러운 사람들이 많다.
빚이 없는 사람들, 빚 독촉을 받지 않는 사람들, 남편이 한 달에 한 번씩 따박따박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복권 당첨과 같은 허황된 꿈을 꾸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그런 모든 사람들이 부럽다.
그래서 경기가 좋아지고 돈을 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달갑지 않다. 나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들만 좋아지는 건, 나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만 가난한 것 같고 나만 불행한 것 같다.
나도 좋아지고 싶다. 나도 그들처럼 웃고 싶다. 나도 그들처럼, 당장 먹고사는 데에 필요하지 않은 돈을, 소유해보고 싶다.
그래도 나는 생존 본능이 강하니, 계속 살아가기 위해 부럽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볼까?
으음.... 나는 건강하다. 노안이 너무 이른 나이에 와 저녁에는 눈이 침침해져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눈물이 막 나오지만, 에너지가 심히 작아 밤 9시만 넘으면 연신 하품이 나오고 목 디스크가 조금 있는 편이지만 사지 육신은 멀쩡한 편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쯤 술을 마셔도 아직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중 정도는 아니고 산후우울증 같은 것도 겪지 않고 지나갔다.
또한 나는, 아이 때문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아이는 잘 크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체화시켜 가면서 건강하게 쑥쑥 자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돈이 없어 불행하다. 그런 상황을 만든 주체가 오로지 남편인지라 억울하기 그지없기도 하다.
하지만, 건강하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를, 무사하지 않은 하루일지라도 어떻게든, 건강한 몸뚱아리로 버티며 지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