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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혼 전야

by 휴지기

수납장을 정리하다가 재작년에 가정법원에서 받아놓은 이혼서류를 발견했다. 아이가 찾을 수 없게 가장 높고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2023년도 이혼서류들을 찢어 종량제 봉투에 넣으며, 혹시 모르니 올해도 가정법원에 가서 서류나 받아다 놓을까 살짝 고민했다.


2023년이 끝나갈 무렵 협의이혼을 신청하기 위해 가정법원에 갔다. 평일에 가야 해서 직장에 조퇴를 썼고, 이혼서류를 제출하러 간다고 할 수 없어 은행에 간다고 둘러댔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서류를 인쇄해 작성해야 할 건 다 작성해 갔고,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첨부서류들도 다 준비해 갔다.


이혼서류를 제출하는 곳은 2층이었다. 2층에 올라가 준비해 온 서류들을 내밀었더니, 접수 담당자가 이 서류들이 아니라면서 다른 이혼서류 서식을 주며 거기에 내용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아, 멍청하면 이혼도 못하는구나 자책을 하며 그 자리에서 서류를 다시 작성해 제출했더니, 또 미성년 자녀가 있어서 평일 9시 30분에 있는 자녀양육 관련 영상을 보고 확인서를 함께 제출해야 이혼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난감했다. 연가를 쓰기 힘든 직장에 다니는 터라, 양육 관련 영상을 보기 위해 연가나 지각을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자녀양육영상이 없냐고 물었더니 담당자가 없다고 했다.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꼭 평일 9시 30분까지 와서 영상을 시청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날 협의이혼을 신청하지 못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이후로도 계속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결국은 아이양육 관련 영상 때문에 이혼 신청을 못한 것이었으니 누군가는 아이가 우리의 이혼을 막은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르겠다. 아이 덕분에 다행히 이혼을 하지 않은 건지, 아이 때문에 아직도 이혼을 하지 못한 건지 말이다.



좋아하는 책 중에 김연수 소설가가 쓴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이 있다. 그 산문집에 있는 글 중 일부이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남편 때문에 너무 힘이 들 때, 정말 죽이고 싶도록 밉고 원망스러우며 내 인생이 미치도록 답이 없다고 생각될 때 저 구절 덕분에 힘을 얻곤 했다. Ten Days of Happiness, 그래 적어도 열흘은 행복했잖아. 그러면 된 거야,라고 스스로 위안하곤 했지만 그럼 나머지 날들은? 하고 반문하고픈 마음도 굴뚝같다. 1년만 해도 열흘을 빼면 355일인데, 355일 불행하고 10일 행복하다면 그 불행한 모든 날들은 어쩌란 말인가?


남편은 나를 소리 내어 웃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웃는 순간이 찰나라는 것이다. 남편을 만나 웃었던 그 찰나의 시간들을 다 더하면 열흘쯤이 될 테지만.... 그 나머지 시간들은, 그 열흘을 제외한 영겁 같은 시간들에 나는 자주 외롭고 힘들고 가난하다.


그 영겁 같은 시간들에 나는 자주 이혼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수두룩한 날들의 밤이 나에겐 언제나 이혼 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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