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면접을 봤다. 1년 간의 거취가 달린 중요한 면접이었다.
면접대상자임을 확인하고 거의 2주 동안 틈틈이 면접 준비를 했다. 나이가 들고 술을 마시고 도파민 나오는 영상을 많이 봐서 그런지 뇌가 썩은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잘 외워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그리고 나름 열심히 했다. 면접 준비를 하느라고 노트 한 권을 다 썼다.
면접 대기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너무 떨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크게 뛰어 그 진동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말이다. 내가 떨리고 있다는 걸 인식하니, 더 떨렸다. 머릿속을 비우려고 브런치에 쓸 글 내용을 구상해 봤지만 어떤 것도 쓸모가 없었다.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고 머리도 아파오는 것 같았다.
면접은, 망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답을 별로 하지 못했다.
밤에 자다가 면접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꿈에서도 나는 너무 허망했고, 내가 붙을 줄 알았던 많은 주변 사람들도 많이 당황하고 애석해해 주었다.
어제저녁에 사무실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 뒤에 다시 전화를 했을 때야 통화가 되었고 남편은 일하는 중이라고, 너무 바쁘다고 했다. 남편의 목소리가 지쳐있었다. 나는 면접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어젯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들어왔다.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아들이 '아빠 생각보다 빨리 들어왔네?'라고 말했다. 남편은 전화 목소리만큼 지쳐 보였다. 면접을 망친 것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에서 직장 이야기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일하면서 나의 무능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상처받은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에, 내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며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남편은 언제나 나보다 10배나, 아니 100배나 힘들어했다. 내가
"오빠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라고 말하면 남편은
"나는 오늘 죽고 싶었어."
라고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남편의 저 대답이 과장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자주 죽을 만큼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다와 인접한 공업도시, 남편은 여러 번 바다에 빠져 죽을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몇 달 전 바닷가 저녁 산책 중에 나무 데크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여기 떨어져 죽으려고 했었어."
라고 남편이 말했다. 나는 나무 데크 밑을 쳐다보며
"낮아서 떨어져도 안 죽어. 어디 부러져서 나 또 고생이나 시키겠지."
하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남편이 달리는 차에 뛰어들 것 같아 경찰에 신고를 한 적도,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의식이 없어 구급차를 부른 적도 있었다. 남편은 자주 삶과 죽음의 극단 어디쯤을 달렸고 그런 남편에게 나의 면접 따위는 말할 수 없이 시시하고 하찮을 문제이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무던하고 강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아무도 없는 이 낯선 도시에서 돈을 벌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래도 사무치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런 때 남편은 언제나 곁에 없었다.
하나 다행인 건, 여기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누군가는 읽어줄 거라는 것, 그래서 이 글이 어떤 이에게는 깃털 같은 위로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그런 사실들로 나는 위로를 받는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위로 없이, 상처를 자가치료하며, 오늘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도록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