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지식인 같아요."
남편에 대해 소개할 때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별다른 추가 설명 없이도 남편의 분위기를 대강 알아채곤 한다.
무슨 특별한 사건이나 이유가 있어 남편을 이렇게 표현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때는 남자친구였던 남편을 생각하면, 흑백사진들에서 보던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남편과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자주 쓰게 된 단어들이 있다. 그전에는 내 입으로 별로 발음해 볼 일이 없었던 단어들, 나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였던 추상적이고 그 실체를 느끼지 못했던 단어들.
그 단어들 중에 하나가 '박복'이다.
남편은 박복한 인간이다. 부모님이 자주 싸우는 가난한 집안에서 청소년기까지 자랐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돈이 없어 고시원에서 4년을 살았다고 했다. 하는 일마다 불운이 따라다녔고, 20대 후반에 어머니가, 40이 되면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셔 남편은 늙은 고아가 되었다.
하소연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네가 남편의 복이 되면 되지.'라고 말한다. 진심인지 다만 위로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말한다.
"그 말이 제일 싫어. 내가 가장 큰 행운인 남자. 얼마나 박복해야 그럴 수 있는 거야? 너무 짜증 나"
나는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워킹맘이 되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항상 바빴는데 아이러니하게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일을 하면 돈을 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 원리였는데 남편은 이상하게 그 기본 경제 원리마저도 따르지 않는 남자였다. 일을 했는데 돈을 썼다. 남편이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건, 내 덕분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빠, 은혜 갚은 까치 알지? 까치가 선비한테 은혜를 입고 그거 갚으려고 징에 머리를 짓찧어서 선비 살린 이야기 말이야. 오빠도 그렇게라도 해서 나한테 입은 은혜 갚아. 알았지?"
남편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알아', 하면서 웃었다.
'망할, 웃기는 왜 웃어'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나도 웃어버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드라마 중에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드라마에서 엄마에게 버림받고 미혼모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심지어 연쇄살인마에게 살인협박까지 받고 있는 박복한 여자주인공 '동백'이 자신에게 직진하는 시골 순경 '용식'에게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었다.
"도망가요. 용식 씨 내 옆에 있으면 팔자도 옮아요."
남편의 박복한 팔자가 나에게 옮은 것 같다. 남편이 박복한 인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남편이 이상하게 일제강점기 지식인처럼 느껴졌을 때, 그때 도망갔어야 했다. 이렇게 살 걸 알았다면 그때 나는 절대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순간들에 귀를 기울이고 더 현명하고 신중하게 선택했을 것이다.
남편과 연애할 때 자주 듣던 게 하필 철학 관련 팟캐스트였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였다. 그 철학 내용 중에 아주 자주 나왔던 내용이 '지금'이었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라, 이런 류의 내용들. 그 팟캐스트를 듣던 순간들에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고 남편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다. 미래는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왜 이런 결혼을 하냐고 묻던 친구들에게 이런 비유들을 들어가면서 말이다.
'있잖아, 섶을 들고 불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하는 거야.' 아니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마음으로 하는 거야.'와 같은. 사실은 그때는 섶을 들고 불에 뛰어들 수 있을 만큼, 절벽에서 아무 안전장비 없이 뛰어내릴 수 있을 만큼, 그만큼의 크기였던 것 같다. 남편에 대한 마음이. 그 망할 사랑이.
'동백꽃 필 무렵'에서 용식은 동백의 말을 듣고 동백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여 결국엔 해피엔딩을 맞는다.
나도 어쩌면, 동백과 용식처럼, 로맨스 드라마처럼, 결국은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후회와 기대 사이, 원망과 연민 사이에서 여전히 허우적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