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날 새벽이었다. 4시쯤 일어난 나는 차를 끌고 구리에서 인천으로 가고 있었다. 지방에서 일하다 결혼식 전날 올라온 남편을 데리러 남편의 본가로 가는 중이었다.
어째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결혼식날은 신부가 주인공이라는데 마치 하녀인 것처럼 신랑을 데리러 구리에서 인천까지 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불길했다. 이 결혼이 맞는 것인가 한참을 혼자 고민하면서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 남편 본가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한 번 불길함이 덮쳐왔다. 이건 뭐지? 설마, 안 일어난 건가? 결국 남편 본가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수차례 전화에도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자고 있다고 했다. 깨워서 내려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분노와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남편이 차에 오르면서부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어제 오랜만에 올라와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잠깐 만났다고. 정말, 진심으로, 이게 미쳤나 생각했다.
"결혼식 전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자다가 부랴부랴 나온 거라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결혼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남자와 평생을 살 결심을 하다니, 내가 단단히 미쳤었다고 말이다. 차를 타고 메이크업샵이 있는 강남 어딘가로 가면서 결국 나와 남편은 한바탕 싸움을 했다. 누군가가 '다 때려쳐! 결혼이고 뭐고 다 때려쳐!'라고 했었고 어찌어찌하다가 우리는 다시 화해를 했다. 웃으면서 차에서 내려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지만...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이 결혼생활이.
믿을 수 없겠지만 결혼식날의 사건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가수 이적을 좋아했던 나는, 남편에게 결혼식 때 이적의 '다행이다'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노래 솜씨에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남편은 그러겠다고 했고, 조금 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해 남편 친구가 축가를 부르다가 2절이 시작할 때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나와 노래를 부르기로 시나리오를 짜놓았었다.
결혼식 직전, 축가를 부르기로 했던 남편 친구가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도 계속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식이 시작하기 10분쯤 전에 가까스로 통화가 된 친구는,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을 알렸다.
남편 친구의 어머님이 쓰러지신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당장 우리 축가를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노래를 1절부터 끝까지 부르기로 했다. 2절밖에 연습하지 않았던 남편은 급하게 휴대폰으로 1절 가사를 외우다가 입장해야 한다는 소리에 우리는 함께 식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랑신부 입장과 양가 부모님께 인사, 혼인서약서 낭독 등이 끝난 뒤 남편의 축가가 시작되었다. '그대를 만나고~'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놓쳤고 음정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남편의 떨림이 그대로 목소리에 묻어 나왔으며 중간중간 가사를 까먹기도 했고 심지어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결혼식장 안에서 남편의 노래를 듣던 시누이들, 그러니까 남편의 누나들은 남편의 노래를 더 듣고 있기가 너무 낯부끄러워 잠시 식장을 나가있었다고도 했다.
남편은 준비한 2절을 부를 때가 되어서야 안정을 되찾았고, 나쁘지 않게 노래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의 노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지만 돌발상황을 어떻게든 마무리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조금, 웃겼다.
우리는 '다행이다'의 가사처럼 서로의 머릿결을 만지며 잠이 들었고, 함께 나누어먹을 밥을 지었다. 고된 하루살이를 하고도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그만 위로를 받았고, 거친 바람과 젖은 지붕 아래 서로를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결혼하고 나서 잠시는 말이다.
신혼이 지나니 남편의 커다랗고 커다란 단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점들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은, 나를 자꾸만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다.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에 온 마음에 분노와 원망과 쓸쓸함과 후회가 회오리처럼 일어 나를 집어삼켰다.
그럴 때 나는, 가수 이적이 추운 겨울 놀이공원에 버려진 아이를 상상하며 가사를 썼다는 '거짓말거짓말거짓말'이라는 노래가 떠오르곤 했다. 돌아온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차가운 길거리에 혼자 서있다가 새하얗게 얼어버린 노래 속 화자에 너무 감정이입이 되었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하소연, 원망, 그리움의 감정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았다. 결국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며 읊조리며 끝나는 노래 속 화자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아서 너무 불쌍하고 화가 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혼하지 않는 한 나는 또 남편을 철석같이 믿어야 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많이 속았고 그때마다 상처받았지만, 같이 사는 남편을 믿지 않는 방법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참, 자발적 호구인 것 같다.
언젠가는 또, 서로를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여기는 순간들이 있겠지, 거친 바람과 젖은 지붕 아래서도 함께 지어먹을 밥을 지을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는 순간들이 있겠지, 이런 기대와 믿음들이 부디 헛된 마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을 또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