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신과 친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아이를 키우다보면, 30년 넘게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애매하게 묵혀두었던 어려운 문제들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5살된 딸 아이가 같이 놀던 친구에게 맞게 되면, 친구의 부당한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그럴 때, 잠시 내 마음 속 깊은 방에 묵혀두었던 예전 기억들이 다시 살아난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부당하게 나를 비난했던 일, 회사에서 누군가 나에게 인신공격을 하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던 일 등등. 그때의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할 뿐, 내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하고 내 입장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상대방을 이해려는 노력함으로써, 그 사람의 비난이나 공격이 나의 가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아픈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나의 감정을 정당하게 여겨주고, 상대방에게 나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다. 아직도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을 많이 신경 쓰는 나는, 현명하게 거절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아이에게 건강한 인간관계를 갖는 법을 알려줘야 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 때, 내가 아직 완벽히 풀지 못한 숙제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아직 풀지 못하고 묵혀두었던 숙제에 대한 답을 나의 말로, 분명한 언어로 아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수용해주고, 친구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너를 때렸지만 때리는 건 어느 이유에서건 잘못된 것이라고, 친구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야 한다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멈추지 않을 때에는 어른에게 말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아이에게 이렇게 분명한 언어로 가르쳐주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다짐할 수밖에 없다. 나부터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엄마가 되어야 겠다고, 말로만 가르치는 어른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차분히 말함으로써 나를 지키는 성숙한 어른이 되자고.
오늘부터라도 '나'에게 다정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누구보다도 '나'를 소중히 여겨주고 '나'에게 솔직한 친구가 되어야겠다. 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수용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인간관계의 첫 단추니까. 이 첫 단추를 풀어야 다른 사람과도 서로 간의 존중에 기반한 관계를 쌓아갈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제 막 사회관계를 맺어가는 내 딸 아이도, 내 딸 아이의 친구들도 자기 자신과 먼저 친해지기를 바란다.