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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과 반대인 남자와의 결혼(호외)

by 휴지기

결혼 전 이상형이 있었다. 아니, 이상형이라기엔 너무 소박하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조건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우리 남편은 그 소박하디 소박한 조건들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는다. 나의 이상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건강할 것.

둘째. 살림을 잘할 것.

셋째. 사업을 하지 않을 것.


나는 기본적으로 젊은 남자 어른들은 대부분 건강할 줄 알았다. 당연히 우리 남편도 건강한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뭐랄까.... 신체 면적을 1제곱센티미터로 나누었을 때 남편은 나뉜 모든 면적이 아픈 사람인 것 같았다.


우선,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런지 기침을 많이 했다. 재채기 수준의 가벼운 기침이 아니라 온 뱃속의 장기가 다 입으로 튀어나올 만큼 깊고 큰 기침 말이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치고 간이랑 폐가 아주 건강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던데, 모르겠다. 저 기침들은 왜 나오는 건지.


남편은 비염이 있어 코가 자주 막히고 콧물도 자주 나온다. 가끔은 영구처럼 투명한 콧물을 달고 있다가 나에게 구경하라고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더럽다고 소스라치면서 또 웃겨 죽는다. 확실히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두통을 달고 살고 오른쪽 손목에 철심을 박아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오른 손목이 뻐근하다고 한다. 무릎에 물이 차 가끔 앉았다 일어날 때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기도 하며 발목이 시큰거려 오래 걷지도 못한다.


평발이라 자꾸 발바닥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다며 나에게 주물러달라고 비굴하게 애원을 하고 허리가 안 좋아 예전에 아들이 아기였을 때 아기를 잘 안아주지도 못했었다. 장도 안 좋아 화장실을 자주 가고 오래 앉아있다가 나와서 화장실 간 남편을 기다리느라 카페나 식당에서 이삼십 분쯤 혼자 앉아있는 건 기본이었다.


남편이 아픈 건 안타깝다. 하지만 결혼한 입장에서, 하루하루 해내야 할 미션들이 있는 일상생활에서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몫까지 다 해내야 한다. 그게 문제다.


가끔 평일에 몸을 혹사시켜 주말에 소파나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면, 안타깝고 애처로워야 하는데 그런 느낌보다 원망스러운 느낌이 크다. 이럴 때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건강한 것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남편은 작년부터 요리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거 말고는 살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도 모를 것이다. 해도 티 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티가 확실히 나는 일들 가령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관리비를 내고 아이 준비물을 챙기는 일들이, 남편에게는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또한 놀랍게도 남편은, 사업을 한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대부분의 세상을 드라마에서 배웠기 때문에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사업하던 사람들은 자주 망하고, 무서운 남자들이 신발을 신고 사업하던 사람의 가족이 있는 집에 무작정 들어와 모든 가구와 가전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가는 장면을 자주 봤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랫말처럼 옆에서 지켜보니 사업이라는 게 참.... 게다가 이런 불경기에 사업이라는 건 참, 밝은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해서 나는 너무나, 힘이 든다.


어느 날, 남편과의 대화이다.


"오빠,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었나 봐. 이완용이었었나?"

"왜? 나 때문에 고생해서?"

"응. 내가 나라를 팔아먹어서 유약하고 병약한 일제강점기 지식인 오빠가 나 때문에 엄청 힘들었나 봐."

"쫌만 기다려라. 좋은 날이 올 거다."


10년을 넘게 기다렸는데 좋은 날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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